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여성 가혹하게 할퀴는 아프간의 비극

김명일

terry@kpinews.kr | 2021-08-20 14:23:05

영국 도착 4일 만에…호텔서 5세 난민 아이 추락사
카불선 철조망 너머 영국 경비병에 아이 던지기도

아프가니스탄 전역이 탈레반 수중에 떨어지며, 고국을 떠난 난민이 200만 명에 이르고 있다. 아프간 인구 3800만 명의 5.3%에 달하는 수치다. 전쟁의 상흔은 언제나 그랬듯 여성과 어린이를 가장 먼저, 가장 가혹하게 할퀴고 있다.

▲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바론 호텔에서 20일 군중들이 철조망 너머 영국군 경비병에게 아기를 옮기고 있다. [트위터 캡처]


19일 영국에서는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해 영국에 도착한 5세 난민 어린이가 추락사했다. BBC 등 현지 언론은 셰필드의 한 호텔에서 오후 5시쯤 난민 어린이가 투숙 중이던 9층에서 떨어져 숨졌다고 보도했다. 이 아동은 영국에 도착한 4일 전부터 호텔에서 가족들과 지내고 있었다. 어린이의 아버지는 카불 주재 영국 대사관 직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창문이 넓게 열리는 이 호텔은 안전장치가 미비하다는 지적이 이어져왔다. 영국 내무부 대변인은 유감을 표명하며 "수사 진행과 함께 가족들을 지원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아이만이라도…" 철조망 너머로 아기 던져

카불에서는 절박한 어머니들이 아이를 철조망 너머로 던지는 일도 발생했다. 탈레반이 검문소를 설치하고 아프간 국적자들의 공항 진입을 막은 탓이다. 공항에 몰려든 여성들은 "아이들을 살려달라"며 철조망 너머 미군에게 넘기는 일도 발생했다.

영 인디펜던트지는 카불의 바론 호텔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고 전했다. 이 곳은 영국인과 관계자들이 출국을 위해 대기 중이어서 영국군이 경비를 서고 있다. 아프간 여성들은 "아기라도 받아달라"는 말과 함께 철조망 너머 영국군에 아기를 던졌다. 일부는 영국군 경비병이 무사히 받았지만, 철조망에 매달리는 등 위험한 상황도 연출됐다고 매체는 전했다.

▲ 16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생후 7개월 된 남자 아기가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긴 채 홀로 남겨진 모습으로 발견됐다. [아스바카뉴스 트위터]


아프간 여성들의 이런 행동은 퇴로가 완벽히 차단된 카불에서 아이라도 살려보겠다는 궁여지책이다. 이미 며칠 사이 어린이들의 희생이 곳곳에서 목격된 터다.

17일 아프간 현지 매체 아스바카뉴스는 공식 트위터 계정에 한 아기의 사진을 올렸다.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홀로 남겨진 7개월 남아의 모습이었다. 아기는 파란색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겨 홀로 울고 있었다. 탈출 인파가 몰려 혼잡한 상황에서 부모를 잃은 것으로 보인다고 매체는 밝혔다. 아기는 아직 부모를 찾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 공군이 공개한 사진도 세계를 울렸다. 한 어린이가 카불을 떠나 카타르로 향하는 미 공군 C-17 수송기 바닥에 웅크려 잠든 모습이었다. 목숨을 건 탈출에 탈진한 어린이에게는 한 미 공군 병사의 군복이 덮혀 있었다.

▲ 17일 카불 국제공항을 떠나 카타르로 향한 미군 C-17 수송기에 탑승한 아프간 어린이가 미 공군 병사의 군복을 덮은 채 잠들어 있다. [미 공군]


여성 인권 존중 발표 하루 만에 거리서 여성 총살

여성들에 대한 위협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카불 대통령궁까지 점령한 탈레반은 "샤리아법에 따라 헤자브를 쓴 채 학업과 직업에 종사하고 외출도 할 수 있다"면서 "여성 인권을 존중하겠다"고 밝혔다. 수하일 샤힌 탈레반 정치국 대변인은 영국 스카이뉴스에 "여성들이 더 이상 전신을 뒤덮고 눈까지 가리는 부르카를 입을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여성 인권 존중을 발표한 지 하루 만인 17일 타크하르주 주도 탈로칸에서는 부르카를 입지 않은 여성이 총에 맞아 숨졌다. 대낮에 거리에서 자행된 대담한 범행은 탈레반의 소행으로 여겨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탈레반이 한 여성 정치인을 카불의 자택에 연금했다고 보도했다.

이튿날 카불 거리의 한 미용실에는 광고 목적으로 걸린 여성의 사진이 검은색 스프레이로 뒤덮이는 등 '여성 인권'을 위협하는 일이 연달아 일어났다.

▲ 20일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 주재 미국 대사관 밖에서 아프가니스탄 이주자들이 키르기스스탄 체류 혹은 미국행을 요구하며 집회를 열고 있다. [AP뉴시스]


프랑스24는 탈레반이 한 점령지에서 대원들과 강제결혼시킬 목적으로 12~45세 미혼 여성 명단을 작성 중이라는 보고가 있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남편을 잃은 여성들도 명단 대상이라고 덧붙였다.

아프간 여자 축구대표팀 전 주장인 칼리다 포팔(34)은 "선수들이 탈레반 통치 속에 살아남으려면 SNS를 없애고, 신분증과 유니폼 및 축구 장비도 태워야 한다"고 AP통신에 말했다. 그간 당당한 여성 행동을 표방해온 포팔이지만, 탈레반 통치가 시작된 지금 '일단 살고 보자'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포팔은 2016년 아프간을 떠나 덴마크 코펜하겐에 거주하고 있다.

2014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말랄라 유사프자이(24·여)도 "여성과 어린이들을 보호해달라"고 17일 뉴욕타임스 기고를 통해 각국 정부에 호소했다. 유사프자이는 파키스탄 출신으로 '학교에 갈 권리' 등 여성 인권 운동에 매진해왔다. 그는 2012년 등교 중 탈레반 대원의 총격으로 쓰러졌다 기적적으로 회복했다.

KPI뉴스 / 김명일 기자 terr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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