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성열의 AI경제] 대한민국의 인공지능(AI) 철학은 무엇인가
KPI뉴스
go@kpinews.kr | 2026-01-29 10:58:36
인공지능 철학 시대가 활짝 열렸다. 인간만큼, 혹은 더 우수한 지능기계가 노트북과 스마트폰에서 우리와 대화하던 수준을 넘어 자동차, 가전제품, 로봇 속으로 들어와 몸을 가진 피지컬 AI 동료(companion)로서 일하는 장면이 내년쯤 현실화할 전망이기 때문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는 올해 미국 라스베이거스 소비자 전자쇼(CES) 초청 대담에서 "늦어도 2027년 말까지 우리 직장과 가정에서 AI 로봇과 함께 지내게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AI는 망치나 칼처럼 수동적인 도구가 아니라, 인간과 함께 생각하고 실행하며 개선을 고민하는 행위자(agent)로서 현실세계에 갑자기 등장하게 됐다. 이 파트너는 집에서 키우는 반려동물과는 다르다. 강아지와 고양이는 영적인 단짝이지만 인간과 동등한 눈높이에서 교류할 순 없다. 하지만 AI 파트너는 때론 인간을 이끌고, 흔히 한 팀이 되어 동등하게 역할을 분담할 것이다. 법적·제도적 인격 부여와 준수 의무가 생기기 전에 먼저 윤리적·철학적 정의와 위상 정립이 필요하게 된다.
특히, 한국 정부는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한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AI 기본법) 을 통해 세계에서 처음으로 포괄적 AI 법제도를 전면 시행했다. 이 법은 단순한 가이드라인이 아니라, AI 기술 발전과 신뢰 확보를 동시에 제도화한 기본법적 성격의 법률로서, 국가 차원의 AI 정책 방향 설정, 산업 육성 기반 마련, 그리고 고위험·생성형 AI의 안전·투명성 확보와 같은 구체적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예컨대 AI 서비스 제공자는 사용자에게 자동화된 결정을 AI가 내린다는 사실을 명확히 고지해야 하고, 생성 AI가 만들어낸 콘텐츠에는 워터마크 등 표시를 부착하도록 의무화했다. 또 의료, 교육, 금융처럼 인간의 생명과 권리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고위험 분야에서는 인간 감시 체계와 위험 관리 조치를 갖춰야 한다는 조항도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법적 장치는 기술 혁신을 장려하는 동시에, 국민의 안전과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신뢰 기반'을 마련하려는 시도다.
이런 점에서 지난 21일 대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AIST) 본원 학술문화관에서 열린 'KAIST AI철학 연구센터 개소 기념 국제 심포지엄'은 여러모로 의미 깊은 행사였다. '문명의 전환과 철학의 과제'를 주제로 열린 심포지엄에는 야스오 데구치 일본 교토(京都)대 문과대학원 철학과 학장 겸 교토철학연구소장이 원격으로 기조강연을 하고, 이광형 KAIST 총장의 '휴머니즘 2.0' 강의와 박성필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의 '포스트-AI-Robotics 시대, KAIST의 전략' 발표가 이어졌다.
야스오 소장은 '다층 가치사회를 향하여(Towards a Multilayered Society of Values)'란 제목의 기조연설에서 인간은 본질적으로 단독 행위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전제로 '나(I)'로부터 '우리(WE)'로의 인식 전환을 역설했다. 그는 '인간–AI 관계'를 '지배–종속 구조'로 이해하는 기존 관점을 비판하면서, 인간·비인간·인공물을 포괄하는 최소 권리 개념을 제시함으로써 이들 사이 관계를 재정립하는 공존 및 기술의 설계 모델을 제안했다.
