서울 은평구 은평뉴타운에 전세로 살고 있는 김모(34·회사원) 씨는 연초부터 고민에 빠졌다. 당초 5월 전세계약이 만료되면 무리하더라고 대출을 받아 집을 살 생각이었다. 지난 2년간 치솟은 집값을 보며 한두번 다짐한 게 아니다. 그런데 요즘 생각이 흔들리고 있다. 집값 하락세가 이어지자 한 번 더 전세로 살면서 자금을 모으는 게 현명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9·13 대책의 여파로 집값이 하락 전환하자 전월세 주택에 거주하며 매수 시점을 저울질하는 무택자가 늘면서 전월세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세입자 가구는 1000만 가구가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2016년 기준 전체 1937만 가구 중 자가거주 1102만 가구(자가점유율 56.8%)를 제외한 835만 가구가 임차가구이고, 이 중에서도 공공임대 등을 제외한 580만 가구(29.9%)가 임대차시장에서 전월세 형태로 거주한 것으로 파악된다.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 6년 만에 50%대 ‘추락’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당초 집을 사려던 사람들은 ‘가격 하락’을 기대하며 관망세로 돌아서자 전월세 거래가 활기를 띠고 있다. 관련 통계로 확인이 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1월 전국 전월세 거래량(신고일 기준)은 16만8781건으로 지난해 1월(14만9763건) 대비 12.7% 증가했다. 5년 평균치와 비교해도 35.1% 급증한 것이다. 이는 국토부가 2014년 전월세 조사 대상 범위를 확대한 이후 역대 1월 조사 기준으로 최대치다.
반면 같은 기간 주택 매매거래량은 5만286건으로 1년 전 7만354건보다 28.5% 감소했다. 이는 2013년 1월 2만7000건을 기록한 이후 6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집값이 더이상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매수심리 악화가 전세 수요로 이어지면서 전세 거래가 증가하고 있다. 1월 전세 거래량(10만2464건)은 전년 동월 대비 18.9% 증가했다. 특히 서울 동남권(서초·강남·서초·강동구)을 중심으로 입주 물량이 증가하면서 전셋값이 떨어지면서 전세 비중을 키웠다. 월세 거래량(6만6317건)은 4.3% 늘었다.
이에 따라 전월세 거래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39.3%로 작년 1월 대비 3.2%포인트 하락했다. 1월 기준 월세 비중이 40%를 밑돈 것은 2014년 이후 처음이다.
주택 매래 거래에서 전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늘고 있지만 전세가격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감정원에 따르면 지난달 18일 기준, 전국 아파트 전세가격은 0.12% 하락했다. 서울 아파트의 경우 전주대비 0.22% 하락하며 17주째 내림세가 계속됐다.
매매가격보다 전세가격이 더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한때 90% 근접했던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이 빠른 속도로 하락하고 있다.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 대비 전세가율(2월18일 기준)은 59.9%를 기록했다. 중위가격 전세가율이 50%대로 떨어진 것은 2013년 3월 59.9% 이후 처음이다.
양지영 양지영R&C연구소장은 “임차인 입장에서 부동산 시장이 한치 앞날을 내다보기 힘들기 때문에 깡통전세로 전락해 보증금을 몽땅 날릴 수 있는 위험부담이 큰 전세보다는 매달 내더라도 위험도가 덜한 월세로 전환하는 임차인들이 늘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전월세 거래도 신고제 도입 추진
주택 업계는 전세가격 하락세가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감정원도 최근 발표한 올해 시장 전망을 통해 올해 전세가격이 전국적으로 2.4% 하락할 것으로 예측했다. 지난해(-1.8%)보다 하락 폭이 커질 것으로 본 것이다. 수도권은 지난해 -1.5%에서 올해 -2.2%로, 지방은 지난해 -2.1%에서 올해 -2.7%로 내림 폭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됐다.
부동산 시장이 위축되면서 매매·전세가격 동반 하락으로 역전세·깡통전세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갭투자’(전세 끼고 집을 산 뒤 차익 노리는 거래) 주택은 더욱 심각하다. 피해는 세입자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실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전세 보증금 반환 문제로 고통받는 세입자의 글이 다수 올라왔다.
세입자가 보증금을 안전하게 돌려받으려면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에 가입하면 된다. 계약이 종료됐는데도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주지 않을 때 보증기관이 대신 전세금을 돌려주는 상품이다. 또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이사를 하거나 주민등록을 옮겨야 하는 상황이라면 관할 법원에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하면 된다. 그래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전세금반환소송’을 진행해 임대인의 부동산에 강제경매를 진행할 수 있다.
전월세난이 우려되는 가운데 주택 매매 거래처럼 전월세 거래도 실거래 내역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신고제를 도입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임대차 계약의 투명성을 높여 탈세를 막겠다는 것이다. 실제 한국감정원이 주택임대차정보시스템을 통해 분석한 결과 작년 8월 기준 임대 목적으로 사용하는 주택 673만 가구 가운데 77.2%(520만 가구)는 임대차 신고가 이뤄지지 않아 거래 내역을 확인할 수 없었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임대차 시장에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세부담 증가로 인한 민간 임대주택 공급 감소와 세부담 전가의 부작용도 우려된다.
KPI뉴스 / 정해균 기자 chung@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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