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과 건설 회사 시너지, 입증 안돼"
삼성바이오 회계 부정 여부도 핵심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법적으로 미등기 이사다. 권한만 있고 책임은 없다. 이른바 사법리스크 때문이다. 지난 2월 불법 승계 의혹 재판 1심에서 무죄가 나왔으나 항소심이 이어지면서 그 결과를 '책임 경영' 복귀와 연동시키려는 모양새다.
하지만 1심 판결 이후 나온 국제 소송의 판정문은 불법 승계에 방점을 찍고 배상 결론을 내린 것으로 확인된다. 국내 국정농단 관련 여러 재판에서도 이미 합병 과정의 부당성이 적시된 바 있다. 이 회장으로서는 낙관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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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부당합병 의혹'에 대한 첫 항소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
김주호 참여연대 경제금융팀장은 4일 "국정농단 관련 대법원 판결이나 메이슨 국제중재판정, 분식회계를 인정한 서울행정법원의 최근 판결 등을 고려하면 2심에서는 충분히 유죄로 뒤집힐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면서 "무엇보다 뇌물이 오가는 등 부당한 승계 목적임이 여러 재판에서 드러났다"고 말했다.
지난 4월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중재판정부는 미국계 헤지펀드 메이슨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 한국 정부에 438억 원가량을 배상하라는 판정을 내렸다. 지난해 엘리엇에 이어 두 번째였다. 2015년 당시 합병 비율이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불리하게 정해졌는데도, 한국 정부가 개입해 국민연금이 찬성표를 행사하게 했다는 것이 골자다.
메이슨 판정문을 보면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불이익을 주고 이재용에게 이익을 주기 위한 개입으로서 적법 절차 및 투명성을 완전히 결여하였고 자의적이고 중대하게 불공정하므로 FET(공정 공평 원칙) 기준을 위반한다"고 돼 있다.
2019년 대법원은 국정농단 사건 재판에서 삼성물산 합병 건에 대해 경영권 승계 작업의 일환으로 규정한 바 있다. 지난 2월 1심 재판부도 이를 부인하지는 않았다. 다만 승계 작업 그 자체로 불법은 아니며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쳤다고도 판단하지 않아 무죄 결론에 이른 것이다. 합리적인 사업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부당하게 볼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옛 삼성물산 주주였던 해외 투자자들의 손해를 인정하는 국제중재판정부의 판정과는 배치되는 셈이다. 무엇보다 합병 효과에 대한 판단이 전혀 다르다. 중재판정부는 "국민연금은 합병 비율이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불리함을 알고 있었다"면서 "패션 회사와 건설 회사 사이의 상당한 시너지는 명백하지 않으며 입증되지 않았다"고 적시했다.
중재판정부는 또 한국 대법원의 국정농단 판결을 들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사이에 재정적 이익을 대가로 하여 합병을 포함한 총수 일가의 승계 계획을 지원할 것이라는 공통의 이해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제시됐던 주식 매수 청구 가격이 낮게 책정됐다는 대법원 판단도 이미 2022년 4월 나왔다. 그 다음달에 삼성물산은 곧바로 엘리엇에 660억 원을 지급했다. 이래저래 삼성물산 주주들의 피해는 입증돼 온 셈이다.
또 하나의 관건은 제일모직 자회사였던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 혐의, 이 회장에 유리하도록 제일모직 가치를 인위적으로 키우는 불법이 동원됐는지 여부다.
증권선물위원회는 2018년 고의적 분식 회계로 판단해 8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고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반발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8월 원고 승소 판결을 하면서도 일부 회계처리 기준 위반임을 명시했다. 행정법원 재판부는 "내부 문서 등을 보면 구 삼성물산의 합병 문제와 삼성물산의 재무제표 문제 등을 이유로 지배력 상실 회계처리를 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검찰은 이를 반영해 최근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미국 바이오젠과 합작해 설립한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전환(지배력 상실 회계처리)했는데, 지분가치를 장부가액(2900억 원)에서 시장가액(4조8000억 원)으로 바꾼 것이 적절했는지가 핵심이다. 1심 재판부는 "에피스의 기업가치에는 본질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판단해 삼성 측 손을 들어줬다.
2심 재판부는 오는 11월 25일 변론을 종결하고 통상 1월 말에 있는 법관 인사 이동 전까지 선고를 내린다는 방침이다.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장은 지난 5월 책임 경영 지연 우려에 대해 "판결 결과를 지켜보고 그 후에 고민을 좀 더 하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KPI뉴스 / 박철응 기자 hero@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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