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인' 거리의 투사로 내몬 지방소멸사업의 역설…함양군 가보니

최재호 기자

choijh1992@kpinews.kr | 2024-05-27 11:39:56

[인터뷰] 신종권 대광마을 주민대책위원장
도청 지방소멸기금 사업에 함양사계포유 선정
지리산 깎아 인공정원 조성…'선심행정' 비판 커
주민과 소통도 안해, "원주민 쫓고 이주민 받나"

"1인 시위에 서명작업, 기자회견, 현수막 걸기…농부의 생명줄 끊으려는 행정에 맞서, 미지의 세계에 발을 내디뎠습니다."

 

▲ 함양사계포유 사업 예정지 중심 대광마을주민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신종권 씨가 집 바로 밑에 자리잡을 지방정원 부지를 가리키며 사업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최재호 기자]

 

경남 함양군 병곡면의 산 중턱에 삶의 터전을 잡고 살던 일흔 즈음 귀촌 부부가 최근 지인들에게 페이스북을 개설했다며 보낸 첫 문장이다. 1980년대부터 부산지역 학교민주화 운동에 깊숙이 참여했던 고교 해직교사 출신인 신종권(70) 씨. 한때 부산지역에서 운동권 인사로 꽤나 알려졌던 그가 2000년대 초반 도회지 생활을 청산하고 지인들과 소식을 끊은 지 십여 년 만에 다시 SNS 활동을 재개한 것 자체가 주변인들 사이에 화제를 낳았다.

그의 아내 또한 중학교 교사 출신으로, 부부는 인생 황혼기를 보낼 산촌을 물색한 끝에 지난 2007년 함양 병곡면 광평리 산자락에 아담한 집을 마련하고 두 식구가 먹을 만큼의 농산물을 재배할 수 있는 텃밭을 일구며 소박한 일상을 꾸려왔다.

그런 부부가 올들어 함양군청 앞에서 마을 사람들과 어깨를 겯고 목청을 돋워가며 군청의 개발 행정에 맞선 투사로 변했다. "다섯 달째다. 엉터리 행정 때문에 안 내도 될 화를 내고, 몸싸움하고…생각할수록 기막힌 일이다. 주민의 생존권을 보호해야 할 군청이, 군수가 위임받은 권력을 악용해 주민의 생명줄을 끊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신종권 씨 페북글)

일반인들에게는 '깡촌'으로 받아들여질 만한 함양 병곡면의 조용하던 산촌마을에 무슨 일이 있길래, 이런 소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지난해 11월 지방소멸기금 사업에 '함양사계포유' 선정
캠핑장·스마트팜·지방정원…민자 포함하면 1000억 규모

 

▲ 대광마을 앞에 내걸린 현수막 [최재호 기자]

 

취재진이 지난 주말 통영∼대전 고속도로 지곡 IC를 지나 20분가량 걸려 현장을 찾아가는 도로 곳곳에는 '원주민 몰아내는 개발 중단' '난개발 결사반대' 등의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다. 백두대간 지리산과 덕유산이 아늑하게 감싸주는 함양지방은 해발 1000m가 넘는 산이 무려 15개에 이르지만, 논쟁의 중심에 있는 병곡면 개발 예정지는 500m 안팎 고즈넉한 산자락에 자리잡고 있었다.

개발 예정지는 병곡면 광평리 일원 98만㎡(29만6450평·축구장 42개 크기)로, 부지 중심에 위치한 대광마을에는 예부터 살던 원주민 15세대와 함께 귀촌 4세대 등 19세대가 살고 있다. 광평리 일원 농지와 산지 일원 지주 상당수는 외지인으로 알려져 있다.

함양군은 지난해 11월 도청이 공모한 '경남 활력 온' 프로젝트에 '함양사계 4U' 사업이 최종 선정돼 지방소멸기금 213억 원(경남도-함양군 106억5000만원 절반씩 부담)을 확보했다. '경남 활력 온' 사업은 경남도가 지방소멸대응 광역기금을 인구감소지역에 배분하기 위한 프로젝트로, 2027년까지 복합캠핑장과 스마트팜 등을 통한 방문객 유입 효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함양군은 여기에 자체 예산 90억 원을 더해 지방정원을 조성할 방침이다. 상주 인구를 유인하기 위해 렌탈하우스(50세대)와 분양주택(50세대) 건립도 추진한다. 지방소멸기금 등 지자체 예산 303억에 민간 유치자금까지 합하면 전체 사업비는 1000억 원을 훌쩍 넘어서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2촌5도'(이틀은 농촌, 닷새는 도시)라는 라이프 트렌드에 편승해 절박한 인구 절벽 현상을 완화해 보겠다는 프로젝트인데, 문제는 엄청난 예산을 들여 청정 지리산 자락을 깎아내는 환경 파괴의 핵심 결과물이 인공 정원이라는 점에서 과연 실효성이 있느냐는 점이다.이 자체만으로 토목사업을 통한 선심행정이라는 논란이 벌어질 판에 소통 부재로 인해 기존 마을의 주민들을 거리의 투사로 만드는 꼴이 됐다.

