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첫 소설집을 펴냈던 이정주(73) 시인이 자신의 다섯 번째 시집 '피아노와 빙벽'(도서출판 북인 펴냄)을 들고 시의 세계로 귀환했다. 2014년 시집 '아무래도 나는 육식성이다' 이후 12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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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피아노와 빙벽' 표지에 저자 이정주 시인의 사진을 AI로 편집한 이미지. |
약사 출신으로 1982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이래, 독창적인 언어 실험과 존재론적 사유를 이어온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도 초현실주의 기법을 통해 현실의 중력을 뛰어넘는 초월의 이미지를 펼쳐 보인다.
<<피아노는 스스로 빙판 위를 나아간다/ (중략) / 빙판 끝 높다란 빙벽 앞에서 피아노는 멈추어 선다. 여자는 버스에서 내려 오랫동안 들판을 걸어간다/ (중략) / 여자는 세상의 경계를 지나 얼음나라로 걸어간다/ 중략 / 빙벽이 보이고 빙벽 앞에 선 피아노가 보인다. 여자가 피아노 앞에 서자 여자의 몸은 얼어서 움직이지 않는다/ 여자는 쓰러지면서 피아노를 때린다/ 피아노는 커다란 소리를 낸다. 빙벽이 쪼개진다/ 새 떼가 날아오른다/ 여자는 얼음 위에 없어져 있다/ 피아노는 얼음 속으로 조금 더 나아간다>> (피아노)
지난해 등단 35년 만에 첫 평론집을 낸 김정수 시인은 '피아노와 빙벽' 후반부 해설란에서 "피아노는 더 이상 악기가 아니라 야생의 공간에 놓여 있는 사물이며, 이성의 통제가 완전히 붕괴한 순간 터져 나오는 무의식의 폭발"이라며 "여자의 죽음에 가까운 희생은 인간이 자신의 유한성과 한계를 끝까지 밀어붙일 때 마주하게 되는 실존의 역설을 보여준다"고 풀이했다.
그러면서 "(이정주 시의 주체가 보여주는) 한계의 초월 의지는 마르틴 하이데거가 말한 '현존재'(존재자)를 떠올리게 한다. 현존재는 사물이나 타자, 자아와 얽힌 의미의 그물망에서 살아간다"며 "이 같은 하이데거의 현존재와 시간성, 공간성은 이번 시집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 키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시집은 4부로 나뉘어 116쪽에 걸쳐 총 43편을 수록하고 있다. 이정주 시인은 책 인사말에서 "시는/ 어릴 적에/ 한 대 맞고 눈물났던/ 접종 주사 같다/ 오래 간다. 나이 들도록 시를 쓰다니"라고 적었다.
이정주 시인은… 1953년생인 이정주 시인은 부산대 약학과를 졸업한 약사 출신으로, 1982년 등단 이후 서울에서 《외국문학》 편집장을 맡아 유럽의 포스트모더니즘을 국내에 소개하는 데 앞장섰다. 현재는 경기도 안산 대부도에서 포도농사를 지으며 집필을 이어가고 있다. 그간 시집 '행복한 그림자'(1987) '문밖에 계시는 아버지'(1989) '홍등'(2009) '아무래도 나는 육식성이다'(2014) 등을, 산문집 '옛 성을 찾아가다'(2004) '붉은 등을 단 집들'(2017년) 등을 펴냈다. |
KPI뉴스 / 최재호 기자 choijh1992@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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