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신라 장군 이사부가 설계한 대한민국의 뿌리"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6-02-06 17:40:28

삼국통일 그린 대하역사소설 '사국지' 전 5권 펴낸 하응백
역사적 고증 바탕, '삼국지'보다 흥미로운 4국의 쟁투 과정
신라 '일통삼한'의 원동력 '포용'과 '시스템' 선명하게 부각
"인구 소멸 다문화 시대 21세기 대한민국에 주는 큰 교훈"

소설 쓰기를 겸하고 있는 문학평론가 하응백이 대하 역사소설 '사국지'(전5권·휴먼앤북스)를 펴냈다.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지'가 아니라, 가야를 포함한 '사국(四國)'의 쟁투와 융합을 통해 한반도 최초의 단일 국가가 탄생하는 과정을 치밀한 고증과 절제된 상상력으로 복원해 낸 역작이다. 

 

▲ 문학평론가로 오랫동안 활동해오다가 근년 들어 소설가로서의 행보를 본격화하고 있는 하응백. 그는 "가야를 포함한 사국의 쟁투 과정이 지금 대한민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1985년 전방 관측소에서 '삼국사기'를 필사하며 막연히 꾸었던 꿈을 지난 4년 동안 본격적인 실천에 옮겨 결실을 맺었다. 500여 권의 역사서와 1000편이 넘는 논문을 섭렵하고, 삼국시대의 격전지를 수십 차례 답사했다. 단순한 영웅 서사를 넘어, '국가(State)'란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우리'가 되었는가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200자 원고지 7000장에 담았다.

1·2권은 신라의 전성기를 연 지증왕, 법흥왕, 진흥왕 시대와 그 중심에 섰던 '이사부' 장군의 활약상을 다룬다. 3·4권은 김춘추(무열왕)와 문무왕, 김유신이 주축이 되어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나당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과정을, 마지막 5권은 시계를 거꾸로 돌려 백제 한성 함락의 비극을 다룬 전사(前史), 이른바 '프리퀄' 형식의 구성이다.


이사부가 가야를 합병하고 우산국을 정벌한 뒤 한강 연안까지 영토를 확대해 기반을 닦은 신라는 이후 본격적인 삼국 쟁투의 과정을 겪는다. 작가는 이사부에 공을 들인 전반부를 지나면서부터는 특정 영웅의 무용담에 매몰되지 않는다. 대신 '드론'을 띄워 동아시아 전체를 조망하듯, 객관적이고 냉철한 시선으로 역사를 부감한다.

무엇보다 '사국지'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포용'과 '시스템'에서 찾는다. 하응백은 "폐쇄적인 골품제 국가였던 신라가 가야계를 받아들이고 고구려와 백제의 유민을 흡수하여 '일통삼한(一統三韓)'을 이루었다"면서 "이 과정이야말로 인구 소멸과 다문화 시대를 맞이한 21세기 대한민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역설한다.

ㅡ젊은 시절부터 '삼국사기'에 관심을 가졌던 배경은?
"나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자전소설 '남중'(2019)을 펴내고 나니, 군 시절 국문과 대학원생으로서 한자 공부를 할 겸 필사하던 '삼국사기'가 떠오르면서 이제 국가의 정체성을 찾는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대한민국의 근원은 거슬러 올라가면 통일신라다. 가야 고구려 백제 신라가 합쳐져서 한 나라가 되었을 때 비로소 대한민국의 실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평화 시기를 다룬 소설은 재미가 없다. 중국 삼국지가 재미있는 이유는 한 나라가 끝나고 다른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가장 흥미로운 시기가 삼국 쟁투 때인데 왜 우리에게는 삼국지 같은 소설이 없을까, 이런 생각을 했다."