함양군은 지난해 11월초 경남도로부터 사업 선정 통보를 받기에 앞서 해당 지역주민들에게 사전에는 물론 주민설명회 개최 이전까지 개발 계획 자체를 통보하지 않아, 일방 행정의 구태를 보여줬다.

 

함양군이 당초 계획에 포함됐던 18홀 규모 대중골프장 조성안을 철회하고 뒤늦게 주민 설득에 나서며 2월 8일 주민설명회를 열었지만, 개발 중심지 마을 주민은 이를 보이콧하고 강경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곳 마을 주민들은 개발반대대책위원회를 꾸려 군청 앞 등지에서 반대 집회를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전남과 경남지역 환경단체와 연계, 함양난개발반대대책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조직력을 키우며 환경 전반에 걸친 연대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다.

 

현지주민들 의견 수렴 없이 사업 진행해 반발 자초
"원주민 몰아내고 이주민 받겠다는 기상천외 발상"


▲ 대광마을 주민들이 함양군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는 모습 [대광마을 주민대책위원회 제공]

 

취재진은 지방정원이 들어설 부지 주변부에 집터와 텃밭을 소유하고 있는 신종권 씨의 댁을 방문해 현지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주민 반발 여론이 거센데, 개발에 따른 혜택도 기대해 볼 만하지 않나.

"귀농귀촌인이 뭔 개발 혜택을 바라겠나. 올초에 갑자기 주민설명회에 나오라는 통보를 받고서야 주민들이 개발사업을 듣고 뒤집어졌다. 마을이 개발되면 논과 밭이 사라져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된다. 농부에게 논밭은 생명줄인데, 원주민을 쫓아내고, 1000억이나 들여 주말 이촌오도 외지인 유입을 기획한다는 게 가당한 일인가?"


신종권 씨는 현재 대광마을 주민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가 2007년 이곳에 자리잡은 이후 부산지역에 살던 교직 은퇴 지인 몇몇 가족도 병곡면 일원에 귀촌했다고 한다. 자신에 의지해 함양에 주소지를 둔 숫자만 10여 명인데, 인구 증가를 빌미로 토목사업가를 배불리는 엄청난 선심 행정을 펼친다며 혀를 찼다.

-군청이 사업을 자진 철회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주민들의 의견을 경청하겠다는데…

"경남도에 제출한 공모 제안서 자체가 사실과 다른 내용을 담고 있는 엉터리로, 원천 무효다. 주택 사업지가 서북향인데도 남향이라고 표기해 놓고, 고도가 400m인데도 800m라고 속였다. 토목 사업으로 귀농 귀촌을 위한 사업을 하겠다는 발상은 원주민을 몰아내고 이주민을 받겠다는 이율배반이다"


-군청은 마을기업으로 사업을 구상하고 있는데, 보상 협의는 진행되고 있나.


"함양군의 지방소멸 대응 방식이라면, 전국에 '귀촌귀농 난민'이 생길 법하다. 끝까지 투쟁할 것이다. '함양사계포유' 앞날을 예견할 수 있는 좋은 사례가 '함양의 랜드마크'라고 홍보하고 있는 대봉산휴양밸리다. 10년에 걸쳐 1000억 원이 투입된 사업이지만, 운영 첫해부터 10억 이상씩 적자가 나고 있다. 천혜의 자연 경관만 해치고 나중에는 폐허로 남겠지만, 그때는 누구도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신종권 씨 집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이름난 비건 빵집도 군청의 최우선 이전 협의 대상이다. 귀촌 청년이 운영하는 이 빵집은 '도하비건베이커리'라는 이름을 내걸고 동물성 재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빵을 만들어 팔면서 산골 빵집의 위대한 탄생을 알렸지만 4년 만에 사업지를 접어야 할 판이다.

 

주민들의 극력 반발에도 함양군은 올해 안에 세부적인 개발 계획을 수립한 뒤 연차 계획으로 사업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우선 1차로 핵심 부지에 대한 매입 절차를 밟고 있는 상태로, 지방정원의 경우는 산림청이 최종 허가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함양군 관계자는 현장 취재 이후 기자와의 통화에서 "함양사계포유 사업은 (원칙적으로) 마을을 확장하는 개념으로 생각하면 된다. 기금 사업은 마을기업을 설립해 운영될 예정"이라면서 주민과 적극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KPI뉴스 / 최재호 기자 choijh1992@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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