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그룹, 후계자 양성에 통상 20년의 수련 과정
문제는 '리더십'…위기 때 실력 차이 드러나
태영그룹의 윤세영 창업 회장이 망백(望百:91세의 별칭)의 나이에 경영 일선으로 돌아온다. 태영그룹은 윤 창업 회장이 내년 3월 주총과 이사회를 거쳐 그룹 지주회사인 TY홀딩스의 대표이사 회장으로 복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1933년생인 윤 창업 회장이 아들 윤석민 회장에게 회장직을 물려준 게 2019년 3월이었다. 꼭 5년 만의 복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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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세영 태영그룹 창업 회장 [태영그룹 제공] |
태영그룹은 윤 창업 회장의 나이를 의식한 듯 지금도 골프 18홀을 모두 돌 만큼 건강에 문제가 없다고 전하고 있다. 얼마 전 버크셔 해서웨이의 찰리 멍거 부회장이 99세의 나이로 별세하기까지 현업을 떠나지 않은 사례도 있지만, 구순을 넘긴 나이에 경영 복귀는 세계적으로도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게 사실이다. 더구나 태영그룹이 위기를 겪는 상황이어서 재계의 관심이 클 수밖에 없다.
자금난 해결 위해 백방으로 뛰지만, 부동산 경기가 살아야
태영그룹의 주력회사인 태영건설은 지난 1년 동안 부동산 시장 침체와 고금리, 이에 따른 PF 시장 경색으로 자금난을 겪어 왔다. 신용평가 기관과 증권사로부터 자금 사정을 예의 주시해야 할 건설사로 꼽힐 정도로 상황이 좋지 못했다. 회사채 발행과 펀드 조성을 통해 4000억 원을 확보했지만, 고금리로 빌린 돈이어서 상황을 역전시키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결국 최근에는 확실한 캐시카우 계열사인 물류 회사 태영인더스트리를 2400억 원에 매각하는 계약을 글로벌 사모 펀드와 진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영건설의 사업장이 지방에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자금난을 벗어나는 게 쉽지 않으리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우세하다. 미국의 금리 인하가 앞당겨져 고금리 추세가 완화된다면 급한 불을 끌 수는 있겠지만 부동산의 온기가 지방에까지 확산하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SBS의 지분 문제도 풀어야 할 숙제
또 그룹의 자산규모가 커져 재벌의 반열에 들어서면서 또 다른 주력 계열사인 SBS의 지분 문제도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있다. TY홀딩스는 현재 SBS 지분 36.9%를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방송법에서는 자산총액이 10조 원이 넘는 기업은 지상파방송사의 지분을 10% 초과해 보유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같은 규제를 완화하려는 움직임이 있긴 하지만 이것 역시 경영의 영역이 아닌 게 분명하다.
재벌 후계자, 20년 수련 과정 거쳐 40대에 부회장·회장 등극
우리나라 재벌들의 가장 큰 고민 중의 하나가 후계자 문제다. 자녀 중에 누가 가업을 지키고 키워나갈지는 인생 막바지에 가장 큰 과제에 해당한다. 애써 자녀 가운데 1명을 낙점하더라도 롯데그룹이나 한국타이어그룹(현 한국앤컴퍼니그룹)에서 보듯이 예상치 못한 분란으로 인생 말년을 혼란 속에 보내기도 한다. 그래서 일찍부터 후계자 양성에 나서고 있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국내 자산순위 100대 그룹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을 보면 오너 일가는 28.9세에 입사해서 5.4년 뒤인 34.3세에 임원으로 오르고 이어 7.8년 후인 42.1세에 사장이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13년이 넘는 수업 기간을 거쳐 한 개 계열사를 맡기는 과정을 거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룹 전체를 지휘하는 부회장에 오르기까지는 다시 5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해서 재벌 그룹의 회장, 부회장이라는 직함으로 빠르면 40대 중반, 늦으면 40대 후반 나이의 총수들이 등장한 것이다. 40대의 젊은 총수라고 하지만 20년 가까운 수련 기간을 거친 인물들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리더십은 타고나는 인성, 위기 때 필요한 덕목
재벌의 후계자 수업 과정을 지켜본 한 재계인사는 마치 왕조시대 왕세자 교육을 연상할 만큼 치밀하다고 한다. 교육 과정은 물론이고 국내외 네트워크 형성과정, 그리고 이들을 보좌하는 전문가 집단에 이르기까지 빈틈없이 짜여진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비교적 젊은 나이에도 그룹을 순항시키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세심한 후계자 양성에도 불구하고, 재벌 총수로서 꼭 필요한 리더십은 타고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리더십의 부족은 결정적으로 그룹을 위기로 몰게 된다. 더구나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외부적 충격이 가해지면 총수의 리더십 부재는 그룹의 존망을 결정하게 된다.
이름을 대자면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수많은 재벌을 두고 '문어발식 확장', '무모한 투자' 등의 이유를 달지만, 그 근본을 따지고 들어가면 사람을 제대로 쓰지 못한 리더십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다.
구순이 넘은 나이에 경영에 복귀한 태영그룹 윤 창업 회장의 과감한 복귀에 기대를 걸며 후계자 양성에서도 좋은 결실이 맺어지길 기대해 본다. 흔들리는 기업을 다시 반석에 올려놓은들 이을 사람이 없다면 그것은 모래성일 것이기 때문이다.
KPI뉴스 / 김기성 대기자 bigpen@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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