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불모지' IT업계, 네이버 노조 새 바람

오다인 / 2019-02-18 14:58:05
1999년 이후 포털·게임업계서 첫 설립
직원과 수평 소통·노동권 요구 늘어나

"네이버 경영진은 직원들에게 글로벌 경쟁력을 요구하지만, 정작 자신들의 노동권 인식은 글로벌 기준에서 동떨어져 있다."

네이버 노동조합은 지난 11일 경기 성남 네이버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이 비판했다. 네이버가 '인센티브 지급 근거 공개'라는 노조의 정당한 요구를 무시하고, 감정노동을 하는 계열사 직원들의 휴식시간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오세윤 네이버 노조 지회장이 지난 11일 경기 성남시 네이버 본사 앞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네이버 노조 제공]

 

지난해 4월 2일 설립 이후 네이버 노조는 네이버와 15차례 교섭했다. 올해 1월에는 중앙노동위원회 조정까지 2차례 거쳤지만 최종 결렬됐다. 그 동안 네이버 노조가 요구해온 사항은 경영진과 직원 간의 수평적 소통. 경영진의 인센티브 지급 근거를 공개하고 직원과 수평적 소통을 확대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네이버는 '협정근로자'(쟁의를 할 수 없는 노동자)의 범위가 지정되지 않아 합의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인 만큼 운영 안정성을 확보하려면 누가 쟁의에 참여할 수 없는지 선을 그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네이버 노조는 협정근로자 지정은 노동3권 중 하나인 단체행동권을 제약하기 때문에 조정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면서 맞서는 중이다.

네이버 노조가 불붙인 IT업계 노조 설립

네이버 노조는 설립 선언문에서 "지금까지 IT업계는 노조의 불모지였다"며 "IT업계 선두주자로서 역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네이버 노조가 이날 기자회견에서 파업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면서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인 네이버가 파업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이르게 될지 이목이 쏠리는 상황이다.

네이버 노조가 등장하기 전까지 실제 IT업계에서는 노조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네이버 노조 설립 이후 넥슨, 스마일게이트, 카카오에서 잇따라 노조가 탄생했지만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 만큼 IT업계에서 노조는 아직 생경한 조직이다.

네이버 노조 이전에 'IT노조'가 있기는 했다. 2004년 설립된 민주노총 한국정보통신산업노동조합 IT노조는 지난해 11월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을 검찰에 고발하는 등 활동을 이어오고 있지만, 포털·게임업계에서 산별 노조가 설립된 건 네이버가 처음이다.

네이버 노조가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산하 지회로 들어간 것도 IT업계를 대변해줄 상위 노조가 마땅히 없었기 때문이다. 화섬노조는 파리바게트 노조처럼 제조업이 중심이다. 네이버 노조는 네이버를 비롯한 계열사의 노동환경 개선을 목적으로, 현재 라인플러스, 네이버웹툰, 네이버랩스, 컴파트너스 등 16개 법인과 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IT서비스 종사자, 17년간 10배 증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17 ICT 실태조사'에 따르면 소프트웨어 및 디지털콘텐츠 개발·제작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1999년 6만4000여명에서 2016년 31만3700여명으로 증가했다. 정보통신방송기기업과 정보통신방송서비스업 역시 각각 1999년 42만6000여명, 9만여명에서 2016년 각각 59만여명, 11만9000여명으로 늘었다.

이 중 IT서비스 제공업 종사자는 1999년 1만2000여명에서 2014년 10만5000여명, 2016년 11만2662명으로 늘었다. 17년간 10배 규모로 커진 셈이다. IT서비스 수출액은 2016년 61억500만달러(약 6조8607억원) 수준이다.

이렇게 성장하는 동안 IT업계에 노조는 없었다. 산별 노조가 설립된 것은 2018년 들어서니까 20년 가까이 IT업계는 노조 불모지였던 셈이다. 박상희 네이버 노조 사무장은 "IT업계가 스타트업을 위주로 출범하다 보니 다른 업계보다 역사가 짧은 것이 사실"이라면서 "이에 (IT 노동자들이) 미처 노동권을 학습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또 "IT업계에서는 자신이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다른 회사로 이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보통"이라면서 "이런 이유로 회사 내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같이 모여서 해결하려고 하기보다 이직을 준비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IT노조, 걸음마 시작했지만

네이버 노조는 2017년 말부터 노조 설립을 위한 움직임이 있었다. 네이버가 1999년 설립 이후 약 20년간 급성장하면서 직원을 대하는 태도가 창립 초기와 사뭇 달라졌다는 토로가 직원들 사이에서 나오면서부터다. IT업계의 시작은 벤처와 스타트업이 중심이었지만 시간이 쌓이고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회사와 노동자의 처지가 저마다 달라진 것이다.

포괄임금제가 불합리하다는 인식의 확산도 IT업계 내 노동권 주장에 영향을 줬다. 흔히 IT업계는 출퇴근을 비롯해 노동환경이 자유롭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IT서비스의 출시 일자가 정해져 있는 한, 주 노동시간이 52시간을 훌쩍 넘기는 경우가 다반사다. IT서비스는 24시간 중단없이 운영되므로 이로 인한 노동자의 과로도 고질적인 문제로 남아 있다.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워라밸'이 지켜지기 어려운 구조라는 지적이다.

이명준 하모니법률사무소 변호사는 "IT업계는 기존의 산업계와 달리 매우 다양한 형태의 노동자가 모여 있어 이해관계도 그 만큼 다양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해관계가 일치해야 노조를 만들어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데 노동 형태가 각양각색이다 보니 노조 설립이나 단결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다.

IT 기업이 외주를 많이 준다는 사실도 노조 설립을 어렵게 만드는 배경이다. 이 변호사는 "뽑아서 가르쳐놓으면 금세 나가버린다는 생각 때문에 IT 기업들이 직원을 정규직으로 뽑아 가르치기보다 외주를 줘서 비용을 절감하려고 한다"면서 "(노동권 주장을 위한) 구조 자체가 애매해졌다"고 말했다.

노조가 활동하기엔 여전히 어려운 여건이지만 IT 종사자들의 노동자 권리 주장은 이미 시작됐다. 이 변호사는 "IT업계의 규모가 커지다 보니 예전에는 뭉치지 못했던 불만들이 지금은 결집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성장한 것"이라고 말했다.

 

KPI뉴스 / 오다인 기자 odi@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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