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헤어질 결심'이 중요한 이유 증명한 태광

김기성 / 2024-01-02 15:46:29
이호진 전 회장 복권 반년도 안돼 검·경 수사
모든 사안이 김기유 전 경영기획실장과 연관
金의 진술에 李의 사법리스크 좌우되는 형국

기업에서 사람을 쓸 때 어떤 인물에게 핵심 사업을 맡기느냐는 성패가 걸린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신중해야 하는 것이 이렇게 중용한 인물을 어떻게 '자르느냐'는 것이다. 과거 재벌의 2세 승계 과정에서 아버지 대(代)에서 일했던 주요 임원을, 아들이 사업을 물려받은 뒤 해고했다가 비자금 문제 등이 터져 곤욕을 치른 사례는 재계에 널리 알려진 일화이기도 하다.

그래서 중용했던 인물을 해고할 때는 고문 등의 직함을 주고 수년간 뒤를 봐주거나 적지 않은 스톡옵션을 제공하기도 한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총수의 주머니에서 직접 전별금을 줬다는 얘기도 있다. 물론 우리 재벌도 이제는 많이 투명해져서 이런 사례들은 과거의 얘기로 치부되고 있지만 굳이 과거의 나쁜 관례를 떠올리는 것은 태광그룹 때문이다.

 

 

▲ 태광그룹 이호진 전 회장. 조형물은 태광그룹 계열 흥국생명빌딩 앞 '해머링 맨'. [UPI뉴스 자료사진]

 

이호진 전 회장, 김치·와인 등 강매와 비자금 조성 혐의로 조사받아

횡령·배임과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이호진 태광그룹 전 회장은 지난해 8월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돼 경영 복귀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복권된 지 반년도 되기 전에 검찰과 경찰의 수사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회장이 받는 혐의는 계열사에 대한 김치·와인 강매, 협력사에 대한 골프장 회원권 강매와 관련한 의혹, 그리고 이 전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있는 동안 계열사 임원들이 이중으로 급여를 지급받고 이 가운데 20억 원 정도를 비자금으로 조성했다는 혐의 등이다.

이 전 회장의 모든 혐의 김기유 전 실장과 직접 연관

그런데 문제는 이 모든 혐의가 이 전 회장의 부재 기간 동안 '실세', 또는 '2인자'로 불렸던 김기유 전 태광그룹 경영기획실장과 연관돼 있다는 것이다.

김치·와인 강매 의혹과 관련해 검찰은 2021년 김 실장을 주범으로 결론을 내리고 이 전 회장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을 내렸었다. 이렇게 마무리되는 듯했던 이 사건은 태광그룹 계열사들이 공정위를 상대로 과징금 등 시정명령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에서 문제가 불거졌다. 2심에서는 태광그룹 계열사들이 이겼지만 대법원은 지난해 3월 이 전 회장이 사실상 개입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취지로 파기 환송한 것이다. 이에 따라 검찰은 김 전 실장을 수차례 소환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또 태광그룹이 계열사의 협력업체에 대해 계약이나 거래 조건을 제시하며 휘슬링락CC의 회원권 매입을 강요했다는 의혹도 지난해 4월 검찰에 고발장이 접수돼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경찰도 이 전 회장의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해 작년 10월 이후 수차례 압수수색을 진행하며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경찰은 이 전 회장의 부재 기간 임원들이 이중으로 급여를 지급받고 이 가운데 일부를 빼돌려 이 전 회장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혐의에 대해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모든 사안들이 이 전 회장이 건강상 또는 수감 상태를 이유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있던 때의 일이다. 당시 그룹의 실세였던 김 전 실장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안들인 것이다.

내부 감사 결과 해임된 김 전 실장 이번에도 총수 옹호 나설까?

따라서 김 전 실장이 검찰이나 경찰 조사에서 어떻게 진술하느냐에 따라 이 전 회장의 관여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김치·와인 강매 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던 때도 이 전 회장이 무혐의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김 전 실장이 책임을 떠안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전 회장과 김 전 실장의 사이가 예전 같지 않다는 데 있다. 이 전 회장은 복권된 뒤 김 전 실장이 주도한 사업에 대한 내부감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태광그룹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롯데홈쇼핑이 사옥을 매입하는 데 대해 그룹의 이해관계와는 달리 김 전 실장이 찬성표를 던진 것이 지적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문제 등으로 해서 태광그룹은 지난해 9월 김 전 실장을 해임했던 것이다. 총수 부재 기간 그룹을 이끌었던 실세가 하루아침에 해임되자 재계에서는 토사구팽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기업의 '헤어질 결심'이 중요한 이유

그래서 경찰이 지난해 10월 비자금 의혹으로 수사에 나섰을 때 재계에서는 누군가 그룹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경찰에 제보했을 것이라는 말이 나왔고 김 전 실장 측이 아니겠느냐는 추측성 소문도 무성하게 이어졌다.

어찌됐건 해임이라는 불명예로 태광그룹을 떠난 김 전 실장이 앞으로 검찰과 경찰의 조사에서 어떤 진술을 할지는 짐작키 어렵지 않다. 과거 김치·와인 강매 의혹에서처럼 자신이 책임을 뒤집어쓰고 총수를 보호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물론 과거의 예를 보면 항상 반전의 계기는 있기 마련이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을 상황이 오면 억울하더라도 불도저라도 동원해야 하는 것이 총수를 보호해야 하는 일부 기업의 현실이다. 따라서 이 전 회장을 둘러싼 사법리스크는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안은 기업이 중요하게 썼던 인물을 내치기로 '헤어질 결심'을 했다면 실행까지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사례로 오래 동안 남을 것 같다.

 

KPI뉴스 / 김기성 대기자 bigpen@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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