ㅡ중국 '삼국지' 같은 고전이 우리에게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우리에게는 삼국시대를 다룬 '삼국지' 같은 정통 왕조소설이 없다. 식민지시대에 나온 '임꺽정'이나 이에 영향을 받은 '장길산' 같은 소설들은 시대 상황 때문에 '민'의 시각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었다. 1970~80년대까지도 삼국사기에 나오는 현재 지명을 알 수 없는 곳이 수백 곳이 넘었다. 예컨대 한성 백제의 원래 수도가 위례성인데, 그 위치를 몰랐다. 위례성의 위치도 모르고 소설을 쓴다면 판타지를 쓰는 거다. 2000년대 들어서야 몽촌 풍납토성이 위례성으로 거의 확실해졌다. 이제 중국의 '자치통감'을 비롯해 일본 자료까지 인터넷망으로 접할 수 있고,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터베이스도 훌륭하다. 앞으로 삼국시대를 다룬 소설은 '사국지'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다."  

 


ㅡ'상상력은 종이가 붙을 풀칠 정도'로 사용했을 만큼 역사적 고증에 충실했던 이유는?

"역사 자체가 재미있다. 예컨대 당나라 소정방의 후임 왕문도가 신라의 태종 무열왕을 만난 자리에서 급사를 한다. 당나라 황제 칙서를 가지고 온 외교관이 외교 문서를 읽는 자리에서 쓰러져 죽었는데 이런 대사건은 아무리 뛰어난 작가라도 상상할 수 없다. 상상했으면 그 소설이 완전히 엉터리가 되는 거다. 지금으로 치면 미국 대사가 청와대에서 신임장을 받다가 갑자기 죽은 건데, 어떤 조서를 꾸며야 할지 상상해내기 어렵다. 역사만큼 위대한 상상은 없다는 게 바로 그런 이야기들이다."

이사부의 활약과 아픈 사랑을 담은 1·2권은 작가의 상상이 상대적으로 많이 투여됐다. 이사부는 어린시절부터 가까이 지내던 지소부인이 법흥왕의 동생인 친삼촌과 혼인했다가 홀로 된 후, 그녀의 어린 아들 15세 진흥왕을 모시며 병부령으로 활약하면서 '연인'을 지킨다. 경주 금관총에서 발굴된 끝이 둥그런 모양의 칼 '환두대도'에서 뒤늦게 발견된 尔斯智王(이사지왕)이란 명문을, 하응백은 이사부가 연인을 지키기 위해 함께 부장한 것으로 소설적 상상력을 발휘했다. 그 칼을 이사부가 죽은 지소부인의 머리 위에 놓으면서 토하는 별사가 애틋하다.

'잘 가시오, 지소. 그대 비록 나의 지어미는 아니었어도, 내 마음에 그대를 넣고 평생을 살았구려. 그대의 혼백은 어디로 가는 거요? 저 진달래 꽃비 내리는 서역 언덕인가. 그 어디를 가더라도 내가 따라가리다. 내 곧 따라가리다. 다음 생에는 늘 그대 곁에 있겠소. 부디 잘 가시오.'

많은 업적을 이루었음에도 죽을 무렵에는 후계자 '거칠부'에게 자신이 죽으면 화장해서 어느 절 뒤 돌 아래 묻어버리라고 이사부는 당부한다. 후대에 왕의 지어미와 연인 관계였다는 소문을 빌미로 실력 없는 자들의 아첨과 모함 때문에 화를 당할 것이라는 이유였다. 이사부는 '나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말고 없애라'면서 거듭 만류하는 후계자에게 '사실 나는 기록으로도 남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ㅡ이사부에게 특별히 애정을 기울인 배경은?
"사실 이 소설은 딱 한 마디로 말하면 일종의 교양 성장 소설이다. 이사부라는 아이가 태어나서 친구들과 교육을 받고 같이 놀러다니고 어떤 의지를 다지는, 늙어 죽을 때까지의 일대기가 바탕이다. 이사부는 2권에서 죽는데 이후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때문에 교양소설이기도 하다. 이사부가 울릉도, 가야, 한강 유역까지 신라의 영토를 2배 이상 확장했고 그 기반에서 삼국통일이 가능했다. 비석에도 그 기록이 남아 있는데 정작 삼국사기에는 이사부가 후계자인 거칠부보다 더 적게 나와 있다. 지소부인과의 관계 때문에 후대 왕들의 질시를 피해가기 위한 것으로 상상했다. 후대 사람들도 신라장군 이사부가 울릉도를 정벌했다는 정도밖에 몰라 답답했다. 신라 최고의 장군인데, 이제 제대로 보아야 한다."

