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기후위기 경고하다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Jasonyim@kpinews.kr | 2024-09-19 15:37:15
'LIMIT 1.5' 등 잇단 경고 행사...위기는 '내일' 아닌 '오늘'
적잖은 문화예술 창작자들은 현실 문제에 고민하고 집중한다. 사회 이슈를 작품에 담아 관람객에게 뭔가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에서다. 문학, 영화, 음악, 미술, 공연 등 범위도 다양하다.
같은 맥락에서 최근 문화예술계는 기후위기에 주목하고 있다. 추석 연휴까지 이어진 9월 폭염 경보는 근대 기상관측이 시작된 117년 이래 사상 처음이다. 기상청은 아예 종래의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이어지는 사계절 구분도 재조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기후위기는 이제 '투모로우'와 같은 공상과학 영화에 나오는 먼 미래의 일이 아니란 얘기다. 눈앞에 닥친 현실적인 문제다. 기후변화가 날로 심각해지면서 창작자들은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전파하는 데 어느 때보다 적극적이다.
문화예술계는 기후위기를 테마로 한 전시회나 공연을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문화예술이 직면한 현실을 바꾸지는 못한다. 하지만 작가들은 자기 작품을 통해 기후위기에 대한 경고 수위를 높여 대중 관심을 고조하겠다는 궁극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대구 '행복북구문화재단'이 대구 어울아트센터 '갤러리금호'에서 진행하고 있는 'LIMIT 1.5'도 그 일환이다. 신재생에너지기업 '소울에너지'와 협업한 이 행사는 기후위기를 주제로 삼고 있다. 지난달 12일 개막해 오는 21일까지 열린다.
'LIMIT 1.5'란 2015년 파리기후협약에서 '2050년까지 지구의 평균온도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하로 낮추자'는 세계 195개국이 약속한 가이드라인이다. 급상승 중인 지구 온도를 이대로 방치하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초래할 것이란 과학자들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다.
'LIMIT 1.5'는 한 마디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예술로 경고한 미술전으로 정의할 수 있다.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예술을 통해 시각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관람객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는 데 집중했다. 구지은, 민주, 임지혜, 조정현 4명의 작가는 각자의 시선으로 기후변화의 현실과 그로 인한 사회적 변화를 탐구한다. 조정현 작가는 작품 'Zero Island'에서 플라스틱과 스티로폼 등의 일회용품 쓰레기로 가득 찬 섬에 새들이 쓸쓸하게 서 있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작가는 환경 오염과 이상 기후의 심각성을 은유했다.
'LIMIT 1.5'가 기후위기에 대한 미술의 경고라면 오는 5일부터 9일까지 부산에서 열린 '하나뿐인 지구영상제'는 기후변화에 대한 영화인들의 경고를 담고 있다. 특히 이 영화제는 기후위기를 정면으로 다룬 국내 유일의 환경 영화제다. 기후위기가 고조된 상황에 열려 개막식에만 1500여 명의 관계자가 참석했고 전 세계 29개국 41편의 기후 환경 영화가 상영돼 세간의 눈길을 끌었다.
때가 때이니만큼 경쟁 부문에 총 2133편의 작품이 사전에 출품되는 등 전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하나뿐인지구영상제'에서 처음 상영하는 프리미어작품도 총 25편으로 지난해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개막작 다큐멘터러 '히어나우프로젝트'를 제작한 그렉 제이콥스(Greg Jacobs) 감독은 "내레이션도, 흔한 인터뷰도 하나 없이 기후변화가 전 세계의 보통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전례 없는 방식으로 전달하려 했다"고 말했다.
기후 영화제인 만큼 관객과의 대화, 환경전문가 토크 등 영화 대담뿐 아니라 기후변화 콘퍼런스, 그린라이프쇼 등 각종 행사가 마련돼 기후위기와 환경 오염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되돌아보는 기회를 폭넓게 제공했다. '하나뿐인 지구어워드' 대상은 영국 서부 콘월 들판의 아름다운 모습을 섬세하게 묘사하면서도 정부의 양두구육(羊頭狗肉) 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화제가 된 '들판에서의 일년'에게로 돌아갔다.
지난 11일 서울 광화문 광장 놀이마당에서 열린 '기후공명 페스티벌'도 빼놓을 수 없는 행사였다. 이 페스티벌은 '이제는 우리가 기후에 답해야 할 때입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기후위기가 더는 미래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했다.
행사에서는 대중들에게도 친숙한 김문정 음악감독 지휘로 '더엠씨오케스트라'가 뮤지컬 배우 박유겸, 윤지인과 함께 기후 행동 메시지를 담은 기후공명캠페인 노래 "With You (To the Earth)"를 오케스트라로 편곡해 협연했다. 특히 한원석 설치 예술가가 폐스피커 3088개를 활용해 에밀레종을 본 따 만든 '기후공명종'이 함께 울려 퍼져 행사의 의미를 더했다.
앞서 지난달 17일 열렸던 기후위기를 다룬 이색적인 예술 공연도 대중들의 큰 관심을 모았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에 오른 국제협력 신작 무용 공연 '숨공장'이 그것이다. 현대무용에 라이브 연주가 더해진 '숨공장'은 '당면한 기후위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공연은 도시문화가 토한 기후위기 문제를 짚어내고 문제의 원인이자 가해자인 인간이 곧 피해자가 되는 현실을 예술로 승화했다. 작품 내용과 형식 외에도 무대 장치 간소화, 공연 제작 과정 등에서 환경보호를 실천하며 예술이 기후위기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적극적인 방법을 모색했다.
문화예술 창작자들은 늘 시대 상황에 맞춰 그들만의 언어로 사회 참여를 일삼아왔다. 예술은 정답이 없는 창작물이다. 하지만 그것을 감상하는 관객의 자의적 해석과 생각은 여러 해답을 찾아내곤 한다. 그것이 예술장이 펼쳐지는 이유다.
문화예술 창작자들의 역할은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어내고, 그 관심들을 모아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원동력을 만드는 것이다.
20년 전인 2004년 기후위기를 다룬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재난영화 '투모로우'의 원제는 '모레(The day after tomorrow)'다. 투모로우의 작가와 감독은 당시 기후위기를 '모레'쯤 일어날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모레'는 이제 '오늘'이 됐다. 인류가 빚어낸 기후변화로 인해 허구보다 더 황당한 일이 빈발하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그럴수록 예술의 경고는 앞으로 더욱 잦아질 것으로 보인다.
KPI뉴스 /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Jasonyim@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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