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효종대왕릉 회양목, 포천 직두리 부부송
오랜 세월 풍파를 견디며 그 자리를 지켜온 나무는 그 존재만으로 성스럽고 귀하다. 수 백 년에서 천 년이 넘는 세월 한 자리에서 의연하게 세월을 버텨 보통 수호목이라고 한다.
영험한 전설은 물론, 아름다운 자태에 공원, 마을, 절, 왕릉 등을 지키며 자신만의 독특한 이야기를 가지고 전설 같은 생명력의 나무들을 경기관광공사가 소개했다.
![]() |
| ▲ 가을의 용문사 은행나무.[경기관광공사 제공] |
나라의 길흉 예고하는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청정 계곡과 울창한 숲 등 빼어난 경관으로 많은 사람이 찾아 1971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된 경기도 양평군 용문산관광단지내 용문사는 사찰내 보물과 천년 고목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30호)로 유명하다.
높이 60m 둘레 12m가 넘고, 나이는 약 1100년에서 1300년으로 추정되는 이 나무는 국내 생존하고 있는 은행나무 중 가장 크고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을이면 노란 잎으로 용문사를 물들여 사진에 등장할 정도로 자태가 뻬어난 이 나무는 영험한 기운이 있는 것으로도 유명해, 주민들이 봄, 가을이면 나무를 위한 큰 제사를 지낸다.
나무를 자르려고 톱을 대자 피가 쏟아지고 고종 황제가 승하했을 때는 나뭇가지 부러졌으며 8.15 해방과 6.25 전쟁 등 나라의 큰 변란이나 경사가 있을 때 '윙' 소리를 내고 울며 길흉을 예고했다는 전설을 안고 있다.
![]() |
| ▲ 융건릉 개비자 나무.[경기관광공사 제공] |
이름이 서러운 '화성 융릉 개비자나무'
정조대왕 능행차 행사의 마지막 지점인 화성시 안녕동 융건릉의 융릉 재실에 있는 개비자나무는 2009년 9월 16일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 제504호로 지정된 보호목이다.
개비자나무는 늘 푸른 바늘잎 작은키 나무로 보통 높이 3m 이내로 자라는 게 보통이지만 융릉 개비자나무는 높이가 4m에 이르고 줄기 둘레도 80cm에 이르는 등 국내에서 가장 크다.
또한 보존 상태도 좋아 국내 개비자나무를 대표하는 가치는 물론, 융릉 재실과 관련된 역사적·문화적 가치도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융건릉은 조선 제21대 임금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가 함께 묻힌 융릉과 그의 아들인 정조와 효의 왕후가 함께 묻힌 건릉을 합쳐 부르는 말이다.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으며, 어린이와 가족, 연인들의 나들이 장소로 인기가 높다.
개비자나무는 융릉의 주인인 사도세자와 닮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한 많은 생을 마감한 슬픈이름의 '사도와 다양한 쓸모에도 좋지 않은 어감의 이름 개비자나무의 설움이 공통된다는 것이다.
융건릉에서는 매년 4월 둘째 주 융릉 제향, 5월에는 건릉 제향이 있어 이때 방문하면 볼거리가 더 풍부하다.
![]() |
| ▲ 고양 송포 백송.[경기관광공사 제공] |
기품이 남다른 희귀 소나무 '고양 송포 백송'
일산 서구 덕이동의 고양 송포 백송의 가장 유력한 유래는 조선 세종(1418~1450) 때 김종서가 개척한 육진에서 복무하던 최수원이 고향에 돌아오는 길에 가져다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진다.
마을 사람들은 한동안 이 나무를 중국에서 온 나무라고 하여 '당송(唐松)'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백송 앞에 붙은 송포는 과거 이 지역의 이름이 송포면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희귀수종이어서 1962년 12월 천연기념물로 지정됐으며 수령은 250년 정도로 추정된다. 높이 11m, 둘레 2.9m로 1.4m 정도 되는 높이에서 줄기가 두 갈래로 갈라지고, 거기서 60cm 정도 올라가서 한 줄기가 다시 두 갈래로 갈라져 있다.
백송은 대체로 수령이 오래되고 햇빛을 많이 받을수록 줄기의 흰빛이 뚜렷해진다. 송포 백송은 다른 백송보다는 덜 흰빛을 띠지만, 가지가 무성하고 울창해서 기세가 상당하다.
