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균의 금융경제 읽기] 트럼프 관세 협상의 정치경제학

조홍균 객원논설위원 / 2025-08-06 10:54:24
韓조선산업이 관세 협상 핵심 카드···원동력은 65년전 어느 기업가정신
행정부 전문역량과 정책 정합성 긴요···정치 본분은 교육가이자 중재자
이번 관세 전쟁 승자, 패자 판단 아직 일러···협상 정치경제학 주시해야

축배를 들 단계는 전혀 아니지만 미국 트럼프 행정부와 한국이 이번에 타결한 관세 협상에서 주효한 슬로건은 'MASGA(Make America Shipbuilding Great Again)', 즉 '미국 조선산업을 다시 위대하게'였다. 한국 조선산업이 미국 조선산업을 부흥시키는 프로젝트가 협상의 핵심 카드였고 이는 관세율 인하 등 협상 타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국 조선업체들이 미국 내 조선소 건설, 기술 이전, 인적자원 훈련, 공급망 재구축 등을 통해 미국 조선산업을 재건하는 1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프로젝트다. 전체 3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안 중 선박 부문에 1500억 달러가 할당된 것이다.

 

▲ 대통령실이 지난 3일 서울 용산 청사에서 한미 관세협상에서 쓰였던 '마스가 모자'를 공개하고 있다. '마스가(MASGA·Make America Shipbuilding Great Again)'는 한국이 미국에 제안한 미국 조선업 부흥 캠페인으로 이번 협상의 주요 카드로 쓰였다. [뉴시스]

 

한국 정부와 주요 조선사들은 공동 TF 구성과 함께 'MASGA' 로고가 새겨진 모자까지 제작하여 미국 측에 홍보했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도 좋은 아이디어라고 평했다. 트럼프의 정치적 상징인 'MAGA(Make America Great Again)'와 미국 전략산업 부흥에 기여하는 경제적 가치를 동시에 담은 슬로건을 활용하는 공감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한국 조선산업의 높은 경쟁력이 이번 관세 협상 타결의 핵심 요소였고 정부와 기업은 이를 협상 전략으로 연결했다.

 

오늘의 한국 조선산업은 어떻게 시작되었던가.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정주영 회장은 울산에 한국 최초로 조선소를 건설하기 전에 유럽 등의 선박 건조 수주를 먼저 따낸 도전적 전략으로 유명하다. 1950년대 후반 한국은 조선 기술이 낙후된 데다 조선소마저 없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정 회장은 한국 조선업의 잠재력에 대한 신념을 바탕으로 선박 수주를 먼저 성공시킨 후 조선소 건설에 착수했다. 산업 발전사에 보기 드문 전략이었다. 1960년대 초반 현대중공업 조선소가 완공되면서 본격적인 조선업이 시작된다. 이를 통해 한국은 세계 조선시장에 진출하면서 조선 강국으로 도약하는 토대를 닦게 된다. 65년 전 걸출한 기업인의 남다른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이 지금의 한국 조선산업이 있게 한 원동력이 된 것이다. 이는 이번 한미 관세 협상 타결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기업가정신, 기업인의 역량과 함께 정부와 행정 관료의 통상, 경제 정책 전문성 축적과 노하우는 관세 협상에 필수적 요소다. 행정부의 내생적(endogenous) 질서, 즉 행정부 내부에서 형성되고 진화하는 정책 역량의 작동, 그리고 지적 자산과 경험(institutional memory)이 발휘됨으로써 협상의 일관성과 전략성을 높이는 것이 긴요하다. 이러한 행정부의 역량은 한층 더 강화되어야 하겠다. 정치적 환경 변화에 흔들리지 않으며 전문성과 경험 기반의 정책 정합성을 유지해야 한다. 특히 트럼프 2기 행정부와의 통상 협상에서는 단기 정치 논리가 아닌 장기 국익 관점에서의 전략적 접근이 긴요하다.

