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현 "UN해비타트, 文정부 국정과제와 일치…'윈윈' 가능"
장기현
jkh@kpinews.kr | 2020-10-28 14:47:57
"'안정된 주거'는 교육·문화·도시·청년·일자리를 포괄하는 개념"
"마포에 청년주택 건립 추진…2024년엔 세계도시포럼 유치"
'역사'는 편지 한 장으로 시작됐다. 2017년 말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책상 위 우편물 더미에서 삐죽 튀어나온 팸플릿을 집어 올렸다. 인수위원회도 없이 시작된 문재인 정권 첫 대변인으로, 정신없이 바쁜 일상을 보내던 때였다.
발신자는 유엔 해비타트(UN HABITAT). 박 대변인은 영문으로 된 팸플릿을 천천히 읽었다. '청년', '일자리', '도시'가 번쩍 눈에 들어왔다.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와 일치하는 낱말들이 아닌가.
케냐 나이로비의 유엔 해비타트 본부로 편지를 띄웠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와 유엔 해비타트의 실천목표가 일치한다. 서로 협력하면, '윈윈'할 수 있는 모델이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편지의 명의는 청와대 대변인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박수현'이었다. 직위를 드러내면 메시지의 취지가 훼손될 것 같았다. 채 한 달이 안 돼 긍정적인 답장이 왔다. 지난해 9월 출범한 '유엔 해비타트 한국위원회'는 이렇게 편지 한 장으로 탄생했다. 유엔 해비타트의 세계 최초이자 유일 국가위원회다.
산파 역할을 한 박수현 당시 대변인은 이제 유엔 해비타트 한국위원회 회장으로 이 기구를 이끌고 있다. 지난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박 회장을 만났다. 박 회장은 "한국위원회에 대한 유엔 해비타트 본부의 기대와 관심이 어마어마하다"고 말했다.
1978년 설립된 유엔 해비타트는 각 나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시민단체 등과 협력해 도시개발과 도시재생, 주거환경 개선을 주 업무로 하는 유엔 산하기구다. '모든 사람에게 안락한 집이 있는 세상(A world where everyone has a decent place to live)'이 비전이다.
이 비전은 단순히 집에 국한하지 않는다. 박 회장은 "'안정된 주거' 개념엔 일자리, 교육, 문화가 모두 들어간다"고 말했다. 특히 유엔 해비타트는 20년 주기로 핵심 어젠다를 정해 여기에 집중하는데 2016~36년의 어젠다는 '도시'와 '청년'이라고 박 회장은 소개했다.
대담 = 류순열 편집국장
—해비타트 하면 무주택자에게 집 지어주는 게 먼저 생각난다
"유엔 해비타트를 민간 해비타트와 헷갈려하는 분들이 많다. 무주택 서민에게 집을 지어주거나 집을 수리해주는 게 민간 해비타트의 활동이다. 지미 카터 미국 전 대통령이 활동하고, 한국의 유명 연예인들이 참여한 모습 때문에 우리와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유엔 해비타트는 유엔의 공식 산하기구다."
—그럼 유엔 해비타트는 어떤 일을 하나
"유엔 해비타트는 곧 인간정주계획이다. 단순히 집이라는 1차원적인 접근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안정된 주거'로 개념을 확장시키는 것이다. 주거에서 파생되는 의식, 교육, 문화 등 관련 아젠다를 다룬다.
강조하고 싶은 점은 유엔 해비타트가 다양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창립 이래로 단 한 번도 국가위원회를 내준 적이 없다. 한국위원회가 세계 최초이자 유일의 유엔 해비타트 국가위원회다. 유엔 해비타트 본부에서도 한국위원회에 관심이 어마어마하다."
—한국위원회 설립 당시 유엔 차원의 재정적 지원이 있었나
"유엔은 기본적으로 재정 지원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두 가지 루트로 자금을 만든다. 하나는 우리가 다루는 주제를 비슷하게 다루는 관련 정부 부처가 있다. 정부에 제안해 유엔 해비타트와 계약케 하고, 거기에 한국위원회가 관여해 프로젝트를 시행한다. 여기서 나오는 예산으로 위원회가 운영된다.
다른 하나는 자발적으로 사업을 수행해 수익을 내는 방식이다. KBS가 지난 7월 코로나19로 지친 이들을 위로하는 동시에, K방역을 알리기 위해 클래식 음악회을 만들어 전 세계에 송출하려고 했다. 당시 제안을 받고 우리가 기업 후원을 모금했다. KBS에 이어 SBS와도 지난 9월 K팝 음악회를 개최했다. 지금은 초창기라 어려운 상황이지만, 안정화시키기 위해 노력 중이다."
—지난 1년간 어떤 활동에 중점을 뒀는지
"청년 문제에 집중했다. 취임사에서 한국위원회가 '한국 청년들의 희망 플랫폼'이 되도록 하겠다고 했다. 제가 직접 해결해줄 수는 없지만, 이곳이 청년 의제를 심도있게 다루는 유엔 기구로서 청년들이 모일 수 있는 곳으로 만들겠다고.
결국 기구를 주도하고 끌고나가는 건 청년들의 몫이기 때문에 나의 역할은 짧길 바란다. 청년들이 자유롭게 놀고 운영할 수 있도록 목표를 두고 초창기 운영을 하고 있을 뿐이다.