측면에서 살펴보면 가지가 마치 부챗살처럼 퍼져 있어 형태가 역삼각형으로 보인다. 그 기품도 남달라 한눈에 보아도 수령이 오래된 것을 알 수 있다. 수령은 약 250살 정도로 추정된다.
백송은 중국 북부가 원산지로 동남 아시아에 퍼져 있는 소나무의 한 품종으로 현재는 원산지에서도 거의 멸종 위기에 처해 있으며 국내에서는 송포 백송과 함께 서울 조계사, 재동 헌법재판소, 예산 용궁리 추사고택, 이천 백사면 신대리까지 5곳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송포 백송의 또 다른 유래는 조선 선조 때 유하겸이 중국 사절에게 받은 백송 두 그루 중 하나를 마을의 최상규 씨(송포 백송의 소유자)의 조상에게 주었고, 그것을 묘지 주변에 심었는데 지금껏 크게 자란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 |
| ▲ 여주 효종대왕릉 회양목.[경기관광공사 제공]
|
재실 내 가장 큰 회양목 '여주 효종대왕릉 회양목'
여주시 효종대왕릉은 인조의 둘째 아들이자 조선 제17대 왕인 효종(재위1649∼1659)과 왕비 인선 왕후 장 씨가 모셔진 쌍릉이다. 이곳은 능역과 푸른 소나무들이 주변에 울창해 그윽함을 풍기지만 세종릉과 바로 붙어 있는 관계로, 상대적으로 찾는 이가 적어 사방이 조용하고 호젓하다.
영릉 재실에 있는 효종대왕릉 회양목은 2005년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 459호로 수령은 약 300년으로 추정된다. 나무의 높이는 4.4m, 가슴 높이의 줄기 둘레는 동쪽이 29㎝, 서쪽이 43㎝이다. 수관 폭은 동서 방향이 4.4m, 남북 방향이 6.5m이다.
효종대왕릉 회양목은 재실 내에 크게 자란 나무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생물학적인 가치가 큰 노거수일 뿐만 아니라, 1673년 조성한 효종대왕 영릉 재실과 오래도록 함께한 역사성이 큰 나무다.
특히 영릉 재실은 현존하는 조선왕릉 재실 중에서 건물의 공간 구성과 배치가 가장 뛰어난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이렇듯 재실 공간 내에 회양목과 향나무, 그리고 재실 건축 연대보다 더 오래된 500년 이상의 느티나무가 함께 어우러져 재실의 역사성을 한층 더 높여주고 있다.
효종대왕릉 회양목은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알려진 회양목 가운데 가장 큰 나무로 추정된다. 사람들이 알아봐 주지 않아도 한자리를 지키며 300년 세월을 견뎌낸 효종대왕릉 회양목. 오늘도 은은한 아름다움과 우아한 풍채로 매력을 떨치며 그 자리에 서 있다.
![]() |
| ▲ 포천 직두리 부부송.[경기관광공사 제공] |
부부가 소원 빌면 이루어주는 '포천 직두리 부부송'
포천시 군내면 직두리에 서식하는 부부송(夫婦松)은 가지의 끝부분이 아래로 처지는 특징을 가진 소나무다. 이 두 그루의 처진 소나무는 나지막한 동산을 뒤로하고 나란히 서서 서로를 안고 있는 듯한 다정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멀리서 보면 마치 한 그루처럼 보인다.
북쪽이나 남쪽에서 바라보는 수형은 수관 전체가 산의 경사면을 따라 흘러내린 듯한 매우 아름다운 형상을 하고 있다.
두 나무 중 큰 나무는 수령이 300년으로 추정되며, 포천시의 시목(市木)이다. 나무의 키는 두 그루 모두 높이가 6.9m이고 너비는 큰 나무가 23.7m, 작은 나무가 11.7m이다. 2005년 6월 천연기념물 제460호로 지정됐다.
이 나무는 모양에 따라 '처진 소나무'로 불렸으나, 관리처인 포천시가 천연기념물 지정을 기념하고 지역 주민들의 보호 의식을 높이고자 이름을 공모하여 의견을 수렴, 나무가 부부와 같은 정겨운 형상으로 서 있기 때문에 부부송이라 부르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에 따라 현재 이름을 갖게 됐다.
부부송에는 예부터 부부가 찾아와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많은 사람들이 찾았는데, 지금도 나무의 영험함을 믿는 사람들의 기도처로 이용하기도 한다.
KPI뉴스 / 김영석 기자 lovetupa@kpinews.kr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