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구자경 회장의 ‘치매 병력’도 공격의 빌미
‘인화(人和)’와는 동떨어진 세 모녀와 아들의 상속 재판
‘인화(人和)’를 중시한다는 LG그룹도 재산을 둘러싼 상속 다툼의 양상은 여느 재벌가와 다르지 않았다.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서라면 망자(亡者)의 치부도 까발릴 수 있고 선대(先代)의 위신도 고려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두 번째 재판에서 거론된 ‘회장님의 금고’
고 구본무 선대회장의 부인 김영식 여사와 두 딸(구연경 LG 복지재단 대표, 구연수씨) 등 세 모녀가 구광모 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상속 분쟁의 두 번째 재판이 지난 16일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렸다. 이날 재판은 LG그룹 재무관리를 담당하면서 오너 일가의 재산관리와 상속 업무를 총괄한 하범종 ㈜LG 경영지원부문장(사장)이 증인으로 나왔다.
원고(세 모녀) 측은 ‘회장님의 금고’를 들고 나왔다. 고 구본무 회장의 사무실 금고를 직계 유족의 동의 없이 첫째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과 하 사장이 금고를 개방한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면서 금고 속에 고 구본무 회장의 유언장이나 다른 물건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것 아니었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하 사장은 구본무 회장의 금고는 사적 재산이 아니라 회사재산이었다고 설명했다. 개방 과정에 대해서는 구본능 회장(구광모 회장의 친부)이 열어보자고 제안해서 자신의 참관 아래 연 것이라고 말했다. 금고를 연 이유는 고 구본무 회장의 프라이버시한 물품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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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여의도 LG사옥. 원안은 구광모 회장. [UPI뉴스 자료사진] |
‘회장님의 금고’ 속 프라이버시한 물품은?
그러자 원고 측에서는 프라이버시한 물품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답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하 사장은 고 구본무 회장의 프라이버시와 관련된 것이라 공개된 법정에서 답하기 곤란하다며 판사에게 따로 말 할 수 있다고 답했다. 재판부는 공개법정에서 증언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면서 비공개 재판에서 질의하라며 원고 측 질문을 제지했다. 따라서 다음 달 19일 비공개 재판에서는 ‘회장님 금고’ 속의 프라이버시한 물품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사람은 누구나 남에게 알려지기를 원치 않는 비밀이 있기 마련이다. 비록 비공개 재판에서 증언이 나오겠지만 고 구본무 회장의 사적인 비밀은 더 이상 지켜지기 어려울 가능성이 커졌다. 만약 그것이 혹시라도 남사스러운 내용이라면 더더욱 대중의 입방아에 오를 수모도 각오해야 할 것이다.
‘장자승계의 원칙’ 부정하기 위해 소환된 고 구자경 명예회장 치매 병력
이날 재판에서는 일반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고 구자경 명예회장의 치매 병력도 취재진에게 공개됐다. 원고(세 모녀) 측에서는 고 구자경 명예회장이 치매로 인해서 2009년부터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 된 것 아니냐고 캐물었다. 하 사장이 2009년에는 치매가 심하지 않았다고 답하자 원고 측은 구체적인 연도를 좁혀가며 언제부터 의사소통이 안 됐는지 따졌다. 이에 대해 하 사장은 고 구자경 명예회장이 치매로 의사소통이 안 된 시기는 2016에서 2017년이었다고 밝혔다.
원고 측이 이처럼 집요하게 고 구자경 명예회장의 치매 병력을 따진 것은 2019년 고 구자경 명예회장이 사망한 이후 남은 재산 대부분을 구광모 회장에게 상속한 것이 올바른 판단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부각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또 LG그룹에서 당연시하고 있는 ‘장자승계’의 원칙을 흔들기 위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아들 먼저 보내고, 자신은 아버지보다 먼저 간 고 구본무 회장
고 구본무 회장은 기업가로서는 큰 성공을 이뤄냈지만, 가정사에서는 비극을 피하지 못했다. 1994년 친아들 구원모 씨가 19살의 나이에 사망하는 아픔을 겪었고 자신도 아버지인 고 구자경 명예회장보다 1년 앞서 2018년 먼저 세상을 떠난 것이다.
고 구본무 회장은 자신이 아들을 잃는 참담함을 겪었던 만큼 사망 직전까지 자신의 병세를 아버지인 고 구자경 명예회장에게 알리는 것을 막았다고 한다. 그런 아들 입장에서 아버지인 고 구자경 명예회장의 치매 병력이 드러나는 것을 원했을 리가 없었다.
이처럼 고 구본무 회장은 가족 간의 인화를 중하게 여겼지만, 사후(死後)에 벌어진 재산 싸움은 집안의 모든 치부를 드러내고 위신을 깎아내리고 있다. 더구나 재판이 오래 끈다면 언제 어디서 또 다른 치부가 튀어나와 망자(亡者)의 무덤 자리를 어지럽히지나 않을지 걱정스럽다.
KPI뉴스 / 김기성 대기자 bigpen@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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