청년들을 위한 사업으로는 국가의 유휴부지를 많이 가진 철도시설공단, 코레일과 3자간 업무협약(MOU)을 맺고, 도심 속 청년주택을 만들려고 한다. 철도유휴부지에 청년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도심에 있는 땅을 달라고 제안했고, 청년의 정주여건에 맞게 잘 설계해 빛나게 모델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공단은 서울시 마포의 자동차학원 5000평 부지를 내놨고, 우리는 종합적인 개념의 정주여건을 갖춘 청년주택을 만드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청년주택 모델은 언제쯤 볼 수 있나
"서울시와 마포구의 행정 인허가 절차 등이 남아 있다. 올해 남은 절차들을 잘 밟게 되면 내년 하반기에는 착공할 수 있을 것 같다. 구체적인 시기와 내용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이런 식으로 청년 관련 사업들을 진행할 예정이다. 청년들을 위한 숨은 정책들이 꽤 많더라."
—'모든 사람에게 안락한 집이 있는 세상'이라는 비전, 현실과 거리감이 느껴진다
"유엔 해비타트가 부동산 정책을 관장하는 건 아니다. 다만 정주 개념이 집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간단히 말하자면, 부동산 문제는 어느 정부의 문제라기보다는 공급과 투기수요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 것으로 봐야 한다. 정부는 공급을 확대하고, 투기를 막는 정책을 균형 있게 해야 한다.
솔직히 말하면 공급의 측면에서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잘못한 게 있다. 수도권 택지 공급량을 보면, 노무현 정부 때 4800만 평을 공급했고, 이명박 정부는 1900만 평, 박근혜 정부는 300만 평 수준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제 1600만 평의 택지를 마련했다.
택지 지정하고 개발되는 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 공급은 길게 보고 택지를 안정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 택지 지정이 너무 적었다. 노무현 정부 때 마련한 택지를 이후 두 정부에서 소비한 셈이다. 공급의 불안정성이 심했다."
—문재인 정부 주택정책을 냉정히 평가하면
"투기 수요 억제를 위해 적용한 DTI(총부채상환비율), LTV(주택담보인정비율)의 범위는 모든 정부가 잘못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특히 진보 정권은 투기 수요 억제를 징벌적 측면에서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규제 정책에 너무 많은 힘을 쏟았다.
박근혜 정부 때 잘한 게 하나 있다. 여야정 TF(태스크포스)를 만든 것이다. 효과는 입증할 수 없지만 가까이서 봤을 때 대응이 매우 빨랐다. 지금이 바로 여야정 TF를 만들 때다. 여러 상임위에 걸쳐있는 부동산 정책의 내용들이 종합되기 힘들다."
—'30대 영끌'을 걱정해야 할 타이밍이다. 정주에 직결되는 문제 아닌가
"저도 참 걱정되는 부분이다. 부동산 정책이 유엔 해비타트 한국위원회의 직접적인 이슈는 아니지만."
—회장님도 청와대 대변인 시절 집 때문에 고생 좀 하셨잖나
"당시 공주에서 매일 청와대로 출퇴근했다. 국회의원 때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무주택자다."
—더불어민주당 미래주거추진단과 연계하나
"유엔 기구는 정파성·당파성을 멀리해야 한다. 특정 정당과 연계하기보다는 각 정당 청년위원회와 연대하려고 한다. 각 당의 청년 국회의원과 전문성 있는 의원들에게 적극 홍보하고 있고, 각 당의 유관 부서와는 이미 협력하고 있다. 지속적으로 할 일을 만드는 과정이다."
—지속적으로 할 일이란 게 무엇인가
"그중 하나가 11월 25일에 '제1회 대한민국 도시포럼'을 한겨레 신문과 함께 개최하는 것이다. 중소도시는 소멸의 위험이 있어 도시재생 사업이 필요하고, 대도시는 양극화 때문에 사회적 약자가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우리는 '그 누구도 그 어느 곳도 뒤에 남지 않도록'이라는 슬로건을 만들었다. 도시에서 소외된 사람들, 특히 청년들을 위해 할 일을 찾겠다.
또한 유엔 해비타트가 2년마다 개최하는 11회 '세계도시포럼'을 24년에 유치해보려 한다. 이 포럼엔 도시, 주택, 정주 등을 관장하는 세계 각국 장관들, 전문가들이 모인다. 제10회는 지난 2월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개최됐다.
그런데 우리에겐 여태 도시포럼이 없다. 도시문제를 다루는 포럼이 없었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지속적으로 할 일은 일단 도시포럼을 '명품포럼'으로 만드는 것이다. 도시포럼을 통해 유엔 해비타트 한국위원회를 안정적으로 운영이 가능한 구조로 만들고자 한다."
◆ 박수현 회장은KPI뉴스 / 장기현 기자 jkh@kpinews.kr
△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중·고 △ 서울대학교 서양사학 중퇴 △ 한국방송통신대 행정학 학사 △ 연세대 대학원 행정학 석사 △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이사 △ 제19대 국회의원 △ 대통령비서실 대변인 △ 국회의장 비서실장 △ 더불어민주당 홍보소통위원회 위원장 △ 유엔 해비타트 한국위원회 회장(20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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