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 전설에서 강성 우파로 변신…'탄핵 반대' 김문수의 길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 2025-05-03 16:03:04
15~17대 3선 국회의원, 2006~2014년 경기지사
2016년 총선 낙선 후 내리막길…극우화 길 걸어
尹정부서 부활…탄핵 반대로 지지 얻어 대권도전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이 3일 국민의힘 21대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에 반대한 김 후보를 내세워 대선을 치르게 됐다.
김 후보는 그러나 무소속으로 출마한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반이재명 빅텐트' 추진을 공언한 바 있어 '보수 후보 단일화' 시험을 통과하는 게 남은 과제다.
김 후보는 1951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났다. 대구에서 중고교를 마치고 1970년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시절 운동권에 합류한 후 제적, 구속, 수감 생활 등을 겪으며 저명한 노동 운동가가 됐다. 김 후보는 노동 운동을 고민하던 1980년대 대학생들에게 신화적 존재였다. 많은 후배들에게 영웅 대접을 받은 운동권의 전설이자 황태자로 통했다.
노동계 투사였던 김 후보는 김영삼 정부 때인 1994년 갑자기 여당인 민주자유당에 입당하며 세간에 충격을 줬다. 적잖은 이들에게 전설의 전향 또는 타락으로 여겨진 사건이었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경기 부천 소사에 민주자유당 후신인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해 야당 총재 김대중의 측근 박지원을 꺾고 당선됐다. 김대중 정부 때인 2000년 16대 총선,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17대 총선에서도 부천 소사에서 내리 당선되며 3선 국회의원이 됐다.
2000년대 들어 '김대중·노무현 저격수'로 불릴 정도로 정권 공격에 앞장섰다. 2006년 국회의원을 사직하고 한나라당 후보로 경기지사 선거에 출마해 중학교 동창인 열린우리당 진대제 후보를 꺾고 당선됐다.
2010년 지방 선거에서 국민참여당 유시민 후보를 누르고 경기지사 재선에 성공했다. 2014년 경기지사 임기를 마친 김 후보는 7·30 재보선 서울 동작을 출마 요청을 거부했다. 그 대신 새누리당 보수혁신특위 위원장을 맡으며 8년 만에 여의도로 복귀했다.
2015년 김 후보는 다음 총선에서 대구 수성갑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여권의 유력 차기 대선 주자가 서울 동작을은 거부하고 여당 텃밭을 택해 출마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당내에서 나왔지만, 출마를 밀어붙였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대구 수성갑에 출마한 김 후보는 고교 후배인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후보에게 참패했다. 보수의 아성에서 패한 것에 더해 득표율 차이도 커서(김문수 37.7%, 김부겸 62.3%) 정치적으로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듬해인 2018년 자유한국당 후보로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다. 23.34%를 득표하며 바른미래당 안철수 후보(19.55%)는 앞섰지만, 과반을 득표한 더불어민주당 박원순 후보(52.79%)에게 완패하며 낙선했다.
2016년 총선과 2018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연패하며 김 후보는 정치인으로서 기세가 꺾였다. 그러면서 점점 더 극단적인 방향으로 나아갔다.
대다수 국민이 공감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정당성을 거듭 부정했다. 세월호 참사 추모와 관련해 "죽음의 굿판"이라고 비난하는 등 막말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또한 전광훈 목사와 밀착하며 극우 본색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2020년 자유한국당을 탈당하고 전 목사와 함께 자유통일당을 창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권 후보로 거론되던 정치적 위상은 회복되지 않았다. 극단으로 치달을수록 막무가내 '아스팔트 극우' 이미지만 강화될 뿐이었다. 그런 사례가 쌓이면서 정치인으로서 존재감은 희미해지는 듯했다.
그랬던 김 후보가 윤석열 정부 들어 공직을 맡으며 정치적으로 부활했다. 2022년 경제사회노동위원장에 임명된 것에 이어 2024년에는 고용노동부 장관이 됐다. 한때 노동 운동 전설이었다는 경력이 두 공직 임명의 주요 근거 중 하나였다.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후 김 후보는 일제 강점기에 조선인 국적이 일본이었다고 강변했다. "김구 선생은 중국 국적을 가졌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주장하며 논란을 더 키우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등과 관련해 그간 거듭된 막말 논란에 대해서도 사과하지 않았다.
2024년 12월 3일 윤 전 대통령이 갑작스레 비상계엄을 선포해 국가를 혼란에 빠뜨렸지만, 김 후보는 윤 전 대통령 탄핵에 반대했다. 이를 계기로 탄핵 반대층의 주목을 받으면서 지지율이 급상승해 국민의힘의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로 떠올랐다.
계엄 며칠 뒤인 지난해 12월 11일 국회 본회의에서 열린 비상계엄 선포 내란 행위 관련 긴급현안질문에서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이 국무위원들에게 반성과 사과를 요구했는데, 김 후보가 유일하게 불응한 것이 반탄 세력의 지지를 받는 결정적 계기였다. 당시 한덕수 총리 등 국무위원들이 기립해 고개를 숙였으나 김 후보는 끝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탄핵 반대와 그간의 극우 행보로 김 후보의 중도 확장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그런 가운데 4월 4일 헌법재판소가 윤 전 대통령 파면을 선고했다. 지난달 9일 김 후보는 21대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대권 도전을 공식화했다.
KPI뉴스 /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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