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얼굴' 소설가 송기원 별세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2024-08-01 09:42:18
소설과 시로 신춘문예 동시 당선하며 화려하게 등단
1970~80년대 암울한 시대 헤쳐오며 여러번 투옥
예리한 현실인식 탐미적 문체로 삶의 밑바닥 그려내

소설가 송기원이 31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7세. 고인은 1974년 동아일보와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회복기의 노래'와 소설 '경외성서'로 동시 당선하면서 본격 글쓰기에 나섰다. 전남 보성 출신으로 중앙대 문예창작과에서 수학한 그는 이후 탐미적인 문체와 예리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삶의 구체적인 밑바닥을 두루 형상화했다.

 

▲시대의 어둠과 삶의 밑바닥을 탐미적 문체로 그려낸 소설가 송기원.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고인이 일찍이 단편 '아름다운 얼굴'을 빌려 자전적으로 묘사한 성장환경은 시골 장터 장돌뱅이의 아들로 태어나 삶의 밑바닥을 흘러 다녔던 쓸쓸한 세월이었다. 생부가 따로 있지만 의부 밑에서 자랐고, 누이와 부모가 없는 집에서 겨울 내내 외로움에 떨어야 했다. 생부는 술에 취한 채 철길을 베고 누웠다가 세상을 떴고, 어머니는 그가 '김대중내란음모사건'에 연루돼 감옥에 있을 때 목을 맸다. 아버지는 달라도 한 배에서 태어난 서러운 누이는 간암으로 세상을 떴고, 생전에 한번만이라도 그를 보기를 소원하던 의부 또한 이승을 떠났다.


그는 죽은 딸을 명상을 통해 만나는 마지막 장편 '숨'(2021)에서 딸에게 고백하는 형식으로 자신의 문학을 돌아보았다. '문학은 내가 여전히 더러운 피를 간직한 채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무기와도 같았다. 나는 더러운 피라는 직설적인 어법 대신에 탐미주의라거나 퇴폐주의, 반도덕주의, 그리고 위악주의라는 간접적인 어법으로 내가 짊어진 짐의 무게를 이데올로기화했다.' 딸의 입을 빌려 그는 다시 신랄하게 자신을 들여다 본다. 

 

'사생아로 태어났다는 점을 감안해도 아빠의 자기연민은 너무 심했어. 물론 아빠는 자기에 대한 혐오나 증오, 자학 같은 것들도 크다고 여기겠지만, 그런 것들은 결코 아빠의 자기연민을 넘어설 수는 없어. …자기연민쟁이가 되기 전인 스무 살 무렵의 아빠에게 문학은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무기였지. 그 나이에 아빠는 벌써 더러운 피라는 알몸뚱이를 세상에 직접 드러내는 대신에, 문학으로 위장하는 법을 배웠던 거야.'
 

삶의 마지막까지 자신을 치열하게 들여다보며 온몸으로 소설을 살다 간 고인은 본인의 자학과는 달리, 그만의 탐미적인 삶의 지문을 한국문학에 남긴 작가로 평가되고 있다. 1980년에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연루돼 투옥됐고, 1985년에는 '민중교육' 필화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실천문학' 대표를 역임했다.
 

1983년 제2회 신동엽창작기금을 받았으며, 1993년 '아름다운 얼굴'로 제24회 동인문학상, 2001년 제9회 오영수문학상을 받았다. 소설집 '월행' '다시 월문리에서' '인도로 간 예수', 장편 '너에게 가마 나에게 오라' '여자에 관한 명상' '청산' '안으로의 여행' '또 하나의 나' '숨', 시집 '그대 언살이 터져 시가 빛날 때' '마음속 붉은 꽃잎' '저녁' '단 한번 보지 못한 내 꽃들' 등을 남겼다. 빈소는 대전 유성선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3일 오전 8시.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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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 문화부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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