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성열의 AI경제] '피지컬 AI'는 제조업 강국 한국에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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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kpinews.kr | 2026-01-22 11:27:20

연초 칼럼에서 세계 전자·정보통신기술의 최신 전시장 미국 소비자 전자쇼(CES)의 올해 테마가 '피지컬 AI'(인공지능)란 소식을 전한 바 있다. 피지컬은 물리법칙이 적용되는 현실세계의 물리적 AI, 형체 없는 소프트웨어가 아닌 팔다리와 몸통이 달린 육체적 AI를 뜻하는 용어임도 설명했다.

 

피지컬 AI의 대표주자이자 선봉장으로 나선 제품이 휴머노이드(로봇), 자율주행자동차, 스마트홈 및 공장이다. CES 2026에서는 AI가 내장된 로봇이 가정과 공장에서 일하고, 자율주행차와 스마트홈은 주인 명령 없이도 알아서 척척 움직이는 성능 과시형 행사가 성황을 이루었다. 

 

이재명 정부가 글로벌 AI 3대 강국이란 국정목표를 제시할 때 여러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분야로 꼽은 게 피지컬 AI이다. 많은 이유가 있지만 두 가지 굵은 배경만 짚어보면 다음과 같다.

 

▲ 피지컬 AI와 한국의 제조업 관련 이미지. [챗GPT 생성]

 

첫째, 주권형(소버린) AI로 불리는 파운데이션 모델 독자 개발은 이미 뒷북치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파운데이션 모델이란 대규모 데이터 사전학습을 통해 다양한 목적으로 폭넓게 쓸 수 있는 AI 기초모델을 뜻한다. 특히, 음성 제어명령(voice interface) 목적으로 쓰이는 대형언어모델(LLM)은 단순한 언어번역이 아니라 지식·언어·추론을 합친 범용 인공지능(AGI)의 인프라에 가깝다. LLM의 바탕에 파운데이션 모델이 있다. 파운데이션 모델이란 용어는 2021년 스탠포드대학 인간중심 인공지능연구소(HAI)에서 처음 만들었지만, 개념은 훨씬 오래전인 1960년대 초기연구 시절부터 나왔다. 통계 기반의 언어모델은 2000년대 신경망 언어모델을 거쳐 2017년 구글의 트랜스포머가 등장하면서 획기적으로 발전했다. 이후 사전학습에 초점을 맞춘 BERT와 GPT 계열 LLM이 등장해 현재에 이르렀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문서를 사전 학습시킬 정도로 많은 돈과 시간이 드는 점이 파운데이션 모델 창조의 어려움이다. 최근 네이버와 NC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선정에서 탈락해 잠시 화제에 올랐다. 과기정통부 주도로 국가대표 AI로 불리는 한국형 파운데이션 모델 육성에 들어갔지만 세계시장을 장악한 빅테크 수준까지 올라갈지는 미지수이다. 세계를 놀라게 한 딥시크는 중국 고유의 LLM에 해당한다. 우리말에 능한 LLM을 만들려면 한국어 데이터를 광범위하게 사전 학습시켜야 한다. 과연 학습에 필요한 양질의 우리 말뭉치(corpus) 데이터와 컴퓨팅 자원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까. 구글이 판치던 인터넷 시절에 우리 고유의 네이버 브라우저가 한국 시장을 지켜냈듯, 한국형 LLM과 파운데이션 모델도 존재 이유는 있다. 하지만 세계 1등이 되긴 어렵다.

피지컬 AI에 집중해야할 두 번째 이유는 한국의 제조업 역량, 특히 세계 1위 메모리 반도체에서 축적해온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생태계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피지컬 AI와 함께 올해 CES를 휩쓴 양대 트렌드가 엣지(Edge) AI 또는 온 디바이스(On Device) AI라고 설명했었다. 피지컬 AI는 기본적으로 엣지 AI를 원칙으로 한다. 외부 현실세계와 상호작용하는 몸통을 갖고 있어서다. 로봇이나 자율주행자동차가 다가오는 사람과 충돌을 피하려면 현장에서 즉각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LLM 파운데이션 모델처럼 멀리 떨어진 데이터센터의 서버로 입력 정보를 보내고, 다시 "피해라"는 출력 명령을 받아 움직이면 이미 늦다. 엣지 AI는 적은 계산 용량과 전기로도 신속하게 상황을 판단해 피지컬 AI의 피지컬(육체)을 움직여야 한다. 그래서 반도체도 LLM의 GPU와 달리, NPU(신경망 반도체)를 쓴다. NPU는 각 피지컬 AI에 특화된 맞춤형 반도체이다. GPU가 어디나 쓸 수 있는 두루뭉술 범용 반도체라면, NPU는 로봇용과 자율주행자동차용이 각각 다르다. 사람의 뇌와 물고기의 뇌가 다르듯, 어떤 육체를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에 따라 반도체 작동이 달라진다.

이뿐 아니다. 피지컬 AI에는 NPU를 도와줄 다른 특수 반도체들도 들어가야 한다. 시각·언어·동작을 통합 처리하는 VLA(Vision-Language-Action), 유연한 회로의 FPGA(Field-Programmable Gate Array) 칩이 바로 그것이다. 프로그램 가능 FPGA는 생산한 다음에도 사용자가 논리회로 구조를 직접 바꿔서 쓰는 반도체를 말한다. VLA는 테슬라의 추론모델형 자율주행에서 두뇌 역할을 하는 반도체다. 피지컬 AI는 또 절전형 전력 반도체, 지능형 센서, 초고성능 방열 소재 등 제조업의 소부장 분야에서 다양한 기술을 요구한다. 우리나라가 반세기 산업화 시절에 갈고 닦은 역량이다.

삼성과 SK의 반도체 우위를 AI 시대에도 이어가려면 대기업의 연구개발뿐 아니라, 소부장 중소기업의 유기적 연계가 절대 요구된다. 미래 반도체를 설계·제작·검증할 테스트베드도 민관이 합동 구축해야 한다. 규모의 경제가 작용하는 파운데이션 모델은 강대국의 각축장이다. 하지만 피지컬 AI는 한국 같은 중소국도 도전할 만하다. 더욱이 조선·화학·자동차 산업에서 경험한 성공 신화가 있다. 대한민국 제조업의 디지털 전환 승부처는 바로 피지컬 AI라고 단언하고 싶다. 

 

▲ 노성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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