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돈키호테 의사들은 어떻게 해서 탄생하는가

이원영

lwy@kpinews.kr | 2019-11-28 13:53:04

물대포 사망 백남기 농민 '병사'라 고집하는 백선하
폐쇄적 '의국(醫國) 동일체'에서 세상과 점점 이질화

지난 2015년 11월 광화문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여했다가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중태에 빠진 뒤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다가 다음 해 9월 사망한 백남기 농민.

법원은 최근 백 농민의 사인을 '외인사'가 아닌 '병사'라고 기록해 큰 사회적 논란을 야기했던 당시 주치의 백선하 교수에게 유가족 위로금으로 45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백 교수 측은 "사법부 치욕의 날이다. 법정투쟁 계속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페이스북 시사 논객인 성형외과 의사 이주혁 씨가 '의사들은 왜 돈키호테 짓을 하는가'라는 글을 올려 이는 의료사회에 고질화한 폐쇄적 권위주의 문화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씨의 글을 요약한다.

▲ 이주혁 성형외과 의사 [페이스북 캡처]

10개월간 연명 치료 도중 사망한 백남기 농민에 대해, 당시 신경외과 백선하 과장은 사인을 '병사'로 기록하도록 전공의에게 지시했습니다.그리고 이후 백 교수는 국회에 출석해 "백씨가 체외투석 등 적절한 치료를 받고도 사망했다면 외인사였겠지만 유족이 그걸 거부해서 사망했으므로 병사로 기록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같은 자리에 나온 서울대학병원 법의학 교실 이윤성 교수는 " 연명 치료를 중단해서 병사로 쓴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연명 의료와 상관없이, 사망 원인은 선행 사인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에 백 교수는 "의협 사망진단서 지침이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서 '소신껏' 작성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대한전공의협회를 비롯해 인의협 등 의료계 여기저기서 모두 백 교수의 말은 궤변이며 의료계의 부끄러운 역사로 기록될 것이라는 비난이 쏟아졌고, 2016년 11월 서울대병원은 백 교수를 신경외과 과장에서 보직해임합니다.

45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 후에도 백 교수는 "의사의 양심을 짓밟은 정치 판단"이라며 거세게 반발합니다.대체 백선하 교수는 왜 저렇게 어이없는 궤변을 혼자서 끝까지 고수할 수 있는 걸까요?

이를 이해하려면 의사 사회의 구조를 설명해야 합니다. 예컨대 검찰 집단의 경우 '검사동일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 몸임을 강조하는데 의사 사회는 비슷하지만, 차이가 있습니다.의사들은 굳이 표현하자면 봉건사회의 영주-기사 관계랑 비슷하다고 봐야 합니다.

즉 각 봉토(각 과)마다 영주(과장)가 있고 과장 밑으로 있는 전문의들과 전공의들(기사들)이 '의국(醫國)' 멤버를 구성하는데, 이 의국이 말하자면 하나의 '동일체' 단위가 되는 것입니다.의국에서 버림받으면 제대로 교육도 못 받고 아무 데도 갈 수 없는 처지가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의사 한 명 한 명의 탄생이 이 '의국'에서 탄생합니다. 의사들이 맹꽁이 같은 소리를 하고 더 나아가서 저 사망진단서 사건처럼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는 것, 그것 역시 자기 '봉토'에서만 생활해 온 의사들이 외부 세상에 대해 까마득히 모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의사들은 의국 내에서 리베이트 및 의료 과실 등 잘못하는 일이 발생하는 걸 봐도 외부로 공개하지 못하고 그 어떤 비리가 있어도 조개처럼 입을 다뭅니다. 의사들 한 명 한 명은 양심적이고 성실한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그러나 '의국' 집단의 주종 관계는 자신의 태생 그 자체입니다. 그걸 이해해야 왜 세상이랑 동떨어진 이상한 소리를 하는 이가 나오는지 알 수 있습니다.

대부분 의사는 긴 기간 동안 병원이란 곳 내부에서 상당히 폐쇄적인 생활을 하며 의사로서의 훈련과 교육을 받습니다. 그게 의사들의 행동 방식과 가치관을 강력하게 규제하고 지배하는 겁니다.백 농민이 응급실에 들어가자마자 청와대와 경찰에서 병원장에게 계속 전화가 와서 압력이 들어갔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이게 뭔 일이야 했겠죠. 그러나 계속 언론의 관심이 쏟아지자 엄청난 사안이었음을 알게 된 것이지요. 백 농민의 사망이 부를 엄청난 파장을 우려해 청와대-병원장-담당 주치의로 압박이 이어진 것입니다.만약 백 교수가 외압에 아랑곳하지 않고 소신대로 했다면 얼마나 의사들의 존경을 받았을까요.

그런데 환자 사망 몇 개월 후 정권이 바뀌어 버린 겁니다.자기가 의국의 대장인데 이젠 물러설 수가 없게 된 것이죠. 이거 병사 맞다, 나 안 틀렸다, 이런 판결 내린 저 재판부가 잘못됐다, 이렇게까지 나갑니다. 의사협회에서 심폐정지같은 말은 '사망'과 동의어니 사인에 '심폐 정지' 쓰지 말아라, 라고 했는데 그것도 틀렸고 자기만 바르다고 합니다. 선배 법의학자, 동료 의사들이 저걸 어떻게 병사라고 쓰느냐고 비난이 쏟아지는데도 자기가 바르답니다.

소위 엘리트의 집합소인 서울대학병원에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현실에는 저런 분이 계십니다. 시대는 바뀌었고 의사의 권위 역시 사람들이 인정해주는 만큼만 세워질 수 있는 것인데. 내가 전문가이니라, 나의 말에는 오류가 없노라, 이런 식의 생각은 정말 시대착오적입니다. 우리 의사 집단이 폐쇄적 집단에서 외연을 넓혀 더 넓게 사회와 호흡하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주혁 성형외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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