이어 연사로 나선 이광형 KAIST 총장은 AI, 로보틱스,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유전공학 발전에 따라 인간과 기계 간 경계가 새롭게 설정되는 시대의 사상으로서 '휴머니즘 2.0'을 제시했다. 이 총장에 따르면 인류는 인간과 유사하거나 그 이상의 지능을 가진 AI와 로봇이란 새로운 존재를 마주하게 됐다. 이 총장은 "로봇이 일하는 시대에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이미 시작됐다"며 이러한 변화는 향후 10~30년 안에 현실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휴머니즘 2.0은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는 관점에서 벗어나, 인간의 존엄과 창의성을 중심으로 기술이 인간의 역량과 가능성을 확장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만을 중심에 둔 기존 질서에서 벗어나, AI와 로봇이 참여하는 새로운 사회 질서를 미리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총장은 "KAIST는 도구를 만드는 대학이지만, 도구가 사상을 지배하지 않도록 통제하는 힘을 함께 갖춰야 한다"며 "그래야 충돌이 아닌 공존의 전환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박성필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은 "인간 중심의 AI 설계와 활용을 위해 기술에 대한 단순한 이해를 넘어 철학적 성찰력을 갖춘 인재가 필요하다"며, 올해 AI 대학원에 'AI 시대의 법·윤리·철학' 과목을 세계 최초로 전공 필수로 신설하며 실제적인 교육 혁신에 나섰다고 밝혔다. 이 과목은 AI의 개념적 기초, 인간·기계 관계, 책임·의미·비전 등 철학적 핵심 쟁점을 다루는 KAIST AI대학 필수 교과목으로 설계됐다. AI철학 교육을 통해 기술 개발과정에서 요구되는 비판적 사고와 규범적 판단 역량을 강화하고, 인간 중심의 AI 설계와 활용을 위한 학문적인 토대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이날 주된 강연자로는 니콜라스 장 리 연세대 언더우드국제대학 철학과 석좌교수가 '체화(體化)된 범용인공지능 시대의 인간성'를 주제로, 김혜영 파리고등사범 후설아카이브 연구원이 '왜 인공지능은 철학이 필요한가: 기술 시대의 이해에 관한 이해'를 주제로 열변을 토했다. 장 리 교수는 AI와 로보틱스의 결합을 통해 물리적 환경에서 작동하는 체화 AI가 출현하면서 기술적·사회적 영향력이 큰 새로운 국면을 형성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인간의 전반적 인지 능력을 포괄하거나 이를 뛰어넘는 범용 인공지능(AGI)과 체화 기술의 결합은 기존의 인간 능력, 역할,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또 김혜영 연구원은 AI 시대의 대안으로 사고 능력을 중심에 둔 교육 전환을 제시하며, 개인중심주의를 탈피해 사회관계를 통해 인간과 기계의 공존을 새롭게 사유하는 철학적 전환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발표했다. 김 연구원은 "기술을 다루는 능력보다 세계를 해석하고 의미를 판단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지는 만큼, 철학은 선택 교양이 아니라 모든 전공의 사고훈련 기반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AI 개발은 '이해' 개념에 대한 철학적 성찰 없이는 충분히 설명되거나 규범화될 수 없다면서, 현대 AI 담론을 지배하는 의식 및 주체성 개념을 비판했다.
이날 심포지엄의 마무리는 초청자인 김동우 KAIST AI철학 연구센터장의 '포스트 AI·로보틱스 시대, 철학의 역할' 강연이었다. 김 센터장은 Agent AI와 로봇의 등장에 따라 역설적으로 인간 자신은 점차 행위자성(性)을 잃고 있다며, 포스트-인공지능·로보틱스 시대 철학의 역할은 인간이 스스로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고 추구할 수 있는 정신적인 토대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인류가 기존의 기술적 문제를 넘어 인간 의미와 목적에 관한 세계적 차원의 도전들에 직면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도전 앞에서 철학은 인간의 삶과 사회의 방향을 규범적으로 성찰하고, 기술 발전이 지향해야 할 인간적 의미와 목적을 개념적으로 정식화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센터장은 "우리는 그동안 기술을 따라가기에 급급했지만, 이제는 이것이 인류의 미래라고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과학자들에게 필요한 것이 철학적 사고"라는 말로 강연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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