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분법 구도 치닫는 이념전쟁···대학·정치·시장경제 흔들다
침묵하는 다수 유권자···이념 편향 없는 진정한 리버럴 갈망
인류 역사상 최대 선거가 있는 슈퍼 선거의 해 2024년 벽두부터 경계해야 할 이념전쟁 조짐이 엿보인다. 학문의 최고 전당이라 할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의 총장들이 이념전쟁 여파로 연이어 타의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유례없는 사태가 전개되었고 그 파장이 예사롭지 않다.
지난해 10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발발 이후 명문대 캠퍼스에 확산된 반(反)유대주의(antisemitism) 논란과 관련 펜실베이니아대 엘리자베스 매길 총장이 지난달 전격 사퇴한 데 이어 하버드대 클로딘 게이 총장도 사퇴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취임 6개월 만인 이달 끝내 물러났다. 총장들은 공화당이 주도한 의회 청문회에서 캠퍼스의 반유대주의를 둘러싼 논란에 관해 집중적인 추궁을 받았다. 총장들이 반유대주의에 미온적이고 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반유대주의 구호와 관련하여 민주주의 사회의 헌법적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freedom of speech)가 대학에서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불붙었다.
좌·우, 보수·진보의 이분법 구도에서 가장 자유로워야 할 대학, 그야말로 자유와 진리의 전당이 되어야 할 대학에 우파 보수정치권의 공격이 가해진 가운데 대학 기부금 등에 영향력이 큰 자본가 그룹인 유대계로부터 집중적인 비난이 이어졌다. 주요 유대계 기부자들은 대학 당국이 친팔레스타인 반유대주의자들을 단호하게 진압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청문회 이후 총장 사퇴 요구가 빗발친 가운데 유대계 자본가들의 기부금 중단 위협에 이어 반유대주의 선도 학생의 월가 취업 취소 등 반민주주의, 반시장주의적 압박이 대학에 전방위로 가해졌다. 이에 밀려 총장들이 결국 사퇴하게 되자 우파 공화당 의원, 유대계 고액 기부자 등이 곧바로 환영의 뜻을 표시했다.
1950년대에 미국을 휩쓸었던 공산주의자 색출 열풍을 의미하는 매카시즘(McCarthyism)을 방불케 하는 고등교육에 대한 일대 공격이 아닐 수 없다. 당시 공화당 조지프 매카시(Joseph McCarthy) 상원의원이 주도한 매카시즘의 여파로 많은 사람들이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블랙리스트에 올라 억울하게 고초를 겪었다. 매카시즘이 무분별한 비난과 선동의 대명사가 된 이유다.
그 매카시즘이 2024년 반유대주의 버전으로 부활하여 아이비리그를 흔들고 미국 정치를 흔들고 시장경제를 흔들고 있는 것인가. 미 대통령 선거 레이스가 이제 시작된 가운데 이념적 대결을 부추겨서 이득을 꾀하려는 일부 정치인과 이에 영합하는 자본가 카르텔이 지금 아이비리그를 흔드는 배경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념전쟁으로 사회를 흔들어 보려던 매카시즘은 성공하지 못하고 스스로 무너졌다. 그것은 살아있는 민주주의의 힘이었고 열린 생각을 지닌 시민의 힘이었다. 매카시즘은 국방의 최후 보루인 군대마저 이념으로 흔들려는 오류를 범했다. 학문의 최후 보루인 대학이 이분법적 이념전쟁으로 흔들린다면 그 파장은 심히 우려된다.
