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설, 알바의 천국에서 찾아낸 배우의 길

김현민 / 2019-09-30 15:50:27
'악마가 너의 이름을 부를 때' 종영 인터뷰, 이설이 얘기한 배우 인생의 서막

이설의 외모는 화려하지 않지만 평범하지도 않다. 남다르다. 그의 인생의 발자취 역시 특별하다.

▲ tvN '악마가 너의 이름을 부를 때'에서 김이경을 연기한 배우 이설 [링크매니지먼트 제공]


이설은 경상도 여자다. 집안 사정상 전학을 많이 다녔던 유년 시절 가장 오래 살았던 곳은 경북 청도군이다. 그는 청도를 "소싸움과 감이 유명한 시골"이라고 소개했다. 청도에는 친할머니가 있다. 자신을 키워준 각별한 존재다. 이설은 시상식에서 수상소감을 말하면서 "할머니 사랑해요"라고 콕 집어 애정을 표하기도 했다. 할머니는 서울 출신이라 동네에서 '서울댁'으로 불려왔다. 이제는 할머니도 경상도 사투리가 더 자연스러워졌지만 이설은 어린 시절 할머니 곁에서 자란 덕인지 상경 후 서울말을 하는 게 낯설지 않았다.

배우가 되기 전에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이하 알바)를 했다기에 어떤 일을 했냐고 물었더니 그의 입에서 알바 이력이 끝없이 쏟아져 나왔다. 이제 20대 중반을 지나는 젊은이가 별의별 일을 다 해봤다.

카페, 콜센터, 동대문 야시장, 온라인 쇼핑몰 등 어디서 일했는지 일일이 나열하기도 벅차다. 부자재 시장에서 구슬을 사다가 꿰기도 했다. 찜질방에서는 계란, 식혜 등을 팔았다. 복숭아 농장에서 박스를 분류하고 상하차하는 작업인 '까대기'를 할 때는 땅에 떨어져 팔 수 없는 복숭아를 집에 가져가 먹는 쏠쏠한 재미가 있었단다. 의사협회 포럼에서 진행요원 알바를 할 때는 앉아서 책자 나눠주기, 길 안내하기 등의 일을 하고 남는 시간에 책도 볼 수 있어 좋았단다.

면사무소에서 사무를 보기도 했는데 동네 어른들이 잔치를 하면 나눠주는 떡, 고기를 자주 먹었다. 고깃집, 빵집에서 알바할 때는 이설을 찾는 단골손님도 꽤 있었다. 얘기하는 걸 좋아한다는 그는 고기를 구워주면서, 빵을 포장하면서 손님에게 자연스럽게 날씨 얘기를 건네는 너스레도 있다.

연기 학원비를 충당하기 위해 방까지 뺀 당시 필요했던 알바는 숙식이 제공되는 게스트하우스 알바였다. 영어 잘하는 사람을 뽑는다기에 일단 잘한다고 하고 일을 시작했다. 부족한 영어 실력은 당연히 금방 들통났다. 하지만 손님으로 온 외국인들과 서너 시간씩 수다를 떨 정도로 잘 지냈다. 손님들이 재미있었다면서 선물을 주고 가곤 했다. 이설은 "저는 한국말로 얘기했는데 영어도 얼추 알아들으니까 대화가 되더라. 사장님이 '넌 어떻게 영어 한마디 못하면서 손님들이랑 그렇게 노냐'고 하더라. 역시 사람은 진심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 tvN '악마가 너의 이름을 부를 때'의 배우들은 웃음이 끊이지 않는 촬영 분위기에서 좋은 호흡을 보여줬다. [tvN 제공]

배우가 된 계기도 알바에서 비롯됐다. 큰 도시에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20대 초반 무작정 상경했다. 알바를 많이 했지만 여유로운 생활이 불가능했다. 시급이 높은 알바를 찾다가 피팅모델 알바를 하게 됐고 우연히 가수 백예린의 '바이 바이 마이 블루(Bye bye my blue)' 뮤직비디오 촬영에 참여한 것이 그의 마음을 건드렸다.

