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인공지능 시대에 대학의 교육은 어떻게 변해야 하나'를 주제로 한 두 번째 칼럼이다. 지난번에는 KAIST 국가미래전략기술 정책연구소가 최근 개최한 'AI 시대, 대학 교육의 재설계' 워크숍 발표 내용을 요약 소개했다. KAIST 워크숍은 AI 시대에 맞춘 대학교육의 근본적인 재설계 방향을 다각도로 조명했다. 전문가들은 수학적 난제 해결사례를 통해 인간의 문제 정의 능력과 통합적 관점이 여전히 AI가 대체할 수 없는 핵심 영역임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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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
특히 소프트웨어 교육에서는 단순한 코딩 기술보다 AI의 결과물을 비판적으로 검증하고, 시스템을 인간 친화적으로 설계하는 역량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또, 학생들을 단순한 숙련자가 아닌, AI 도구를 능숙하게 다루는 전략가로 육성해야 한다는 점도 공통된 의견이었다. 이를 위해 대학은 연구와 창업 중심의 교육으로 전환하고, 기술적 소양과 더불어 윤리의식 및 공감능력을 갖춘 인재를 배출해야 한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이러한 변화는 AI와의 협업이 일상이 된 환경에서 인간 고유의 사고력과 가치를 지키기 위한 필수적 여정으로 묘사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대학교육 혁신을 선두에서 이끌고 있는 또 하나의 도전자는 태재대학교이다. 태재대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맞은 AI 교육 혁명을 앞서 실천하고 있다. 2023년 9월부터 전 세계 학생들을 모집해 20명 이하의 소규모 클래스로 편성, 전 과목 영어 강의와 질문·토론 중심 수업을 시행 중이다. 단순한 사이버 대학과 달리 온·오프라인 교육을 혼합하되, 세계 주요 도시의 기업·행정관청·대학 및 연구기관 등을 돌며 현장이슈의 문제해결에 직접 뛰어들어 고민하는 실용·실무적 접근법을 채택하고 있다. 온라인 수업에는 AI를 접목해 전 세계 교수의 강의를 골라 듣는 학생들의 발표 내용과 시간 등을 분석, 개인별로 최적화된 피드백을 준다.
태재대의 입시전형 또한 점수 중심이 아닌, 면접을 통한 성장 가능성과 자기주도성 평가 위주로 이루어진다. 염재호 태재대 총장은 "글로벌 기업들은 성적이 아닌 실제 문제해결 능력을 요구한다"며 "점수로는 측정할 수 없는 역량을 대학이 길러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태재대의 수업 방식은 AI 시대에 맞춘 새로운 교육 커리큘럼으로 주목받고 있다. 염 총장은 고려대 총장직을 마치고 3년 전 태재대로 옮긴 후, 마침 대통령이 위원장으로 있는 국가인공지능위원회의 민간 부위원장직도 1년 전부터 수행 중이다. 인공지능 혁신을 교육에 접목하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염 총장은 지난 3월 18일 KBS 다큐멘터리 '인재 전쟁'에 출연해 빠르게 변화하는 교육 환경 속에서 대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20세기 획일적 교육으로는 미래를 대비할 수 없다"며 "태재대는 자기주도성과 창의적 역량을 중심으로 한 21세기형 교육 모델을 실험하고 있다"고 밝혔다. 염 총장은 기존의 입시·강의 중심 교육을 "정보가 부족하던 시대의 산물"로 규정하며, 학부 교육의 목적을 "취업 준비가 아닌, 학문적 기초체력을 기르는 과정에 두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 "온라인 학습과 소(小)학위(micro degree) 등 새로운 고등교육 형태가 확산되고 있지만, 전통 종합대학은 덩치가 커서 구조적으로 급격한 전환이 어렵다"며 "태재대 같은 신생대학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설계하고 실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염 총장에 따르면 논문 작성에 AI 활용을 얼마나 허용할 것인지를 묻는 지금의 질문은 1970년대 공대에서 계산기 사용을 허용할지의 논란과 마찬가지다. 대학 교육에 AI를 도입할지 말지 논쟁하는 건 마치 19세기 말에 근대교육 도입을 놓고 고민하는 것과 비슷한 것 아닌가. AI 도입은 비가역적이며, 우리 삶 전체를 바꿀 것이란 점을 부정할 수 없다고 단정했다. AI 활용이 학생의 비판적 사고능력이나 창의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도 "전화번호 100개를 외우는 암기력을 자랑하던 시절이 있었다"며 "AI가 잘하는 능력을 빌려쓰고, 대신 인간은 다른 능력을 개발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심리학과 교육학에서는 '안다'는 뜻의 지(知)를 흔히 4단계로 분류해왔다. 암기, 분석, 종합, 창조가 바로 그것이다. 맨 처음 암기 단계에서는 백지 상태의 두뇌에 지식을 채워 넣는다는 의미에서 '텅 빈 서판(Tabula Rasa)' 이론이 대세를 차지했다. 인류 최초의 지적 전승은 말로 전달하는 암송이었다. 고대에 제사장이 신탁(神託·신의 계시)의 오의(奧義·핵심 의미)를 민중에 전파하는 형식은 염불 같은 청각적 서사(敍事)였다. 이야기에 리듬과 멜로디를 입힌 노래의 형태가 주류를 이루었다. 북유럽의 라그나뢰크 전설, 그리스 시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중국·한국·일본 등 아시아의 건국신화들은 음유시인을 통해 세계 방방곡곡에 퍼졌다. 몇 시간에 걸친 수천, 수만 줄의 이야기를 뛰어난 기억력을 가진 사제가 라임을 붙여 힙합 음악처럼 몇 번이고 재생했다. 고대 지식은 이렇게 입과 귀를 거친 암기의 형식으로 전승됐다.
