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흐릿한 삶이 품고 있는 눈부신 비통悲痛"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6-01-30 17:07:25
죽은 친구 유언 따라 나고야의 눈 내린 삼나무숲으로
애도의 여정을 떠난 남녀가 들추어내는 삶의 실루엣
"손에 쥘 수 없는 것들을 쥐려는 '글쓰기'라는 돌멩이"
소설가 위수정이 2026년 제49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수상작은 중편 '눈과 돌멩이'. 일본 나고야 지방 눈 내린 삼나무숲으로 죽은 친구의 유분을 뿌리러 가는 애도의 여정을 담은 소설이다. 친구의 유언을 실행하기 위해 생전에 친했던 남녀가 이 여정에 나선다. 이들은 이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편린들을 통해, 흐릿한 삶이 품고 있는 '눈부신 비통(悲痛)'을 끌어안기에 이른다.
201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에 당선돼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한 위수정은 소설집 '은의 세계' '우리에게 없는 밤' 등을 펴냈고 김유정문학상, 한국일보 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분투해온 터였다. 심사위원들(본심: 김경욱 김형중 신수정 은희경 최진영)은 "불안 속에 불안을 견디는 힘을 품은 소설"이라며 "끝까지 비밀을 말해주지 않는 진실의 겹 안에서 독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평가했다.
수진, 재한, 유미는 대학 시절 영화 동아리를 함께 하며 가까워진 친구였다. 담도암에 걸린 수진이 스스로 세상과 인연을 끊고 친구들에게 일본의 삼나무 숲에 자신을 뿌려달라고 유언한다. 죽은 자의 기획대로 재한과 유미가 겨울을 기다려 여정을 떠나 설경 속에서 스노우 체인을 감지 않은 차가 고립되면서 여장남자의 집에 찾아들고, 그 집에서 밤을 새운 뒤 삼나무숲으로 나아간다. 이 여정에서 수진의 과거사는 토막토막 이어질 뿐 전모는 드러나지 않고, 재한과 유미는 그 서사의 틈을 상상으로 메꾸어가며 각기 자신의 방식으로 애도를 수행한다. 숨겨진 많은 이야기를 상상하게 하는, 눈 덮인 숲의 여정이다.
간담회장에서 만난 위수정은 "등단한 지 채 10년이 되지 않은 만큼 부담스러운 마음도 있다"면서 "관심 있게 지켜보고 관찰해 왔던 세계와 인물들을 용기를 내서 더 깊이 있게 파고들어 써도 된다는 격려라고 생각한다"고 수상 의미를 밝혔다. 그는 "독자들에게 이해받고 싶은 마음으로 글을 쓰고 그것이 작가의 의무이자 예의라고 생각하지만, 이 작품은 나의 필요에 의해서 쓴다는 느낌이 좀 더 강했다"고 했다.
-독자의 이해보다 작가의 필요가 앞섰던 이유는?
"단편소설이 요구하는 서사적 완결성에서 조금 벗어난 작품이다. 인물들의 서사가 완결되지 않고 흐려지기도 하고 갑자기 사라지거나 희미해지는 부분들이 있는데, 그런 것들이 사실 삶의 모습과 정말 많이 닮아 있다고 생각한다. 평소였다면 독자들을 더 생각해서 서사적인 밀도가 높은 친절한 방식을 택했을 텐데, 단편소설의 완결성에서 조금 다른 평가를 받을지라도 내가 원하는,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삶의 모습을 쓰고 싶었다."
-'불안 속에서 불안을 견디는 힘을 지닌 소설'이라는 심사평이다.
"실제 삶에서는 많은 것이 누락되고 누군가의 내면을 결코 알지 못한 채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을 소설로 옮겼을 때는 문제가 모두 해결되거나 진실이 보이는 것처럼 무책임하게 납득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채워진다. 제 의도가 읽히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세심하게 짚어주어 울컥했다."
-일본이라는 공간을 선택한 배경은?
"지난해 여행을 다녀오면서 이 공간을 무대로 그동안 생각해두었던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단순히 일본이라는 이미지가 가지고 있는 공간이라기보다는 어딘가에 항상 눈이 내리고 아득하고 뭔가 불안하면서도 매혹적인 설경이라는 것을 떠올렸을 때 있을 법한 어떤 세계를 그리고 싶었다. 여장남자가 나오는 맥락도,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에서 느껴지는 거리감 같은 것을 무화시키고 싶을 정도로 가깝게 여겨지는 찰나의 순간을 담고 싶어서였다. 낯설고 가까우면서도 틈이 있는 그런 장소로서 매혹되는 지점들이 있다고 생각했다."
