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쉼'을 빼앗긴 주민들…"집회 소음에 고혈압·당뇨 얻어"

손지혜

sjh@kpinews.kr | 2019-11-29 10:35:46

광화문 주민들 공청회서 생활 불편 호소
"집회 소음 규제 기준을 대폭 강화해야"

"한 가정의 가치가 무엇이죠? 거기에는 휴식이 반드시 들어가 있습니다."

주민들은 눈물을 흘렸다. 더이상 집에서 '쉼'을 누릴 수 없어서다. 60데시벨을 가히 넘는 집회 소음이 가정의 휴식을 앗아갔다. 집회는 끊이지 않았다.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듯 한 집회가 끝나 해산하면 또 다른 집회가 찾아왔다. 누군가는 소음에 익숙해져 오히려 적막 속 현기증을 느꼈고, 누군가는 원인 모를 당뇨에 걸렸다.

지난 27일 서울 종로구 고궁박물관에서 열린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3차 토론회'에는 효자동, 구기동, 팔판동 등 시위가 일어나는 지역 부근에 사는 주민들이 모여 한 가정의 가치를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 지난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광장 민주주의와 성숙한 집회시위 문화라는 주제로 열린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3차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정병혁 기자]

병들어가는 주민들

"고혈압과 당뇨를 진단 받았다" 팔판동에 사는 한 시민은 집회 소음을 들으며 지병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집시법에 허용된) 65dB이 어떤 정도인지를 정말 아는가?"라며 잠시 마이크를 통해 큰 소리를 냈다. 그러면서 그는 "동네 사는 사람 묻지도 않고 전체 국민이 정말 중요한가? (중략) 3년간 65dB을 들으며 살아왔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그리고는 "법률 위에 헌법이 있다. 집시법보다 주민의 생존권이 먼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토론자 김승주 씨는 "(집회가) 너무 시끄러워서 창문이란 창문은 다 닫고 커튼도 이중으로 닫고 불 켜고 (토론회에서 말할 내용을) 정리했다"면서 "그리고 나서 3시쯤 오면서 머리가 띵했다. 너무 정신 없는 속에서 있다가 너무 조용한 곳에 오니 갑자기 이상했다. 이러다가 정말 내가 이상해지겠구나 싶었다"고 밝혔다.

소음은 정신과 육체를 모두 병들게 한다. 2010년 유럽환경청(EEA)의 소음 노출과 잠재적 건강 영향에 대한 우수 사례 가이드에 의하면 저녁에 5dB 야간에 10dB의 가중치를 준 하루 24시간 동안 평균소음의 기준으로, 50dB 이상의 소음에 노출될 시에는 수면장애 및 고혈압이 생길 수 있다고 발표했다. 60dB 이상의 소음에 노출된다면 허혈성 심장질환 등이 유발된다고 설명했다.

▲ 지난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광장 민주주의와 성숙한 집회시위 문화라는 주제로 열린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3차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정병혁 기자]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자유는 방종"

그렇다고 주민들이 집회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토론자이자 지역 주민인 유나영씨는 "촛불집회로 일상에 생긴 불편이 분명히 있었다"라면서도 "그러나 우리 모두 2016년 광화문 인근 촛불집회를 매우 아름답게 생각했다. 저녁식사 마치면 아이들의 손을 잡고 집회 행렬에 함께 했다. 사직동, 청운효자동, 부암동 이 마을 근교에 있는 모든 주민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는 "2014년 세월호 집회 때도 집회하시는 분들에게 밥을 대접했다. 그 자리에 우리가 있었다는거 잊지말아달라"면서 "이런 광화문 광장에 대한 이야기나 집회에 대한 이해도가 사직동이나 인근 마을 주민들에게 항상 존재했다는 것을 잊지 말아주시기 바란다"고 부탁했다.

실제로 경찰청에서 2019년 8월 5일~12일까지 전국 성인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하는 전화 여론조사를 벌였고 그 결과 국민의 69.9%가 헌법상 집회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 주기 위해서 해당 집회 소음에 대해 감수하고 인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소음으로 불편했던 경험이 있었을 경우, 소음 규제 강화에 81.5%가 찬성을 했다.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면서까지 집회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재고해주길 바란다는 의미로 읽히는 부분이다.

"내 권한만 주장하려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방종이다" 토론자 김승주씨는 이렇게 운을 뗐다. 그는 "물론 표현의 자유와 집회, 시위의 자유도 있다. 그런데 요즘 분들 보면서 이건 자유가 아니라 방종이다"라면서 "자율은 나의 권리를 주장하기 이전에 나의 의무와 책임이 있는거잖아요"라고 말했다.

주민들이 제시한 해법

"어떻게 우리의 휴식을 찾을 수 있을까요" 유나영 씨는 직접 발로 뛰며 주민들에게 해법을 물었다.

한 주민은 "집회시위 버스가 못들어오게 통행료를 올렸으면 좋겠다. 해외는 중심가로 들어올 때 (버스비가) 엄청 비싸다. 남산 터미널은 몇 천 원밖에 안 한다. 아주 비싸게 받으면 어디 함부로 버스 끌고 오겠나? 집회 소음도 힘든데 버스도 진짜 힘들다"고 소견을 피력했다.

한 어린이는 "소리 없애는 리모컨이 있으면 좋겠어요. 그럼 우리말 잘 들을거 같아요. 떠들지 말라고 하는데 떠들면 리모콘을 눌러 끄면 되잖아요"라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기도했다.

마을 어르신들의 노숙한 시위자제 권고 방식도 들려줬다. 어르신들은 "여기 가게 앞이야 비켜줘야지" "여기 차들 지나가야한다. 빨리 지나가야해" "행인 지나가니까 피해보지 않게 한쪽으로 피해 봅시다" 등의 방법으로 시위참여자들의 이해를 구했다고 한다.

광화문 광장의 고차방정식 풀 수 있을까

역사성, 문화적 어울림, 정치 사회적 외침, 교통, 주민의 안녕 등 광화문 광장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여러가지 가치가 혼재된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어느 한 쪽의 가치가 다른 쪽의 가치를 깎는다면 고차방정식의 답은 마이너스가 된다.

"나이가 든다는건 어른이 된다는 거다. 좀 더 나은 대한민국을 위해 진정한 어른이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다같이 할 수 없을까. 양갈래로 나눠지는게 아니라 조화로운 대한민국을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을지를 고민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토론자인 김승주 주민은 이 고차방정식을 풀 수 있는 첫 실마리를 제공했다. 정부와 지자체, 집회 참가자들 그리고 시민들이 이제 머리를 맞댈 시간이다.

KPI뉴스 / 손지혜 기자 sjh@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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