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정치냐, 정상통치냐…탈레반의 아프간 기로에 서다

이원영

lwy@kpinews.kr | 2021-08-26 13:13:08

유화책 공개하면서도 보복 행태 속속
"서방 지원 없이는 지속 못할 것" 분석도

지난 20일 온라인에 충격적인 영상이 하나 공개됐다.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이슬람 근본주의자 무장세력 탈레반이 '공적'으로 지목했던 지방 경찰청장을 사살하는 장면이다.

영상에는 수갑이 채워지고 눈을 가린 채 무릎을 꿇고 있는 하지 물라 아차크자이 지방 경찰청장이 기관총 세례를 받고 즉결 처형되는 현장이다. 

탈레반이 지난 15일 아프간을 점령한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모든 공직자와 미군 부역자 등에 대한 보복이 없을 것이라며 사면을 공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복 처형'을 공개적으로 단행한 것이다. 과거 탈레반의 공포정치가 재현될 것이란 우려를 불러일으킨 데자뷔다.

사상누각에 불과했던 아프간 정부군이 궤멸되면서 총 한방 제대로 쏘지 않고 아프간을 점령한 탈레반 정권의 향배는 국제사회의 초미의 관심사다.

▲ 25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한 검문소에서 경비하던 탈레반 병사들이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탈레반은 9·11 테러 이후 미국이 주도한 침공으로 축출된 지 근 20년 만에 아프간을 점령해 아프간 사람들은 이들의 잔혹한 통치와 보복을 두려워하고 있다. [AP 뉴시스]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한 직후 아프간을 탈출하려는 수만 명의 민간인들이 공항으로 몰려들어 아비규환을 이루고 있는 장면은 탈레반이 공언한 유화정치와는 달리 폭압정치가 되살아날 것을 걱정하는 민심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1996년 집권해 5년간 통치하다 미국의 침공으로 무너진 탈레반 정권은 당시 짧은 집권 기간 동안 여성들에 대한 극도의 탄압과 오락산업 억압 등으로 악명을 떨쳤다. 그러나 소련 철군 후 이어진 군벌들의 내란에 지친 아프간 국민들은 철저한 이슬람 근본주의에 기초한 율법(샤리아법)으로 통치하는 탈레반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전쟁보다는 강압통치가 낫다는 민심에 탈레반이 편승했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의 전쟁 20년 만에 승리한 지금 탈레반이 과거와 같은 공포정치를 수단으로 국가건설(nation-building)을 순조롭게 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미군 점령 기간 동안 아프간인들은 급속하게 문명화·서구화되었고 사회 인프라도 크게 변했다. 탈레반 연구자인 펠릭스 쿠언은 "탈레반이 2001년 이전에 원했던 것에 기반해 지금 원하는 것을 추론하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라고 했다. 탈레반이 미국과의 전쟁 이전과 이후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짚은 것이다.

아프간인들이 온통 탈레반의 집권에 공포를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아프간 인구는 3900만 명인데 미군 점령기 20년 동안 정부 조직에 몸담았거나 직간접으로 미군과 관련된 일을 했던 30만 명 정도가 혹시나 있을 지도 모를 탈레반 보복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지 대다수 아프간인의 정서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아프간은 지구촌 최빈국 중 하나다. 탈레반의 가장 급선무는 경제를 재건하고 국가를 통합하는 일인데 국제사회의 비난과 외면을 부를 폭압공포정치를 휘두르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알자지라 방송은 최근 탈레반 정권이 △국민의 인정 △10만 명 미만의 병력 △정부운영 시스템 △과거 통치 방식의 반복 여부 △정부운영자금 △권력통제 6가지 난제를 안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만큼 숙제가 첩첩산중이라는 것이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인데 90억 달러에 달하는 아프간 정부 외화는 대부분 미국의 국채 등 외환 계좌에 담긴 채 동결된 상태다. 매년 아프간 예산의 80%를 차지하던 미국 등 서방국가의 지원도 끊겼다. 서방의 돈줄죄기가 지속되면서 경제난이 가중된다면 민심의 동요와 궐기가 불가피하고 탈레반 정권의 위기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탈레반 정권이 집권 직후부터 여성 인권보장, 부역자 사면, 보복 금지, 국제사회 협력 등을 강조한 것은 탈레반 정부가 국제적인 인정을 받아 정상국가로 나아가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그러나 탈레반의 공포정치에 대한 불안감은 여전하다.

아프간 국영TV 유명 앵커인 카디자 아민은 탈레반 집권 직후 그를 포함한 여직원들이 무기한 정직처분을 받았다며 "탈레반은 탈레반일 뿐이다. 그들은 변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탈레반 정부의 성공은 그동안 아프간 사회의 근간을 이뤘던 친정부 인사들과 미군협력자, 자본가들의 어떻게 포용하고 불안감을 잠재우며 통합적인 국가건설을 이루어 가느냐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새 정부를 이끌 '12인 위원회'에 하미드 카르자이(64) 전 대통령이 포함됐다는 소식은 이런 측면에서 고무적이다. 카르자이는 친탈레반-반탈레반-미군점령기 대통령-퇴임 후 반미노선-탈레반 집권 후 평화권력이양위원회에 참여하면서 탈레반에 합류했다. 미군 점령기 두 차례 대통령(2004-2014)을 지낸 실질적 미국 괴뢰정부의 수반이 탈레반에 합류한 것은 미군 협력세력과의 화해의 메시지도 담겨 있어 주목된다.

KPI뉴스 / 이원영 기자 lw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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