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PF위기 '괜찮다'는 정책당국, 마냥 믿어도 될까

유충현 기자

babybug@kpinews.kr | 2023-12-29 12:01:19

부동산 PF 연쇄부실 우려 확산…2011년 '저축은행 사태' 오버랩
'위기 확대는 없다'는 금융당국과 한국은행…'안일한 인식' 비판도

소문은 사실이었다. 1군 건설사 태영건설이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작업)을 신청했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을 제대로 갚지 못해서다.

 

워크아웃은 부도로 쓰러질 위기에 처한 기업 중 회생시킬 가치가 있는 대상을 살려내는 작업이다. 태영건설이 회생할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지만 '부도로 쓰러질 위기에 처해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불과 열흘 전만해도 태영건설은 워크아웃 가능성을 강하게 부정했다. 두어달 전쯤, 이른바 'A건설사 풍문'이 시장이 돌았을 때는 '법적 대응'을 운운하면서까지 발끈했다. 채무는 감당 가능한 수준이며 자금조달도 잘 이뤄지고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결과적으로 소문이 옳았다. 소문을 믿은 투자자는 손실을 피했고 태영건설을 믿은 투자자는 그러지 못했다.

 

더 큰 우려는 태영건설 한 곳의 위기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시장에서는 "태영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몇몇 건설사가 다음 순번으로 거론된다. 건설·금융 부문의 위기로 급속히 전이될 것이라는 걱정이 팽배하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서 2011년 '저축은행 사태'를 떠올리는 이가 적지 않다. 

 

신용평가사들은 부동산 PF와 연관이 있는 업종의 전망을 낮춰잡고 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29일 "부동산 PF 위기는 아직 정점에 도달하지 않았다"며 "본격적으로 문제가 터지는 것은 내년 상반기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런데 시장에 긴장감이 흐르는 것과 달리 정책입안자들은 현 상황을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이다. '태영건설 워크아웃을 전체 건설업계 문제로 보기 어렵고, 다른 건설사의 부동산 PF에서 추가로 큰 부실이 발생하진 않을 것'이라는 낙관적 평가가 금융당국 발(發)로 들려온다. 한국은행도 전날 브리핑에서 '현 부동산 PF 문제가 2011년 저축은행 사태와는 다르기 때문에 금융시장 전반의 위기로 확대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거들었다. 

 

하지만 지금 안심할 만한 상황이 아니다. 올해 6월 말 기준 금융권의 부동산 PF 대출잔액은 총 133조1000억 원에 달한다. 이 중 증권사가 행한 부동산 PF의 연체율은 무려 17.28%였다. 저축은행(4.61%)과 여신전문금융회사(3.89%)도 높은 편이다. 

 

PF 문제에 대한 관리당국의 인식이 안일하다는 지적은 꾸준히 있었다. 부동산 PF가 한국 경제의 '화약고'가 될 것이라는 우려는 작년부터 나왔지만, 정부는 각종 지원책과 만기연장으로 상황을 틀어막는 데만 집중했다. 필요한 구조조정이 미뤄지는 사이 PF 연체율과 부실규모는 점점 커졌다. 시장경제 원칙에서 벗어난 지원책으로 발생한 '도덕적 해이'는 덤이다. 

 

정부와 시장 사이에 위기상황에 대한 인식 공유가 필요해 보이는 시점이다. 물론 정부는 '위기'라고 언급하는 순간, 경제심리에 부정적 영향을 끼쳐 진짜 위기가 올까 우려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문제가 없어 보인다'는 정도의 언급으로는 오히려 시장의 불안감을 더 키울 수 있다. 

 

우리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던 1997년, 환란 발발 직전까지도 정부는 '펀더멘털(기초체력)은 이상이 없다'고 입버릇처럼 강조했다. 대외신인도를 유지하기 위해서였다지만, 여러 경고음을 묵살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 결과 국민들은 제대로 된 준비 없이 국가 부도라는 최악의 사태를 맞았다.

 

▲ 유충현 경제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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