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내 안의 '쥐새끼'를 어찌할까"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2024-01-12 16:55:24
자유로운 형식의 장편 '사람의 길' 펴낸 소설가 한승원
사람의 길은 사람들 속 쥐새끼들과 지난한 싸움의 길
결핍을 채우려는 우주의 율동, 과정의 윤리가 중요
"나의 '이삭줍기' 한두 줄이 누군가 구원할 수 있기를"

모든 야만 세상에는, 깨달은 사람들이 그토록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 '쥐새끼적인 소인 근성'을 가지고 살면서 이념과 진영 논리에 휩싸인 채, 자기만 정직하고 정의롭고 공평한 체하는 사람들이 우글거리네. 그들의 눈에 진리가 보일 리 없지.…그것은 광기의 들숨 날숨이어서, 감성이 여린 상대일 경우 그를 죽음에 이르도록 물어뜯기도 하네. 

 

▲ 시, 에세이, 소설, 동화 형식을 자유롭게 활용해 '흑백 망점 기법'으로 장편을 엮어낸 원로 소설가 한승원. [한승원 제공]

 

원로 소설가 한승원(85)이 최근 펴낸 자유로운 형식의 소설 '사람의 길'(문학동네)은 사람들 속에 숨어 있는 '쥐새끼들'과의 지난한 싸움의 길이기도 하다. 시, 에세이, 동화, 소설을 혼융해 자신만의 이야기 방식으로 '만년의 양식'을 도모한 '장편소설'이다. 

 

장흥 율산마을로 일찌감치 내려가 '토굴'을 짓고 줄기차게 소설을 집필해온 한승원은 이번 소설에서 분신들을 내세워 자신과 대화를 시도한다. 작가 자신을 둘로 나누어 서로 논쟁을 하며 그동안 축적해온 사유를 활달하게 펼쳐낸다. 소설 속에서 야만 세상을 통렬하게 질타하는 노인은 소인들이 속에 품고 있는 '쥐새끼'를 척결하는 일이야말로, 사람의 길이라고 역설한다.

일찍이 '아제아제 바라아제'라는 불교소설을 써서 대형 베스트셀러를 기록했고, 임권택 감독의 영화로까지 만들어져 호를 날렸던 한승원은 불교에 깊은 식견을 지녀온 터였다. 그가 '초의선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장편을 펴내기도 했거니와, 그 소설에서 만든 초의의 일화에 '쥐새끼론'이 등장한다.

한소식을 얻었다는 선승들이 쌍봉사 늙은 스님에게 찾아가 인증을 받기 위해 줄을 서는데, 초의도 오래 기다렸다가 어렵게 그 스님을 만나서는 정작 "여기 늙은 쥐새끼 한 마리가 사람 껍질을 쓰고 앉아 있다고 해서 본디 자리로 돌려보내려고 왔다"고 목청을 높였다. 늙은 스님이 허공으로 얼굴을 쳐들고 "그래, 너처럼 그렇게 한눈에 내 속에 기생하는 그 쥐새끼를 꿰뚫어봐버린 놈은 처음"이라면서 초의의 코를 잡아서 비틀었다는 일화가 그것이다.

전화로 만난 한승원은 "도를 닦는 일은 사람들 속에 들어 있는 쥐새끼 같은 근성을 없애는 것인데, 요즘 사람들은 그 길을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자유로운 형식으로 짧은 에피소드들을 나열함으로써 전통적인 플롯의 긴 서사보다 오히려 흥미롭고 알찬 느낌이다. '이삭 줍기'라는 표현을 썼다.
"밀레의 이삭줍기는 아주 작은 낟알들을 주워 모으는 것이지만, 그것은 누군가의 성스러운 밥이 되었을 터이므로 교향곡처럼 장엄한 그림으로 읽힌다. 나의 이삭줍기로 쓰인 글 한두 줄도 누군가를 구원해주는 까치노을 같은 금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의 이삭줍기는 일종의 종합 정리 방식이기도 하다. 소인배가 된다는 것은 벌레가 되는 것인데, 요즘 사람들은 소인배처럼 길을 잃어버린 것 같다."

-길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대안은 무엇일까.
"본연의 자신으로 회귀하는 길이 최선이다. 사명대사 말처럼 '자기 속의 쥐새끼를 잡아 죽이고 사람으로 우뚝 서는 것'이다. 요즘은 정치도 나를 빼고는 전부 적인, 그래서 모두 죽이고 살아남아야 하는 게임처럼 변질되고 있다. 양당정치 운운하는데, 죽기 아니면 살기 식이다. 나 살고 너 죽기, 그런 양상 아닌가. 그런 세상으로부터 벗어날 해결점은 인간 본연의 길로 들어서는 거다. 그 길이라는 것이 예수나 석가모니가 가던 길인데, 사람이 되는 것인데, 사람이 된다는 것은 욕심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아닌가. 요컨대 쥐새끼 근성을 가진 인간 소인배에서 대인이 되는 것이다."

한승원은 '음유 시인'을 분신으로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가 써온 시편들을 곳곳에 배치한 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을 취하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의 논리와 생각을 세상을 향해 펼쳐내는 '우주 상담사' 역할을 자청하기도 한다. 그가 생각하기에 '시인'이 '우주 상담사'보다 한 수 위다. 내 안의 쥐새끼를 척결한 지고의 상태가 '시인'이라는 생각이다. 한승원의 분신인 '율산'과 '해산'은 동거하면서 티격태격한다.

