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자리 좁아진 중소영화 "변칙개봉 변질" 분통...영진위 '불공정' 규정
| ▲ 할리우드 에니메이션 슈퍼배드4 |
K-Movie가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며 일취월장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메이저배급사들이 관행처럼 진행하는 '유료시사회'가 한국 영화계를 멍들게 하고 있다. 이런 유료시사회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갈수록 규모가 커져 이젠 아예 중소 영화의 설 자리마저 빼앗고 있다는 지적이다.
논란은 지난 7월말 개봉한 할리우드 에니메이션 '슈퍼배드4'에서 재점화했다. 이 영화는 공식 개봉일 직전 주말에 진행된 유료시사회에서 무려 76만8000석을 선점했다. 상영횟수도 5090회로 상영점유율이 12%를 웃돌았다. 이는 웬만한 블록버스터급 화제작의 개봉 첫 주 좌석 규모에 맞먹는다. 비록 실제 동원 관객은 10만여 명에 그쳤지만 이 영화의 초대형 시사회가 기존에 상영 중인 다른 영화에 피해를 줬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시사회(試寫會)의 사전적 의미는 새로 제작한 영화를 공식 개봉에 앞서 제작진이 참여한 가운데 특정 소수를 초청, 상영하는 작은 모임이다. 말하자면 베타테스트(클로즈베타)인 셈이다.
하지만 최근 영화계에 만연한 유료시사회는 단지 이름만 시사회일 뿐이다. 일단 '유료'란 꼬리표를 단 것부터 본질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시사회 목적 자체도 '테스트'보다는 '마케팅'에 방점이 찍혀 있다. 만약 마케팅이 목적이라면 제작사가 비용을 부담하는 게 마땅하지만 유료시사회라는 이름을 걸었으니, 비용은 관객의 몫이다.
영화 배급사나 제작사는 왜 이런 유료시사회를 할까.
유료시사회는 매우 경제적인 마케팅 수단인 동시에 효과적인 '바이럴' 기법으로 통한다. 개봉 전에 관객 반응을 미리 살펴보고 입소문을 기대할 수 있다. 게다가 유료시사회에 특별 초청된 관객 수는 '전체관객수'에 포함, 초기 영화흥행을 판가름하는 바로미터가 된다. 그러니 시사회는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기'인 셈이다.
유료시사회는 경쟁작과의 경합에서 우위에 서고자 하는 목표를 가진 배급사와 개봉 전 주말에 최대한 관객을 동원하고자 하는 극장 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합작품이다. 문제는 무분별한 유료시사회가 중소 영화제작사나 배급사의 설 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사실이다. 스크린 수와 좌석수가 제한된 상태에서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정식 개봉 전에 좌석을 대거 점유한 데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상영 중인 다른 영화의 몫이 된다. 많은 영화인이 대규모 유료 시사에 대해 '꼼수개봉', '변칙개봉'이라고 볼멘소리하는 이유다. 급기야 최근 영화진흥위원회까지 나서 이런 유료시사회를 두고 "유료시사회가 영화시장의 공정한 질서를 교란하는 행위"라며 시정을 권고했다.
세계적으로 일반인 관객 대상의 시사회는 늘상 있다. 하지만 이들의 사례는 우리의 대규모 유료시사회가 통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외국의 시사회는 주로 배급사가 관객 반응을 참고해 홍보와 추가 편집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진행한다. 그 범위도 제한적이다. 우리처럼 아예 마케팅을 주된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 그러니 그들은 당연히 시사회 관객 수를 공식 '관객수'에 포함하지 않는다. 미국 할리우드에선 더러 경쟁작과의 경합을 피해 개봉일을 갑작스럽게 바꾸는 '프리 릴리즈'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정당한 전략으로 인정받는다. 여러 면에서 대규모 유료시사회로 둔갑하는 '한국식 변칙개봉'과는 개념이나 출발점 자체가 다르다.
유료시사회를 바라보는 관객들의 반응이 엇갈리는 것도 사실이다. '남보다 먼저 새로운 것을 경험할 좋은 기회'라며 반기는 얼리어답터(Early-adopter)적 여론도 분명 존재한다. 자신이 손꼽아 기다려온 영화를 하루라도 빨리 감상할 수 있는데 뭐가 문제냐는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전문가나 관객은 대규모 유료시사회가 힘없는 중소 영화들의 스크린을 빼앗아 결국 '관객의 영화 선택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데 동의한다.
중소 영화인들은 일부 블록버스터 영화, 특히 외화를 중심으로 갈수록 대형화하는 유료시사회에 분통을 넘어 분노를 터트린다. OTT 시장 확대 등으로 애초 많은 중소 한국 영화들은 손익분기점 달성에 애를 먹고 있다. 이런 시점에 벌어지는 극장과 외화 수입사의 대형 유료시사회에 "아예 한국영화를 죽이려 한다"는 분노의 얘기마저 나오는 것이다. 막대한 자본력과 강력한 인지도를 가진 블록버스터 영화와 출발점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중소영화계에 '유료시사회'는 공정 경쟁 환경을 파괴하는 가장 큰 원흉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뭔가 기준점을 만들어야 할 때가 된 것은 분명하다.
먼저 '유료시사회'라는 용어부터 바꿔야 한다. 정식 개봉일을 잡아놓고 사실상 정식 개봉에 가까운 유료시사회를 여는 것 자체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백번 양보해서 유료시사회가 효용성이 큰 새로운 영화 마케팅 기법이라 해도 공급자 중심의 스크린 독점은 중장기적으로 영화산업에 득보다 실이 많다.
유료시사회를 막을 방법이 없다면 영화계 스스로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합리적인 '가이드라인' 정도는 만들어야 한다. 중소영화계의 의견도 수렴해 시사회에 대한 '스크린수와 좌석수'의 자율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물론 일관된 적용은 불문가지다.
전문가들은 "시장 논리에 입각해 현재의 유료시사회를 그대로 방치하면, 중소 영화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질 수밖에 없다"며 "한국문화예술의 다양성 강화 측면에서 봐도 무분별하게 이루어지는 대규모 유료시사회는 어떤 식으로든 조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국 영화계가 기로에 선 상황이다.
KPI뉴스 /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Jasonyim@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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