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당의 단매] 국정원장, 재임기간 길수록 교도소는 가깝다
김당
dangk@kpinews.kr | 2020-09-01 01:04:55
'정치 관여' 원세훈, 항소심도 징역7년…'권영해 징역5년' 기록 깨
'역대 최장수' 김형욱 피살, 원세훈 징역7년, 권영해 징역5년
재임 시절 벌인 정치 관여 등 각종 불법 정치공작으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항소심에서도 1심과 같은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서울고법 형사13부(구회근∙이준영∙최성보 부장판사)는 31일 국고손실, 정치 관여 등의 혐의로 기소된 원 전 원장에게 징역 7년과 자격정지 5년을 선고했다. 1심 형량은 징역 7년과 자격정지 7년이었다.
재판부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정보기관의 정치 관여 문제로 수많은 폐해가 발생했고 그 명칭이나 업무범위를 수 차례 바꿔온 사정을 비춰보면, 국정원의 정치 관여는 어떤 형태이든 매우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원세훈과 권영해, '역대 최장수 국정원장'과 '역대 최장수 안기부장'
이로써 원세훈 전 원장은 권영해 전 국가안전기획부장이 재임중의 범법행위로 세운 최고형(징역5년) 기록을 깼다. 이와 별도로 원 전 원장은 앞서 2013년 기소된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2018년에 징역 4년을 확정받은 상태다.
두 사람은 이로써 각각 '역대 최장수' 국정원장∙안기부장이라는 타이틀과 '역대 최장기형'을 선고받은 국정원장∙안기부장이라는 불명예를 떠안게 되었다. 또한 엄정한 정치적 중립이 요구되는 정보기관장으로서 대통령선거에 개입해 국정원법(안기부법)과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것은 정보기관의 존립 근거와 국기(國基)를 뒤흔드는 중대 범죄로 기록되었다.
[표] 원세훈 국정원장∙권영해 안기부장의 재임중 비리
구분
원세훈 국정원장
권영해 안기부장
출신지/학력
경북 영주/서울대 법학과
경북 경주/육사 15기
재임기간
2009. 2~2013. 3(4년1개월)
1994. 12~1998. 3(3년3개월)
대통령과 관계
이명박 서울시장 당시 부시장 역임
교회 장로 인연, 김영삼 대통령의 '하나회' 숙정 관여
불법비리 혐의
개인비리, 국정원법∙공직선거법(댓글 공작), 특가법(국고손실) 위반
개인비리, 안기부법∙선거법(북풍, 총풍, 세풍 등) 위반
사법처리 결과
징역1년2개월(알선수재), 징역7년(공직선거법∙국정원법 위반)
징역2년(횡령), 징역8개월(세풍), 징역5년(북풍, 선거법∙안기부법 위반)
권영해 전 안기부장(1994.12~1998. 3)은 경북 경주 출신으로 육사(15기) 졸업 후 중장으로 예편했다. 권씨는 김영삼 정부 출범과 함께 국방부장관에 기용됐다가 다시 안기부장을 맡을 만큼 김영삼 대통령의 신임을 받았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2009. 2~2013. 3)은 경북 영주 출신으로 서울대 법학과 졸업 후 행정고시에 합격해 주로 서울시에서 28년을 근무했다. 원씨는 이명박 시장 시절 행정부시장을 지낸 인연으로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행자부 장관에 기용되었다가 국정원장을 맡을 만큼 이명박 대통령의 신임이 컸다. 역대 최초의 '군 미필 대통령'이 임명한 역대 최초의 '군 미필 국정원장'이었다.
두 사람은 우선 '역대 최장수 안기부장'과 '역대 최장수 국정원장'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1987년 6월 민주 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된 이후 노태우 정부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국정원장(안기부장)에 취임한 사람은 15대 배명인 안기부장부터 35대 박지원 국정원장까지 21명에 이른다. 이 중 민간인 출신이 13명, 군(육사) 출신은 8명이다. 대체적으로 민간인 출신 원장들은 장수한 반면에 군 출신은 단명했다.
권영해와 원세훈, 정권안보·국가안보 동일시, 정보기관 사유화
권영해는 김영삼 대통령의 신임을 바탕으로 3년 2개월 재임했는데, 이는 군 출신으로는 '최장수'이고 전체를 통틀어도 두 번째다. 87년 이후 역대 최장 기간 재임한 원장은 이명박 대통령과 거의 임기를 함께 한 원세훈(4년 1개월)이다.