 

그렇다면 정치의 역할은 무엇인가. 정치의 기본 역할은 기업가와 행정부의 역량이 제대로 발휘되고 강화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방향을 잡아나가는 데 있다. 중요한 국가적 전략 이슈일수록 정치의 역할은 근원적이어야 한다. 한국 정치의 특징인 극한적 당파주의(vicious partisanship)에서 벗어나 국익에 중심을 둔 통상, 경제 전략을 모색하며 기업과 행정부가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 아울러 정책에 대한 국민의 이해와 공감을 이끄는 정치적 설득력이 중요하다. 정치인의 본분은 세계관을 해석하고 정책의 의미와 시사점을 국민에게 설명하는 교육가(educators)이자 사회적 합의를 형성하는 데 기여하는 중재자(moderators)이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움직이는 표적 속 악당의 서사(narratives about villains) 찾기에 비유될 수 있다. 트럼프의 스토리텔링에는 방향성이 혼재된 가운데 항상 악당이 있다. 공동의 적(common enemy)을 찾는 것이다. 예일대 제이슨 스탠리는 공동의 적을 설정하고 이에 맞서 사람들을 한 데 묶으며 단합시키려는 성향으로 트럼프의 심리를 설명한다.

 

이번에 미국은 주요 동맹국인 캐나다에 대해 관세율을 35%로 인상하며 펜타닐과 불법 약물의 지속적인 미국 유입을 억제하는 데 캐나다가 협조하지 않고 있다고 비난했다. 실제로는 우려 수준의 유입이 없는데도 캐나다를 공동의 적으로 모는 심리다. 또 트럼프는 캐나다가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려는 움직임이 관세 협상 타결을 매우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도 했다.

 

인도에 대해서는 25%의 관세를 부과했다. 트럼프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 정부가 러시아산 석유와 무기를 구매한 것을 비난했다. 또한 브릭스(BRICS) 회원국인 인도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 브릭스의 반미 정책에 동조하는 모든 국가에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했다. 브릭스 회원국 남아프리카공화국에 30%의 관세를 부과했다. 지난달 브릭스 정상회의 개최국 브라질에 미국이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50%의 고관세를 부과했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악당의 서사를 찾는 과정에서 고도로 정치적인 목적을 반영하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들이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을 순수한 경제정책이 아닌 정치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할 필요성을 말해주고 있다. 이번 관세 전쟁에서 '승자(winners)'와 '패자(losers)'라는 용어의 의미는 아직 명확히 판단하기 이르다.

 

트럼프 취임 이후 6개월이 지나는 동안 미국의 평균 관세율은 3% 내외에서 20% 내외로 상승했다. 이 결과는 미국 소비자들이 수입(imports)에서 얻는 편익이 줄어들고 있음을 뜻한다. 과연 누가 '승자'이고 누가 '패자'인 것인가.

 

이번 관세 협상에서 EU, 일본, 한국은 일종의 '양허(concessions)'를 한 것이라는 해외 일각의 평가도 있다. 그렇지만 '양허'는 트럼프를 달래기 위해 지불한 대가가 아니라 트럼프를 달래면서 얻을 혜택으로 여겨야 하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양허'는 이를 행한 국가의 이익에도 부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관세 협상의 복합 방정식과 그 정치경제학을 계속 예의 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 조홍균 논설위원

 

 

● 조홍균은

 

법·제도경제학자이자 35년 경력 중앙은행가. 경제, 금융, 기업 관련 정책과 제도를 주로 천착했다. 통화금융정책, 금융체제, 금융감독, 금융산업, 기업정책, 법경제 실무와 이론에서 전문성을 쌓았다. 중앙은행과 정부, 국제기구, 학계, 언론계 등에 걸쳐 폭넓게 이력을 쌓았다.

 

△ 미 워싱턴대 법학박사(J.D./J.S.D., 법경제학) △ 1989년 한국은행 입행 △ 1990년 조사제1부 조사역 △ 1999~2012년 정책기획국 과장 차장 팀장 △ 2016년 금융감독원 거시감독국 파견국장 △ 2017년 한국금융소비자학회 부회장 △ 2018년 한국금융연수원 교수 △ 2022년 경제연구원 부원장 △ 저서: 우리 시대의 금융경제 읽기(박영사, 2025년) △ 현재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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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균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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