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태량 작, 헤르메스의 발뺌 2025, oil and charcoal on canvas, 380x210cm [작가 제공] 24일 찾은 전시관은 평범한 여느 갤러리와는 확연히 달랐다. 수십 년 전 일류 목공이 세웠을 높은 나무 트러스 천장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전시관 관람 경험이 있는 관객이라면 '웬만한 작품은 기세에 눌려 들이기도 힘들겠다'는 생각을 할 법한 공간이었다. 바닥엔 수 미터 캔버스 천이 깔려 있었다. 붓, 물감통, 목탄, 작업복, 장갑 같은 미술도구들은 이미 그와 격정의 여러 굿판을 벌였는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한편에 쌓인 수십 권의 작가 노트엔 메모들이 빼곡했다. 예술혼을 지피려 지새운 셀 수 없는 날들의 흔적들일 테다. | ▲ 이태량 작, 헤르메스의 발뺌 2025, oil and charcoal on canvas, 275x150cm [작가 제공] 이태량의 작품 세계는 여러 시기를 거치며 변모했다. 첫 전시를 연 1995년부터 여러 해 물리적 특질의 시기를, 2016년까지는 사물과 사실의 시기를, 현재까지는 '무경 연작 시기'와 '명제형식 연작 시기'를 거쳐왔다. 초기엔 나무나 철판, 고서적, 활자 등 다양한 오브제를 콜라주한 작품을, 나중엔 여행 기록이나 앤디 워홀 등을 소재로 한 동시대 문화를 기록하는 듯한 양상을 보였다. '경계가 없다'는 뜻을 지닌 '무경' 연작 시기에 들어서자, 그는 동양화와 서양화, 전통과 현대, 실재와 허구, 구상과 추상 등 있을 법한 산수화를 그려냈다. 수년 전부터 시작한 '명제형식'은 이제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명제형식은 독일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이 던진 "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해야 한다"는 명제와 연결된다. 알 수 없는 문자, 숫자와 도형이 낙서처럼 더해진 그의 명제형식 추상은 사실 그 의미를 꿰기 어렵다. 역설적으로 그의 명제형식은 예술만이 '말할 수 없는 것을 담을 수 있다'라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무거운 철학 주제를 미술에 끌어들인 셈인데, 강력한 색상, 즉흥적으로 그려진 여러 형태가 묘한 마력을 뿜어낸다. 더러 욕망의 찌꺼기를 배설한 듯한 작품들은 호불호가 갈리기도 한다. | ▲ 이태량 작, 헤르메스의 발뺌 2025, oil and charcoal on Paper, 55x39.5cm [작가 제공] 이번 전시 작품들은 그의 기존 화풍을 그대로 따르고 있지만 한결 간결해졌다. 색도 흑과 백 두 가지만 사용했다. 붓이 더 가벼워져 자유스럽고 거침이 없다. 이번 전시에서 그가 '명제형식' 같은 무거운 철학적 주제를 내려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들이 여전히 모호한 것은 마찬가지다. 전시의 타이틀인 '헤르메스의 발뺌'을 보면 대략 그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헤르메스는 그리스 신화 속 전령의 신, 즉 메신저다. 날개 달린 신발을 신고 하늘과 땅을 자유롭게 오가며 명령이나 소식을 전한다. 말하자면 작가 자신이나 작품들은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는 메신저나 도구로 읽힐 수 있다. 그런 존재가 '발뺌'한다고 하니 이는 아마도 드러난 작품을 어떻게 해석하든 '난 모른다'는 것일까. 그는 "새롭게 나오는 작품들도 관객에게 치유의 에너지로 남길 바란다"는 이야기만 했다. | ▲ 전시현장에서 작업하고 있는 화가 이태량 [작가 제공] 이태량은 자기 작품 세계에 대해 설명을 많이 하지도, 잘하지도 못한다. 그저 인터뷰 말미에 "그림은 말로 할 수 없는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림을 구태여 설명할 필요가 있느냐"는 말로 들렸다. ''말할 수 없는 것조차 담을 수 있는 게 그림'이라는 말일 수도 있을 테고. '헤르메스의 발뺌' 전에서 이분법적 사고는 내려놔야 했다. 명확히 잡히지 않았지만 '무언가 있는 듯한' 느낌이 강렬하게 남았다. 경북 칠곡에서 열리고 있는 '헤르메틱 회화의 여정: 이태량의 30년'은 이달 29까지, 서울 디휘테갤러리의 '헤르메스의 발뺌'는 다음달 13일까지 이어진다. KPI뉴스 /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Jasonyim@kpinews.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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