이른바 '혁명 보위세력'으로 출범한 중앙정보부까지 거슬러 올라가도 '역대 최장수' 원장은 제4대 김형욱(6년 3개월), 원세훈, 권영해 순이다. 재임 기간이 길었다는 것은 대통령의 신임이 큰 만큼 '악역'을 수행한 기간이 길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 사람은 또한 각각 안기부장과 국정원장 재직 중의 개인비리로 구속된 '유일무이'한 정보기관장이다. 권씨는 안기부장 시절 안기부 자금 10억 원을 빼돌려 기업인을 통해 동생에게 주도록 한 혐의(횡령죄)로 2004년 기소돼 이듬해 징역 2년형이 확정되었다. 원씨 또한 국정원장 시절 건설업자로부터 1억7000만 원대 금품을 챙긴 혐의(알선수재)로 앞서 1년 2개월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무엇보다도 두 사람이 닮은 점은 정권 안보와 국가 안보를 동일시해 정보기관을 사유화했다는 점이다. 권씨는 안기부장 재직 중에 북풍(北風), 총풍(銃風), 세풍(稅風) 등 이른바 '3풍 사건'에 모두 관련된 유일한 공직자다. 원씨 또한 개인 비리와 심리전단 동원 댓글공작 그리고 국고횡령죄까지 유죄를 선고받은 '불법-비리 3관왕'으로 기록되었다.
권씨는 아말렉 공작(김대중 후보를 낙선시킬 목적으로 재미교포 윤홍준에게 20만 달러 제공해 거짓 기자회견 사주)과 오대산 공작(월북한 오익제 편지를 활용)을 지시한 혐의 등으로 1, 2심 모두 5년형을 선고받았다. 권씨는 또한 1997년 대선 전에 공기업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불법모금한 혐의로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다.
원세훈이 재임중 한 일은 '종북세력 척결'과 'MB정부 국정홍보'뿐
원세훈 전 원장은 전신인 안기부와 중정을 통틀어 비교해도 제4대 김형욱 부장(1963. 7~1969. 10)을 제외하곤 역대 '최장수'이다. 그만큼 '악역'을 오랫동안 수행해 왔다는 얘기다. 그가 수행한 '악역'의 핵심은 2012년 대선에서 국정원의 불법 정치-선거개입을 지시한 것이다.
국가정보 업무에는 문외한이었던 그가 어떤 연유로 '악역'을 수행했던 것일까? 검찰의 공소장과 법원 판결에 따르면, 그는 국정원의 불법 정치·선거 개입 행위가 정부 정책에 반대하거나 비협조적인 모든 이들을 '종북세력'으로 간주하는 '그릇된 인식'을 가졌다. 원세훈이 재임중 한 일을 한 줄로 요약하면 '종북세력 척결'과 'MB정부 국정홍보'였다.
원세훈은 이명박 정부 첫해에 4개월간 지속된 '광우병 촛불 사태'를 겪은 뒤 종북세력들의 사이버 선전·선동에 대한 정부 대처 미흡이 상황을 악화시켰다고 인식했다. 실제로 그는 2009년 2월 원장 취임후 첫 부서장 회의에서 "국정원 업무를 좀 더 공격적으로 수행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소속 요원들은 원장(원세훈)-3차장(이종명)-심리정보국장(민병주)-팀장의 지휘체계에 따라 '주요 이슈와 대응 논지'를 하달받고, 인터넷에 게시글을 쓰거나 추천·반대 클릭을 했다. 정부 정책을 반대하면 모두 '종북 딱지'를 붙였다. 원세훈의 지침은 '지시·강조말씀'이나 부서장 회의, 아침 브리핑을 통해 전 직원에게 전파됐고, 활동 결과는 원장에게 매일 보고됐다.
원세훈은 이렇게 4년여 재임기간에 치러진 총선과 지방선거, 그리고 대선까지 개입했다. 국정원은 '대북심리전의 일환'이라고 해명했지만, 북한·종북좌파 관련 글에 대한 찬반 표시는 전체의 2.7%에 불과했다. 국정원을 정권안보와 국정홍보의 홍위병으로 사유화한 것이다.
그동안 국정원은 그 책임자의 상당수가 불명예 퇴진하거나 사법처리 되어 영어(囹圄)의 몸이 되는 수난을 겪어왔다. 역대 중앙정보부장 10명(서리 포함) 가운데 7명(70%), 역대 국가안전기획부장 12명 가운데 6명(50%)이 사법처리 되거나 '불귀(不歸)의 객'이 되었다. 현 박지원 원장을 제외한 역대 국정원장 13명 가운데서도 6명(46%)이 구속되었다.
결국 초대 김종필 부장부터 34대 서훈 원장까지 34명 중에서 19명(56%)이 사법처리 되거나 '불귀의 객'이 된 것이다. 이 가운데서도 역대 최장수 부장∙원장은 각각 오래 재임한 순으로 '불귀의 객'(김형욱)과 '최장기 수형자'(원세훈 7년형∙권영해 5년형)라는 불명예를 기록중이다.
국정원장은 재임기간이 길수록 교도소 문이 가깝다는 속설은 여전히 유효하다.
KPI뉴스 / 김당 대기자 dangk@kpinews.kr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