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硏 "日 반도체 부활 신호…韓, 고립된 열등생"

박철응 기자 / 2024-10-07 16:45:06
이현익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반도체 지정학 부각되며 한일 상황 대비 분석
산업연구원 "미일 반도체 협력 재개된 것"

일본의 반도체 산업이 지정학적 관점에서 부활의 신호탄을 쏜 반면 한국은 "변방에 홀로 고립돼 가고 있다"는 국책 연구기관의 분석이 나왔다. 삼성전자 위기론이 심화하고 있는 가운데 국제정치 상황에 비쳐 평가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이현익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최근 '히노마루(일장기) 반도체, 찬란한 실패와 불확실한 성공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반도체 과목 시험의 주제가 경제학에서 지정학으로 바뀌자 한국은 문제 해결 능력을 잃어버린 열등생 신세로 전락해 버렸다"고 지적했다. 

 

▲ 삼성전자 화성 반도체 공장 내부 모습. [삼성전자 제공]

 

미국과 중국의 갈등 국면에서 일본이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반사 이익을 누릴 수 있게 됐으나 한국은 국제관계적 측면에서 반도체 산업이 고립됐다는 시각이다. 이 연구위원은 "야치 쇼타로(전 일본 국가안보국장)가 입안한 인도태평양 구상은 한반도의 일제 피식민지 역사에 동정적이었던 미국의 태도를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며 "미국은 일본을 다시 한 번 지정학적 대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고 일본은 이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았다"고 짚었다. 

 

인도태평양 구상은 중국의 거대 경제권 구상인 '일대일로'(一帶一路)에 대응해 미국의 우방국들이 협력해 견제하려는 것이다. 일본 반도체 산업은 1980년대 세계 점유율 1위의 자리에 올랐다가 미국의 제동으로 쇠퇴했다. 그런데 공급망 안정화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일본이 이 흐름에 올라타 부활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이 연구위원은 "신규 설비투자가 이뤄지는 반도체 제조 시설을 지도 위에 놓고 보면 일본 열도 전역에 배치된 미군 기지의 위치가 연상된다"며 "일본 반도체 산업의 지정학적 반사이익은 대만 해협의 위기를 겹쳐놓았을 때 그 의미가 더욱 선명해진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들은 대만 해협 유사시 약 6만여 명의 TSMC 엔지니어를 난민으로 받아들여 대만 본토 설비와 정확히 같은 플랫폼에서 최첨단 반도체를 생산해내도록 계산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미 일본은 대만(TSMC, UMC 등), 미국(마이크론, 인텔, IBM, 엔비디아 등), 한국(삼성전자 등) 등 각지로 흩어져 버린 자국의 반도체 엔지니어들을 다시 본국으로 불러들이는 '브레인 게임'을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일본은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TSMC와 마이크론을 유치해 생산 설비에 최대 50%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적극적인 정책을 펴고 있다. 또 정부와 기업들이 공동으로 출자해 라피더스라는 파운드리 기업을 설립했다. 

 

이 연구위원은 "반도체 경제학의 낙제생이었던 일본은 반도체의 지정학에서 분명한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다"며 "21세기 미국의 '가장 믿음직한 팹(반도체 제조 공장)'으로서 미래 전자 산업의 패권을 재설계하는 과제를 스스로 설정하도록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한국에 대해선 "TSMC가 '반도체 외교를 통한 국가 수호'로 정립해 나가는 동안 우리는 '치킨게임'으로 푼돈 챙기기에 급급했다"며 "그렇게 번 돈으로 스스로를 치장하기에만 바쁜 나머지 반도체 산업의 글로벌 우군을 키워내는데 결과적으로 실패했다"고 혹평했다. 

 

그는 "미국의 짐을 함께 나눠지고 있는 일본을 옆에 두고도, 국가 외교의 전력을 미국이란 한 나라에 쏟아붓는 대만을 지켜보면서도, 우리는 초격차 기술 개발만이 이 산업의 미래를 특징지을 것이라는 협소한 상상력으로 스스로의 취약성을 키워갔다"고 비판했다. 기술과 가격 등에서 경쟁력을 키워왔지만 큰 틀의 국제관계적 측면에서는 실패했다는 시각이다.

 

이 연구위원은 "그렇게 설정된 기술적 과제는 어느 기업이나 한 연구자 개인의 성과였을 뿐, 국가적 프로젝트가 될 수는 없었다. 그러는 사이 우리 반도체 산업의 미래는 혜량할 수조차 없는 불확실성 너머 동아시아 변방에 홀로 고립돼 가고 있다"고 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도 최근 보고서에서 "일본의 반도체 산업 발전을 저지했던 미국이 부활 움직임에 도움을 주고 있다"면서 "현재 반도체 제조업이 한국과 대만 등 특정 국가에 집중되어 있어 이를 분산시키기 위한, 즉 기정학(技政學·Tech-politics)적 목적으로 미·일 반도체 협력이 재개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일본의 반도체 제조업 부활로 세계 시장에서 경쟁이 과열될뿐만 아니라 제조 장비와 소재를 공급받고 있는 국내 반도체 기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일본과의 과도한 경쟁보다는 새로운 협력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재계도 안보 차원을 고려해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상호 한국경제인협회 경제산업본부장은 7일 한경협 정책과제 요구 자료를 통해 "주요국들의 반도체, 이차전지, 디스플레이에 대한 지원 정책 강화는 첨단산업 주도권 상실이 곧 국가안보 위협이라는 위기의식이 작용한 결과"라고 말했다. 이 본부장은 "급격한 기술발전과 공급망 재편에 선제적이고 효과적인 대응이 필요한 시점에 이들 첨단산업에 대한 투자는 안보는 물론 재편되는 글로벌 공급망에서 한국이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는데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KPI뉴스 / 박철응 기자 hero@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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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응 /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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