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무용가 최승희 연구가 조정희 PD
조선인 운영 '한성권번' 친일파 운영 '대정권번'
기생들의 활쏘기 라이벌전에 세간의 관심 집중
'한성권번' 황서운·황금주·전월향 상위 독차지 도쿄 올림픽이 끝났지만 대한민국 여자양궁 선수들이 금메달을 휩쓴 감동의 여운이 가시지 않고 있던 차에 1923년 6월14일자 <매일신보>에서 <제1회 전조선 궁술대회> 기사를 읽었다. 무용가 최승희 선생의 공연활동을 조사하다 보면 1920-30년대 신문에서 흥미로운 소식을 전해듣는 특권을 누리곤 한다.
단오절을 맞아 열린 이 궁술대회는 6월16일부터 3일간 경복궁 신무문 바깥의 경무대에서 개최됐다. 경무대는 고종5년(1868년) 경복궁 중건이 마무리되면서 조성되었고 문과와 무과의 전시가 이뤄지던 곳이다.
광고문에는 궁술대회가 개인부문과 단체부문으로 나뉜다고 되어 있지만, 세간의 가장 큰 관심을 끌었던 것은 여성부문이었다. 여성 출전자들이 대부분 기생이었고, 특히 <한성권번>과 <대정권번>의 기생들이 대거 참여했기 때문이었다. ▲한성권번 출신의 기생 궁사들. [조정희 PD 제공] ▲대정권번 출신의 기생 궁사들. 당시 경성에는 4개의 기생 권번이 있었는데 그중 광교의 <한성권번>과 다동의 <대정권번>이 수도 많고 인기도 높았다. 조선인이 경영한 <한성권번>은 대한제국이 기생제도를 폐지한 후 갈 곳을 잃은 관기들이 조직한 기생 조합이 발전한 것으로 여기에 속한 기생들은 자부심도 높고 미모와 재주가 뛰어났다.
한편, '다이쇼(大正, 대정)'라는 이름이 보여주듯이 친일파 송병준과 일본인 나가노가 경영하던 <대정권번>은 평양 출신 기생들을 대거 영입해 수와 세를 확장했으나 경영과 유지에 자주 어려움을 겪었다.
기생업계의 두 라이벌은 활쏘기 대회에서도 맞붙었다. 신문 기사에 두 권번 기생들의 연습 장면 사진이 나란히 실린 것을 보면 <한성권번>과 <대정권번>의 활쏘기 대결이 세간의 지대한 관심을 끌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궁술대회 후 입상 소식을 전한 1923년 6월14일자 <매일신보> 결과는 <한성권번>의 압승이었다. <대정권번>에서는 입상자가 없고, <한성권번>의 황서운(黃瑞雲), 황금주(黃錦珠), 전월향(全月香)이 각각 1,2,3등을 휩쓸었다.
주최 측은 단체전 우승자에게는 우승기와 금패를, 개인전 우승자에게는 상장과 은패를 수여했다. 다만 <한성권번>이 단체전 우승으로 금패를 받았는지, 세 기생들이 각각 은패를 수상했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100년 전 조선 여성들의 활쏘기가 큰 관심을 모았고, 실제로 그들의 활쏘기 실력이 상당한 수준이었던 것을 보면서, 오늘날 대한민국 여성 궁사들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것이 수긍이 된다. 역사와 문화에는 우연이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 ▲ 조정희 PD, 최승희 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