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공원역은 경마만 하러 오는 곳 아냐"…이준석 비판
"경마공원역, 4호선 중 무임승차 최고" 李발언 반발 거세
노인 무임승차 폐지 반대…"연령 기준 높이는 것도 방법"
30일 오전 10시 경기도 과천시 과천동. 지하철 4호선 경마공원역 1, 2번 출구 사이를 걸어가니 작은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실버 성지'로 불리는 바로마켓이다.
물건이 가득 담긴 장바구니를 양손에 들고 지하철 역으로 향하던 70대 이 모 씨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 물건이 아주 싱싱해요. 그래서 일주일 중 이틀 장이 열리는데, 하루는 꼭 옵니다. 서둘러 가봐요. 물건 다 팔리기 전에…"
경기도 평촌신도시에 산다는 이 씨는 "지하철을 타면 한번에 오기 때문에 자주 온다"고 했다. '뭘 샀느냐'는 기자 질문에 "과일, 고기, 야채를 샀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100% 국산이기에 품질 하나만큼은 끝내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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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월 30일 오전 11시쯤 경기도 과천시 경마공원역 인근 농축수산물 직거래장터 바로마켓 모습. 시장 내부는 물건을 사러 온 노인들로 붐볐다. [김명주 기자] |
바로마켓은 농림축산식품부 주관으로 지난 2009년 문을 연 직거래 장터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농산물을 생산자가 직접 팔기 때문에 불필요한 유통 마진이 획기적으로 줄었다. 생산자는 제값에 팔고 소비자는 싸게 사기에 서로 '윈윈'이다. 매주 화·수요일 오전 10시~오후 5시 열리는 바로마켓에는 140여 곳 생산업체의 450여 개 품목이 거래된다.
이 곳은 그간 노년층이 아니면 굳이 시간을 내어 찾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랬던 바로마켓이 최근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은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와 김호일 대한노인회 회장의 설전 때문이다.
이 대표는 지난 26일 CBS 라디오에서 "4호선 51개 지하철역 중에서 가장 무임승차 비율이 높은 역은 경마장역"이라며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폐지를 주장해 논란을 불렀다.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3선 의원 출신인 김 회장은 같은 라디오에 출연해 "지하철 적자 요인과 노인의 무임승차는 상관관계가 없다"며 방만 경영, 요금 문제 등에 따른 적자를 노인들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틀 뒤엔 성명을 발표해 "경마공원역 인근 화요일, 수요일에 열리는 '바로마켓'에서 직판매가 이뤄지기 때문에 합리적인 소비를 희망하는 노인들이 많이 온다"고 주장했다.
현장을 찾은 화요일(30일) 오전. 바로마켓은 김 회장 말대로 머리색이 희끗희끗한 노인들로 붐볐다. 이들은 시장 내 비치된 카트를 끌거나 한 손에 장바구니를 들고 느릿하게 걸으며 시장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렸다. 매대 위에는 전남 영광 반건조 민어와 굴비, 충북 충주 사과, 제주 서귀포 감귤, 충남 논산 고추장과 된장 등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상품이 널려 있었다.
시식을 권하며 상품을 홍보하는 상인들과 가격을 흥정하는 이용객들의 목소리가 시장을 가득 채웠다. 정오가 가까워질수록 이용객 수가 늘어 시장 안은 매우 혼잡했다.
재래김 박스가 얹힌 장바구니 카트를 끌고 경마공원역으로 이동하던 85세 신 모 씨는 "김치, 콩나물, 상추, 김을 샀다"며 "서울 청량리 재래시장보다는 값이 조금 더 나가지만 물건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인 A급"이라고 말했다.
이곳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상인 허 모 씨는 기자가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하자 웃으며 "여기에는 어르신들이 많이 오기 때문에 차가운 음료가 잘 팔리지 않는다"고 전했다.
바로마켓을 관리, 운영하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지난해 이곳 방문자 수는 80만 명가량으로 추산된다.
바로마켓 이용하러 경마공원역 오는 노인들…"무임승차는 소중한 기회"
시장 현장에서도 이 대표의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발언은 단연 화제였다. 대다수가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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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월 30일 지하철 4호선 경마공원역 승강장에서 시민들이 장바구니 카트를 끌며 이동하고 있다. [김명주 기자] |
부부인 80대 오 모 씨와 70대 최 모 씨는 모두 이 대표를 향해 "잘못된 주장"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오 씨는 "경마와 같은 도박은 두뇌회전이 잘 돼야 하는데 우리처럼 나이가 들면 그런 것도 어렵다"며 "지하철공사 경영 수지를 개선해야 한다는 점은 동의하지만 마치 우리 때문에 그렇게 됐다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서울시 열린데이터광장의 '지하철 호선별·역별 유·무임 승하차 인원 정보'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4호선 경마공원역 무임승하차 비율은 43.23%다. 4호선 역사 중 수치가 가장 높다.
그러나 전체 지하철 호선별·역별로 살펴보면 경마공원역 무임승하차 비율 순위는 18위에 불과하다. 경원선 연천역(66.44%)이 1등이고 △경원선 소요산역(64.76%) △경의중앙선 운천역(58.63%) △1호선 제기동역(53.98%) △경의중앙선 원덕역(52.75%) 순이다.
인원 기준으로는 1, 3, 5호선 환승역인 종로3가역이 59만7539명으로 가장 수가 많다. 이어 △1호선, 수인선, 경의중앙선 환승역 청량리역(55만1056명) △1호선 제기동역(52만8728명) △3, 6호선 환승역 연신내역(51만7114명) △1호선 종로5가역(48만5770명) 순이다.
경마공원역은 18만1945명으로 전체 순위에서 100위권 밖에 있다. 인원 기준으로 봐도 경마공원역에서 공짜로 지하철을 타는 노인 숫자는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바로마켓에서 시금치, 달걀, 쪽파 등을 샀다는 72세 박 모 씨는 "힘들게 사는 노인들이 많다"며 "형편이 어려운 노인들은 무임승차가 가능하게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간 12만 원은 너무 적은 금액"이라며 아쉬움도 표했다.
개혁신당은 65세 이상 노인의 지하철 무임승차 혜택을 없애는 대신 지하철, 버스, 택시 등에서 사용 가능한 연간 12만 원의 선불형 교통카드를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한 바 있다.
70대 공 모 씨는 "낮에는 지하철이 텅텅 비어있다"며 "돈 없는 노인네들한테는 지하철을 무임으로 타고 돌아다닐 수 있는 기회가 소중하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신 모 씨는 "80세 이상에 한해 무임승차를 실행하는 등 연령 기준을 높이는 방법도 있다"며 "지하철 무임승차 전면 폐지는 과하다"고 지적했다.
KPI뉴스 / 탐사보도부 김명주 기자 kmj@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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