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력근로제 합의도 지지부진…"효율적 노동관리 시스템 필요"

주 52시간 근무제가 '봐주기' 없는 시행에 들어갔다. 9개월의 계도기간은 끝났다. 4월 1일부터 300명 이상인 기업 직장인은 주 52시간을 넘어서 근무할 수 없다. 어기면 사업주가 처벌 받는다. 주 5일제 근무가 도입된 지 14년 만에 또 한 번 노동 문화에 일대 변화가 본격화한 것이다.
현장에선 큰 혼란이 일 조짐이다. 주요 대기업은 일찌감치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하고 있어 괜찮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중소·중견기업이나 제조업체들은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대기업이라도 장시간 집중근로가 필요한 직군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건설·석유·화학·철강은 대정비와 장기 보수작업, IT업계는 프로젝트 단위 집중근무가 불가능하다고 하소연한다. 임의로 근무시간을 정해 기록하거나 재택근무 지시를 내리는 '꼼수'도 만연하다.
"여가시간 생겨" vs "사실상 불가능"…반응 엇갈려
주 52시간 근무제는 '저녁이 있는 삶'을 표방한다. 이른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보장하면 소비가 늘고, 업무부담을 분산해 일자리가 늘 것이라는 정부의 기대가 깔려 있다. '일'과 '일상'을 동일시했던 노동계 문화를 송두리째 바꾸고 효율성을 높이자는 기대감도 작용했다.
그럼에도 기업마다 '온도차'가 감지된다. 제도 시행 후 진정한 '워라밸'이 찾아왔다는 반응과 '남의 일'이라는 상반된 모습이 공존한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ㄱ씨는 "예전에는 일이 있으면 빨리 출근하고 늦게 퇴근했다. 심지어 퇴근하고도 집에 가서 일을 했는데 이런 관행이 어느 정도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월급은 조금 줄어들었지만 퇴근 후에는 온전히 내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훨씬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반면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ㄴ씨는 "출퇴근 기록을 수기로 적기 때문에 딱히 중요한 자료가 되지는 않는다"면서 "실제 근무시간으로 따지면 주 52시간을 절대 지킬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시간외근로를 전산에 입력하면 수당이 나오지만 응급상황이나 중환자 발생이 아닌 이상 거의 못 쓰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건설업계도 비슷한 상황이다. 건설업계 종사자 ㄷ씨는 "하루 10시간 이상 일하는 게 일상이고 3월엔 일이 몰려서 주말에도 12시간씩 근무했다"면서 "건설업은 대부분 현장에서 작업하고 여러 업체가 협업하기 때문에, 복지가 좋다는 대기업 말고 주 52시간 시행은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ㄷ씨가 근무하는 기업은 현장 작업자를 모두 합치면 300명이 넘는다.

내년부터는 300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
중소기업들에도 근로시간 단축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내년부터는 300인 미만(50인 이상) 사업장에, 2021년 7월부터는 50인 미만 사업장에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이 적용된다. 중소벤처기업부 통계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국내기업 중 99.2%가 중소기업이다.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변화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지방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ㄹ씨는 "주 52시간에 대한 개념은 알고 있지만 이를 시행하기에는 현실적 어려움이 많다"면서 "납품기한을 맞추거나 협력업체가 문을 열면 우리도 어쩔 수 없이 공휴일에도 출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도시부터 근무시간을 줄이려는 분위기가 확산되니까, 우리도 격주로 직원들에게 휴일을 주긴 하지만 일괄시행은 불가능한 처지"라고 말했다.
경영·노동계, '단위기간'놓고 팽팽
업계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탄력근로제는 특정일의 노동시간을 연장하는 대신 다른 날의 노동시간을 단축해 일정 기간 평균 노동시간을 법정 노동시간에 맞추는 제도다. 주 52시간 근무에 따라 생겨날 부작용을 위한 일종의 완충장치다.
예를 들어 현행법과 같이 일정 기간이 3개월(12주)이라면 사용자가 6주 동안은 매주 64시간까지 노동을 시키고 나머지 6주 동안은 매주 40시간만 노동을 시킬 수 있다. 3개월 동안 합산한 평균 노동시간이 주 52시간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이 '단위(일정)기간'을 놓고 경영계와 노동계는 각기 다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업계는 단위기간을 1년으로 확대할 것을 주장한다. 통상 1년 단위로 수립하는 사업계획, 생산성 향상 등을 위한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노동계는 노동시간과 조건 등 근로 여건을 악화시키기 때문에 단위기간 확대는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단위기간 3개월만 해도 최대 6개월 연속 주 64시간 노동이 가능하다. 한 해를 4분기 나눠보면, 1분기와 4분기는 '주 40시간'을 근무하고, 2분기와 3분기는 '주 64시간'으로 배치하면 된다. '연속 사용 불가'라는 제한규정이 없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2분기와 3분기의 6개월 동안 매주 64시간씩 일하게 된다. 단위 기간이 늘어날수록 '주 64시간' 일하는 개월 수도 늘어날 수 있기 때문에, 주당 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인 의미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심지어 한국 노동계의 양대 축인 한국노총과 민주노총도 입장이 다르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기존 3개월이었던 단위기간을 6개월로 합의하는 자리에 민노총은 불참했다. 한국노총은 "6개월 내지 1년으로 단위기간이 확대될 것이 기정사실인데 반대만 할 순 없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민노총은 한노총의 참여를 '야합'이라 비판했다. 공은 이미 국회로 넘어간 상태지만, 결과가 어떻든 경영계와 노동계는 진통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노사정, 시각 전환·제도 안착 노력해야"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3개월은 실상 최대 6개월까지 노동이 가능한데 업계 쪽이 너무 엄살 부리듯 한다는 종사자들 얘기도 나온다"면서 "법 개정이 논의 중인 만큼 기간이 더 확대되면 업계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제도를 정착시키려면 사측의 위법사항, 관리감독 등에 대한 계도를 잘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홍근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멕시코 다음으로 노동시간이 긴데, 효율적으로 일하지 않는 게 이유 중 하나"라면서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노동 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노동에 대한 전반적인 시각의 전환 뿐 아니라 제도가 안착할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 노동계가 같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KPI뉴스 / 김이현 기자 kyh@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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