수진이라는 인물은 짬짬이 드러내는 편린에 따르면, 한 남자를 좋아했지만 그이는 정작 그런 수진을 무섭다고 한 것으로 보아 거의 스토커 취급을 당한 것 같고, 그 남자가 언급한 일본의 겨울 삼나무 숲을 죽어서라도 친구들과 찾아가고 싶었던 맥락으로 읽힌다. 재한은 수진이 어릴 때 닫힌 현관문을 조금 세게 두드렸을 뿐인데 유리가 깨졌던 일화를 그녀에게 들었고, 유미는 정작 수진이 눈이 아니라 비를 좋아했다고 말한다.
그들도 수진에 대한 정보를 다 공유한 건 아니다. 재한이 모호한 삶을 상징하는 눈 속에서 무엇이라도 단단히 움켜쥐고 싶어 돌멩이를 주워드는 말미의 태도가 눈에 밟힌다. 그가 나고야의 장어덮밥 '히쓰마부시'의 히쓰(ひつ)와 마부시(まぶし)를 길게 발음해 '눈부신 비통(悲痛)'으로 바꾸는 위트는, '이제는 아프지 마. 슬프지 마. 아무도 좋아하지 마'라고 망자를 애도하는 자신의 속울음을 토닥거리는 듯하다. 눈 덮인 삼나무 숲에서 망자를 보내며, 비통마저 찰나에는 눈부실지 모를 삶을 움켜쥐는 여정이다.
'이 소설을 쓰면서는 무언가 분명하게 손에 잡히는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음도, 기억도, 시간도, 사람도, 하얀 눈도, 그 무엇도 손에 쥘 수 없다는 것이 슬펐다. 내게는 돌멩이가 필요했다. 손에 쥘 수 없는 것들을 쥐어보려는 시도로서의 글쓰기가.'_ '작가의 말'
위수정에게 삶을 움켜쥐게 만들 그 돌멩이는 '글쓰기'였다. 그는 수상작품집 대담에서 "수진은 우리의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지는 않다는 사실, 그리고 무방비 상태로 겪어야 하는 삶들에 대해 생각했을 것"이라면서 "그건 내부와 외부일 수도 있고, 삶과 죽음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수진이 어렸을 때 현관문을 두드렸을 뿐인데 유리가 깨졌던 트라우마를 소설 앞머리에 배치한 맥락이다. 재한도 말한다. '세계가 나뉘는 데 한 발짝이면 충분하다'고. 위수정은 "우리 인생의 어느 지점부터는 삶 자체가 애도의 여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소설을 쓸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소설에서 다 말하고 다 들어주고 메시지가 강한, 이런 것들을 저는 의식적으로 멀리하는 편이다. 각자의 몫을 만들어 놓고 비어 있는 부분에 대해 정확하게 답을 내놓지 못하더라도,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었으면 좋겠다는 열망이 있다. 지금까지 썼던 것처럼 정치적으로 올바르거나 약자를 무조건 선한 인물로 그리지 않고, 우리가 다 가지고 있는 내면의 어두움 같은 것을 바탕으로 다양한 인간성을 더 자유롭게 그려나가고 싶다."
-'여장남자' 같은 유머 코드도 있다.
"궁극적으로는 무서운데 웃기는 소설을 쓰고 싶다. 블랙코드도 좋아하는 편이다. 혹자는 한국문학이 칙칙하고 우울하고 암담해서 손이 쉽게 안 간다고 하는데, 장례식장에서도 속으로 웃을 수 있는 장면들이 있다. 무섭고 음습한데 자꾸 웃음이 나는 작품을 써 보고 싶은 꿈이 있다. 이렇게 큰 상을 받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는데, 이 상황 자체가 저에게는 무서우면서도 웃음이 나는 상황이기도 하다."
이상문학상은 시인이자 소설가 이상(李箱·1910~1937)의 문학적 업적을 기려 1977년 문학사상사가 제정했다. 한국 중단편 문학의 대중적 인지도를 높여온 이 상은 지난해부터는 다산북스가 주관하고 있다. 2025년 1월부터 9월까지 발표된 중단편(9~12월 발표작은 다음해 심사)을 대상으로 예심에서 17편을 골라 본심에서 수상작을 뽑았다. 우수상 수상작으로는 '관종들'(김혜진), '대부호'(성혜령), '겨울의 윤리'(이민진), '실패담 크루'(정이현), '우리의 적들이 산을 오를 때'(함윤이)가 선정됐다. 한국문학, 그중에서도 중단편 문학의 축제로 오래 기능해온 이 상이 다시 독자들의 큰 지지를 받기를 기대하는 이들이 많다. 대상 수상자 위수정이 책 속에서 나눈 말.
'세계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있는 이들. 사실 그런 이들의 세계가 저는 조금 끔찍하게 느껴져요. 말하자면, 문학이 없는 세계겠지요. 문학이 필요 없는 세상이 아니라, 문학을 필요로 하지 않는 세계라는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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