ㅡ'사국지'가 지금 우리에게 시사하는 가장 시급한 점은?
"우리가 당면한 가장 시급한 문제가 인구 소멸이다. 어떤 목표를 세워야 하는데 결국 많이 낳으라고만 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미 우리나라 외국인 노동자가 공식적으로 100만 명을 넘어선 상황이고, 시골에 가면 대다수 동남아시아 노동자들이 서빙을 하고 고기를 잡고 이삿짐을 나른다. 혈통주의만 주장하면서 그들을 열등한 민족으로 치부하며 하인처럼 부려먹는 이런 시대가 언제까지 갈까. 신라가 가야를 포용해 삼국통일을 이루었듯이 배타적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좀 더 포용적인 국가로 나아가야 한다. 고구려 신라 백제는 같은 민족이 아니었다. 수백 년 동안 서로 치열하게 싸우는 적이었을 뿐이다. 삼국통일 이후 고려 조선으로 이어지면서 민족 개념이 형성됐다. 민족주의 시효가 끝났다면 우리는 국가주의로 뭉쳐야 되는데, 그 답이 신라의 삼국통일이다."

 

▲ 하응백은 "대하소설의 시대는 갔다고 하지만, 웹툰이나 드라마 같은 다른 장르로라도 이 서사가 널리 전달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ㅡ백제와 전라도, 신라와 경상도를 동일시하는 프레임이 있다.
"1960년대 들어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 때문에 형성된 편견이다. 이런 갈라치기가 우리 핏줄에 오래전부터 있었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인식부터 버려야 되는데, 이 소설이 일조했으면 좋겠다. 신라는 경주를 중심으로 한 마을들에서 시작됐고, 지금의 경상남도 지역은 가야가 지배했다. 백제는 한강 유역에서 웅진 사비로 내려갔다. 1500년 가까이 흐르는 동안 신라, 백제, 고구려, 가야의 피가 다 섞였다. 이주와 혼인이 가장 큰 이유인데, 나만 해도 아버님은 신의주에서 월남했고 결혼은 광주 여자와 했다. 불과 3대 만에 북한과 남한, 호남과 영남이 다 섞여버리지 않았나."

ㅡ만주 지역 고구려 영토까지 확보하지 못한 불완전한 삼국통일이라고 보는 견해도 여전한데.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장악했던 칭기즈칸 시대와 몽골이 확보한 지금 영토를 생각해보라. 역사상 한반도에서 가장 잘 살았던 나라가 언제였느냐 따져보면 지금 반쪽으로 갈라진 휴전선 남쪽 대한민국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영토가 절대적 요인은 아니라는 말이다. 땅이 광활했던 고구려가 가장 위대한 나라인가. 물론 광개토대왕의 위대함은 인정하지만 지금의 대한민국 만큼은 아니다. 영토 중심 사고는 일본의 대동아공영권 논리에 빠져드는 거다. 우리 내부의 인적 자원을 어떻게 잘 활용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포용력을 바탕으로 당나라의 침략전쟁에 승리했던 신라의 내실을 배워야 하는 이유다."

하응백은 "예전처럼 수십만 부가 팔리던 대하소설의 시대를 바라며 이 작품을 쓴 것은 아니다"면서 "이 서사가 웹툰이나 드라마 같은 다른 장르로 확산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기록으로도 남고 싶지 않다는 이사부의 말.

'난 한 여자의 남자로 만족한 사람이야. 그걸로 되었어.'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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