아이비리그 총장들의 사퇴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이분법 구도로 치닫는 이념전쟁에는 '보이는 유대인'과 '보이지 않는 팔레스타인인' 간의 대립 양상이 기저에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의회 청문회를 주도한 공화당 뿐 아니라 민주당의 정치 지도자들에게도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blind spot)가 있을 수 있음을 간파할 수 있게 한다. 지난주 스위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일명 다보스 포럼)에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텃밭인 델라웨어 출신 최측근 정치인이자 중도파로 알려진 크리스 쿤스 상원의원은 미국이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 지원에 조건을 부과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이스라엘이 지난 10월 이후 미국으로부터 제공받은 100개 이상의 2000파운드 벙커 파괴 폭탄들이 테러리스트들을 정밀하게 타격한 것이 아니라 무차별적으로 사용되었다는 주장에 대해 심각하게 이의를 제기한 사람은 없다. 바이든 대통령은 의회에서 승인받고자 하는 145억 달러의 이스라엘 지원에 조건을 붙이는 것을 여전히 거부하고 있다. 지난달 선거자금 모금행사에서는 이스라엘을 보호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비정부기구(NGO) 세이브더칠드런(Save the Children)에 따르면 지난 100일 동안 팔레스타인 어린이 1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번 달 바이든 대통령은 이러한 팔레스타인의 고통에 대한 언급 없이 100명의 인질을 석방할 것만을 촉구했다. 공교롭게도 오는 11월 대선에서 민주, 공화 양당이 절실히 지지를 필요로 하는 경합 주(swing states)의 주요 투표 집단이 아랍계 미국인들이다. 목소리 큰 '보이는 유대인'에 가려져 있지만 수적으로 더 많은 '보이지 않는 팔레스타인인'이 지금 양당에게 모두 사각지대가 되고 있는 셈이다.
유대주의냐 반유대주의냐 하는 이분법 구도로 대학과 정치와 시장경제를 바라본다면 그것은 단견이자 오류이며 실패할 수밖에 없는 매카시즘의 재현이다. 사회를 이념으로 흔들려는 2024년판 매카시즘은 누구나 경계해야 할 위험한 발상이다.
대학의 본연적이고 소중한 사명은 자유와 정의, 진리를 추구하는 데 있기에 이념전쟁의 프레임에 지배되는 상황은 단호히 배격되어야 한다. 대학은 현실이슈를 비판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의견들을 경청하고 심지어 유쾌하지 않은 복잡성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통해 더욱 많은 배움과 발전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러한 대학의 노력은 인류공동체가 민주주의로 더욱 진보할 수 있게 하는 소중한 자산이 된다. 목소리 큰 보이는 유권자 뿐 아니라 다수의 침묵하는 보이지 않는 유권자의 존재는 좌·우, 보수·진보를 떠나 사회와 인류공동체에 사각지대가 있어서는 안됨을 일깨워준다. 이분법 구도의 이념전쟁이 아닌 균형 있는 실용주의의 가치와 중요성을 아이비리그 총장들의 사퇴를 보며 새삼 그리고 절실히 확인하게 된다.
한국 또한 이분법 색채가 강한 사회로 볼 수 있다. 미국 못지않은 편 가르기 이분법 사회에서 경계에 서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기에 미국의 현실은 더욱 우리에게 반면교사의 교훈을 준다. 합리적인 좌와 우, 합리적인 보수와 진보, 특정한 이념에 얽매이지 않은 리버럴이 필요하다. 다수의 침묵하는 보이지 않는 유권자는 이념 편향 없는 진정한 리버럴을 갈망한다. 늘 살아있는 민주주의의 힘, 그리고 열린 생각을 지닌 시민의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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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홍균 논설위원 |
●조홍균은
법·제도경제학자이자 35년 경력 중앙은행가. 경제, 금융, 기업 관련 정책과 제도를 주로 천착했다. 통화금융정책, 금융체제, 금융감독, 금융산업, 기업정책, 법경제 실무와 이론에서 전문성을 쌓았다. 중앙은행과 정부, 국제기구, 학계, 언론계 등에 걸쳐 폭넓게 이력을 쌓았다.
△ 미 워싱턴대 법학박사(J.D./J.S.D., 법경제학) △ 1989년 한국은행 입행 △ 1990년 조사제1부 조사역 △ 1999~2012년 정책기획국 과장 차장 팀장 △ 2016년 금융감독원 거시감독국 파견국장 △ 2017년 한국금융소비자학회 부회장 △ 2018년 한국금융연수원 교수 △ 2020년 고려대 겸임교수 △ 2022년 경제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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