다음 시대의 분석과 종합 단계에서는 방대한 정보를 잘게 분류하고, 다시 흩어진 조각에서 통일된 질서를 찾아내는 논리적·통합적 능력이 지식인의 징표로 꼽혔다. 숫자와 문자가 발명되면서 귀로 들은 내용을 눈으로 볼 수 있게 기록하는 도구가 생기면서부터였다. 두루마리 양피지와 죽간이 외장 하드웨어 메모리 역할을 하자 암기의 중요성은 줄어들었다. 물론 기본적인 머릿속 저장량은 필수였지만 오히려 방대한 기록을 신속하게 읽고 요약하는 문해력이 더 긴요해졌다. 그만큼 정보의 양이 늘어났다는 증거다. 읽기가 처음에 소리를 내 낭독하는 형태에서 눈으로만 보는 묵독으로 변했다는 점은 암기에서 분석과 종합으로 넘어간 지식의 발전 단계, 청각에서 시각으로 옮겨간 감각 전이를 상징한다.
마지막 창조 단계에서는 외견상 전혀 무관해 보이는 지식 더미 속에서 완전히 새로운 형식과 설득력을 지닌 신지식체계를 만들어내는 직관과 통찰의 힘이 최고 지성인을 의미하게 됐다. AI 시대에는 암기와 분석·종합이 인간의 열세로 기울고 있다. 창조마저 생성 AI가 그럴듯한 B급 모작을 내놓는다. 이 시대의 창조란 AI 도구를 전에 없던 방식으로 새롭게 활용하고, 그 결과물에 빠진 20%의 최종 승인을 감각적으로 해내는 인간의 기획 및 감수 능력인지도 모른다. '더불어 AI' 교육을 탐구하는 대학 혁신이 21세기 지성의 지평을 다음 차원으로 확장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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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성열 논설위원 |
● 노성열은
30여 년 경력의 경제부 기자로 산업계와 인공지능(AI)을 주로 취재했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정부 부처 및 경제 단체를 출입하면서 삼성, 현대, SK 등 대기업과 중소벤처업계 현장에서 발생하는 뉴스를 다루어왔다. 일본, 법제도, AI를 포함한 첨단 과학기술 등이 주 관심분야다. 언론계뿐 아니라 학계에도 진출해 지식재산권(IP) 인식 제고와 공학교육 개혁에 매진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공학석사,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일본지역학 석사, 고대 법대 및 한국외국어대 일본어학과 학사 △1991년 문화일보 입사 △북리뷰팀, 법조팀, 산업팀장, 전국(지방자치)부 부장 △한국지식재산기자협회(KIPJA) 회장(2024~)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외부협력 총장 보좌역(2024.6~) △영국 옥스퍼드대 VOX(Voice From Oxford) 한국지부 대표(2024~)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과학과 기술' 편집위원(2023~) △국가녹색기술연구소 정간물 편집위원(2024~) △식품의약품안전처 정책자문위원(2020~2022)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데이터미래전략위원회 미래정책분과 자문위원(2021~2023)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 '인공지능 활성화 방안 연구' 총괄위원(2023) △주요 저서: 뇌 우주 탐험(이음, 2022), 인공지능 시대 내 일의 내일(동아시아,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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