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금융위기와 김혜수 그리고 주혜란 여사

류영현 기자

ryu@kpinews.kr | 2018-11-26 11:02:09

흰 밍크코트 입고 나타난 주혜란 여사와
낡고 헤진 트렌치코트 차림의 캉드쉬 IMF 총재
묘한 대조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 류영현 총괄본부장

최근 개봉을 앞둔 '국가부도의 날'이라는 영화 예고편을 봤다. 1997년에 맞닥뜨린 국가부도 사태을 앞둔 시점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김혜수)이 곧 엄청난 경제 위기가 닥칠 것을 예견하고 행동하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는 정부가 뒤늦게 국가부도 사태를 막기 위한 비공개 대책팀에 들어가 활동한다.

그런가 하면 위기를 감지하고 과감히 사표를 던진 금융맨 '윤정학'(유아인)은 국가부도의 위기에 투자하는 역배팅을 결심하고 투자자를 모으기 시작한다.

이런 상황을 알 리 없는 작은 공장의 사장이자 평범한 가장인 '갑수'(허준호)는 대형 백화점과의 어음 거래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다. 그는 잠시 소박한 행복을 꿈꾸며 만족해한다. 여기까지가 영화 '국가부도의 날' 내용이다.

극중의 한시현을 보고 있노라니 문득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다. 임창렬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의 부인 주혜란 여사다. 김혜수에 버금가는 미모(?)였던 그는 당시 TV에 자주 얼굴을 내밀어 대중에게 인기가 있었다.

그를 처음 맞닥뜨린 것은 1997년 12월 3일로 기억된다. 이른 아침 김포공항 국제선 의전실에는 미셸 캉드쉬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의 입국을 보기 위해 많은 기자가 진을 치고 있었다.

캉드쉬 총재가 도착할 무렵 임 부총리와 주 여사가 모습을 나타냈다. 그는 캉드쉬 총재에게 다가가 서양식 인사와 함께 꽃다발을 건넸다. 눈보다 흰 밍크코트를 입은 주 여사와 헤진 트렌치코트에 낡은 옷가방을 어깨에 메고 들어선 캉드쉬의 모습은 묘한 대조를 이뤘다.

임 부총리 내외와 캉드쉬 총재와 승용차를 나눠타고 서울 시내로 향했다. 취재진이 캉드쉬 총재가 탄 차량을 뒤쫓아 간 곳은 남산에 있는 힐튼호텔이었다. 이곳 19층에서는 한국과 IMF가 구제금융을 놓고 협상을 벌였다.

임 부총리와 캉드쉬 총재는 이날 오후 언론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임 부총리는 IMF 긴급 자금지원을 받기 위한 최종 협상을 끝내고 이날 오후 7시 30분 정부 제1 종합청사에서 의향서를 미셸 캉드쉬 총재에게 전달했다.

사실 이때 까지만 해도 IMF 구제금융이 가정을 지탱해주던 직장을 하루아침에 사라지게 하고, 심지어 사랑하던 가족과 생이별을 해야 하는 혹독한 생활고를 가져오리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외국계 투기기업에 넘어간 제일은행 직원들이 정든 직장을 떠나며 남긴 '눈물의 비디오'를 보면서 온 국민이 눈시울을 적시게 되리라는 것도 알지 못했다.

이때부터 임 부총리가 임기를 마치고 민선 경기지사를 역임하고 정계를 떠날 때까지, 주 여사의 모습이 불쑥불쑥 떠오르곤 했다.

주 여사가 입던 밍크코트는 분수에 맞지 않는 사치이고, 캉드쉬의 낡은 트렌치코트는 본받아야 할 근검한 생활이라 여겼었다.

한국 경제가 내년에는 더 어려울 것이라고 한다. 경제성장은 갈수록 둔화되고, 청년실업률은 IMF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이다. 그래도 밍크코트와 주 여사에 대한 불편한 기억을 이제는 내려놓고 싶다.

 

KPI뉴스 / 류영현 총괄본부장 ryu@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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