율산은 '나'를 두고 '얼핏 보면 반편 같고, 어찌 보면 곱게 퇴행하는 어리숙한 늙은이'라고 평하면서 '과대망상을 가진 식물성의 아나키스트'라고 몰아붙이기도 한다. 나는 나대로 율산을 '사실은 어리석은데, 스스로 어리석은 줄 모르는 모자란 놈, 소인 근성의 잘난 체하기로 이골이 난 놈'이라고 비판한다.  

 

▲ 한승원은 자신의 분신인 '음유시인'을 내세워 섬들을 돌아다니며 우주와 교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실패는 중요하지 않고, 자기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채플린의 말을 인용해 자신을 객관화시키는 대화가 흥미롭다.
"자기를 웃음거리로 만들어 놓으면 자신의 삶도 그렇게 바르게만 살지 않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게 된다. 노년에 그렇게 살면 권위의식에서 놓여나니까 오히려 자유롭기도 하다. 우주 상담사는 깨닫고 넓게 알기는 알지만 속에 쥐새끼 같은 게 들어 있어, 시인에서 한 단계 강등된 존재인 것이다. 나는 그 시인과 우주 상담사 사이를 오가는 존재인 셈인데, 사실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간사한 것 같기도 하다. 하루라도 쓰지 않으면 답답해하는 것은 결핍 때문이다."

소설에서 '율산'은 '결핍'이야말로 모든 것의 추동력이라고 설파한다. 작품을 통해 독자들에게 천기누설을 일삼는 시인 소설가와, 경전 읽기와 참선을 통해 수도하고 그것을 중생들에게 되돌려주려 하는 스님들은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 많은 영혼의 결핍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정진은 깨달음의 텅 빈 충만이 이룩될 때까지 계속되는 것이라고 부연한다. 문제는 '결핍'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결핍을 채우는 과정에서 엄정한 윤리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언설이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결핍은 비어 있는 자리의 채우기이네. 꽃이 바람과 벌과 나비를 동원해서 수정하는 것과 벌이 꿀을 빨아가는 행위는 들숨이고 그것을 뱉어내 저장하는 행위는 날숨이지. 우주는 하나의 큰 구멍인 것이고 모든 구멍은 결핍을 가지고 있어. 우주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들숨 날숨을 거듭하며 살아 있는 한 결핍을 가지고 있고 또 채우려고 하는데 그것은 우주의 율동이네. 사랑하기라는 것도 결핍 채우기이네.

한승원은 "살아 있는 한 시와 소설을 쓰고 시와 소설을 쓰는 한 살아 있을 것"이라고 줄곧 피력해왔는데, 이번 소설에서도 후기에 독자의 질문 형식으로 다시 언급한다. 독자는 '시와 소설을 쓸 수 없게 되면 당신의 삶을 스스로 끝낼 수도 있다는 것이냐'고 물었다.

꿈속에서, 천상과 지상과 지하로 끝없이 이어진 많고 많은 계단들을 실수 없이 정확하게 계속 밟아 내려가고 다시 밟고 올라가기만 하는 자는 그 고통스러운 꿈에서 깨어나지도 못하고, 다시 깊은 잠을 새로이 자지도 못한 채 밤새도록 그 꿈속 계단에서 헤매지만, 거기서 발을 헛디디어 추락하는 자는 깜짝 놀라 깨어난 다음 새로이 깊은 잠을 잘 수 있습니다.

 

▲한승원은 "누군가의 결핍으로 허기진 영혼을 구제해주고 싶다"고 썼다. [한승원 제공]

 

-떨어지기 위해서 계단을 오르는 역설이다.
"계단을 오르다 떨어져버리면 다시 꿈에서 깨어나 새로운 잠을 잘 수 있다. 길을 잃어버리면 잃어버린 자리에서 새 길이 열린다. 언어도단(言語道斷),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 말하자면 깨달음 얻기이다. 올라가야 떨어질 것 아닌가. 이것도 결핍 때문일 것이다."


한승원은 자신의 '이삭줍기' 사업을 일컬어 '화엄(華嚴 ) 같은 삶의 장엄(莊嚴)'이라고, 분신을 내세워 규정한다. 그는 '늙은 시인이 수집한 까치노을 같은 이삭은 누군가의 결핍으로 허기진 영혼을 구제해줄지도 모른다'고 기대한다. 한편에서는 점박이갈매기를 동원해 '과대망상이 아주 심하다'고 빈정거리면서도 정작 시인은 그 빈정거림을 즐긴다고 썼다. 그는 여전히 기대한다.

깨어 있는 개가 어둠의 어른거리는 한 형상이나 울리는 지축을 향해 짖듯이, 귀를 가진 모든 것은 소리 나는 쪽으로 돌아보고 짖습니다. 소리 나는 쪽에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길이 이야기가 되고 그 속에 또하나의 새 길이 열립니다. …소리 나는 쪽으로 돌아보듯 나는 가장 쉽고 편리한 곳을 향해 길을 만들어갑니다. 이 소설이 내 최후의 길입니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 문화부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