이설은 "내 모습이 영상에 담기는 게 굉장히 신기했다. 계속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생기더라. 그래서 바로 연기 입시 학원에 등록했고 시험을 봐서 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다가 또 운 좋게 지금의 회사를 만났고 영화 '허스토리'에 캐스팅되면서 배우 생활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설이라는 이름은 예명이다. 본명은 강민정이다. 그는 "강민정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배우가 다섯 분이나 있더라. 그래서 예명을 쓰게 됐다. 회사에서 지어준 이름이다. 의미는 '다른 이야기를 가진 사람'이다. 좋다. 설이라고 불리는 게 좋다. 어감도 좋고 외자여서 친근감도 있다"며 이름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이설은 배우로서 자신의 경쟁력을 묻는 말에 "평범함에서 오는 자연스러움인 것 같다"며 "제가 눈에 띄게 화려하거나 예쁘거나 키가 크지 않기 때문에 거기서 익숙함, 편안함, 자연스러움이 나온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신체 부위 중 마음에 드는 부분을 물었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 나왔다. 왼쪽 눈꺼풀에 있는 실핏줄을 좋아한단다. 실핏줄로 시작한 얘기는 '해리 포터'로 끝났다. 그는 자신의 눈꺼풀 실핏줄을 가리키면서 "마치 해리 포터 이마에 난 번개 상처 같달까. 벼락 모양 같아서 좋다. 저 '해리 포터' 광팬이다. 어릴 때 동화책 외에 처음으로 접한 장편소설이 '해리 포터'다. '해리 포터'를 읽기 위해 잠도 자지 않고 이불 밑에서 랜턴 키고 보고 화장실 가는 척하면서 밤새 읽곤 했다. 저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준 제 동심의 원천이다. '해리 포터' 음악 들으면 운다. 매우 좋아한다"고 얘기했다.

 

 
▲ tvN '악마가 너의 이름을 부를 때'는 최종회에서 인생의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에 관한 교훈을 남겼다. [tvN '악마가 너의 이름을 부를 때' 캡처]


최근 종영한 tvN '악마가 너의 이름을 부를 때'는 노년의 무명 뮤지션 서동천(정경호 분)이 악마 류(박성웅 분)에게 영혼을 팔아 스타 작곡가 하립(정경호 분)으로 제2의 인생을 살다 계약 만료를 앞두고 일생일대 게임을 펼치는 내용의 드라마다. 극 중 서동천은 하립으로 다시 태어나 누린 성공이 이웃이었던 김이경(이설 분)의 재능과 인생을 빼앗아 얻은 것임을 알고 이 소녀와 자신, 주변의 삶을 회복시키며 삶의 정수를 깨닫는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고달픈 고등학생이었던 김이경은 우연히 서동천을 만나 인생의 전환점을 맞고 음악에 빠지게 된다.

이설은 자신에게 서동천 같이 전환점이 된 존재가 있냐는 질문에 한 친구를 꼽았다. 그는 "우사단이라는 동네에 살 때 만난 이웃 언니가 있다. 참 밝은 사람이다. 꽃집을 운영하고 있다. 늘 자연 속에 있는 사람이라 그런지 굉장히 자연스럽다. 같은 경상도 여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제가 식물을 좋아하다 보니 공통된 관심사도 있다. 정말 밝은 사람이다. 제가 이 언니를 만나고 나서 많이 밝아졌다. 저한테 서동천 같은 존재는 서울에서 처음 만났던 이 친구다"고 전했다.

이설은 이번 드라마를 통해 만난 동료 배우들을 일일이 언급하면서 함께한 데 대한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특히 본받고 싶은 배우로 극 중 어머니 정선심 역을 맡았던 소희정을 꼽았다. 그는 "소희정 선배님은 굉장히 몰입도가 높았다. 소희정 선배님과 연기할 때는 내가 굳이 연기를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다. 정말 깊어 보였다. 이렇게 늘 진심을 다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소희정 선배님이 '너랑 하게 돼서 정말 기쁘다'는 말을 해준 적이 있다. 감사했다"고 밝혔다.

이설의 소망은 오래도록 잘하는 배우가 되는 것이다. 그는 "하고 싶은 건 많지만 요즘 들어서 밝은 역할을 해보고 싶다. 최근에 '멜로가 체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를 재미있게 봤다. '청춘시대'를 다시 보고 있는데 재미있다. 여성 버디 무비라든지 밝고 쾌활한 분위기의 작품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KPI뉴스 / 김현민 기자 khm@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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