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네틱아트'를 아시나요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Jasonyim@kpinews.kr | 2024-09-02 15:31:07

뒤샹 씨뿌리고 칼더 꽃피운 21세기 '신아방가르드'
4차산업혁명 기술과 만나 '무한대 진화' 가능성 열려
최우람 등 한국 작가들 세계 미술계 문 두드려

"요즘은 그림이나 조각 말고도 다양한 장르가 있는 것 같아요. 특히 디지털과 결합한 동적인 작품들이 많은데 어떤 장르인지 궁금하네요." 

 

한 독자가 메일로 질문을 던졌다. 전통적인 미술 분야를 넘어서 다양한 형식의 예술작품들이 여기저기 넘쳐난다. 호기심 많은 독자는 여러 궁금증이 생기기 마련이다. 독자의 질문에 답한다면 '키네틱 아트'가 그중 하나라고 소개하고 싶다.

 

▲ 간송미술관의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 IMMERSIVE_K '구름이 걷히니 달이 비치고 바람 부니 별이 빛난다' 출품작. 내년 4월30일까지 서울 동대문구 DDP에서 연다. [DDP]

 

기술과 만난 예술은 때론 전혀 생각지 못한 의외의 것을 내놓는다. '움직이는 미술'이란 별칭으로 알려진 '키네틱 아트(Kinetic Art)'가 대표적이다. 여러 신진작가가 시도하고 있지만 이 장르는 여전히 비주류다. 한국 '미술시즌'의 가장 큰 장인 키아프, 프리즈 등 대규모 아트페어서조차 소외당하는 이유다.

이 장르는 어떻게 시작했을까. 모든 새로운 장르는 선구자적 아티스트의 야무진 도전정신과 끝없는 상상력으로 시작한다. '키네틱 아트'도 다르지 않다. 선구자적인 누군가가 있었다. 그러기에 주류는 아니더라도 현대 설치미술의 한자리를 꿰찰 수 있었다.

▲ 뒤샹의 자전거 (1913)

 

'키네틱 아트'는 물리학의 운동량을 나타내는 '키네틱에너지(Kinetic energy)'와 미술의 아트(Art)를 결합한 합성어다. 말 그대로 움직임을 본질로 삼는다는 얘기다. 이런 이유로 키네틱 아트는 '미술은 정적'이란 고정 관념을 깨고 새로운 미술사를 열었다. 용어조차 생경하지만 키네틱 아트의 역사는 의외로 길다. 시발을 찾으면 한 세기가 훌쩍 넘는 20세기 초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작가로 꼽으면 평범한 소변기 '샘'을 세상에 내놔 미술사의 대혁명을 일으킨 마르셀 뒤샹(Alexander Calder)이다. 그는 1913년에 자전거 바퀴를 이용한 파격적인 작품을 전시하며 이 장르의 씨앗을 뿌렸다. 자전거 바퀴 하나 뭐 특별할 게 없어 보이는 작품이지만, 관객이 손으로 직접 바퀴를 움직일 수 있게 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당시엔 충격이었다. 이 작품은 동적 작품의 등단뿐만 아니라 일방적인 관람을 요구하는 전통적인 전시의 관례를 깨고 관객과 소통의 장을 열었다는 점에서 향후 세계 미술계가 거칠 새로운 담론을 끄집어내는 데 역사적인 역할을 했다.

뒤샹이 씨앗을 뿌렸다면 꽃을 피운 이는 미국 조각가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다. 칼더는 '모빌'이라고 불리는 예술작품을 창시했다. 그를 키네틱 아트의 대표 거장으로 부르는 이유다. 화가인 어머니와 조각가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했으니 그는 애초에 키네틱 아트를 짊어질 운명을 타고난 셈이다. 작고하기 8년 전인 1968년 발표한 그의 문어 형태의 야외조형물 'Untitled'는 2005년 11월 11월 뉴욕 '크리스티경매'에서 580만 달러에 낙찰되며 키네틱 아트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현재는 환경 아티스트로 주목받고 있는 '테오 얀센(Theo Jansen)'이 큰 맥을 잇고 있다.

위기도 있었다. 물리 세계에서 운동성을 강조한 아날로그적 형식을 표방한 이 장르는 디지털 세계의 도래로 한때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디지털을 대표하는 컴퓨터 기술은 '디지털 키네틱 아트'를 출현시키며 이 장르를 역사의 뒷방에 갇히는 걸 거부했다. 바야흐로 '디지털 키네틱' 시대가 돌입한 셈이다. 특히 광범위한 사용자 개입을 허용하는 '인터랙티브 아트'의 특성과 결합한 이 장르는 더 풍부한 '시대정신'을 품기 시작했다.

▲ 최우람, 작은 방주, 2022, 폐종이박스, 금속 재료, 기계 장치, 전자 장치 (CPU 보드, 모터), 210 x 230 x 1272 cm. [뉴시스]

 

이런 신예술분야엔 IT강국 대한민국 신진작가들이 실력을 발휘한 좋은 마당이다. 국내에선 우선 작가 '최우람'이 대표적이다. 최 작가는 금속 재료와 LED같은 발광체를 사용해 정교한 움직임을 가진 기계 생물체를 창조해냈다. 대략적인 줄거리를 만들고 컴퓨터의 작은 부품들까지 설계한다. 협업작가들이 재료를 다듬고 조립하고 엔지니어가 CPU를 장착하면 작품은 완성된다. 길게 2년까지 걸린다고 하니 말 그대로 '대하드라마급'이다. 개발자·공학자·과학자 등과 협업하는 작가 '정승'은 식물의 성장 과정을 데이터로 수집한 후 이를 시각, 청각 등을 표방한 독특한 예술작품을 창조한다. 작가 '호두'는 '뇌파와 AI의 결합'이라는 주제로 실시간 취합한 뇌파 데이터와 저장된 뇌파 데이터를 사용해 이를 사운드, 미디어, 키네틱 아트로 풀어낸다.

과학과 예술의 이런 절묘한 결합은 앞으로 더 큰 변화를 거칠 것이다. 양자컴퓨터 같은 가공할 만한 계산 능력에 추론력까지 갖춘 문명의 이기 때문이다. 인간과 소통하고 교감하는 거대 AI를 필두로 환경변화에 따라 스스로 행동하는 자율주행, 기계를 유무선 통신 네트워크에 연동한 초연결형 IoT(사물인터넷), 3차원 공간에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홀로그램 등 각종 4차산업혁명 기술의 등장도 키네틱 아트의 '기술적 한계'를 어디까지 확장할지 모른다. 또 누구도 예단할 수 없다.

▲ '훈민정음 해례본' 미디어아트 작품 [DDP]

 

그저 디지털아트로 관객은 치부했지만, 그 가운데 내년 4월 30일까지 DDP에서 이어지는 '구름이 걷히니 달이 비치고 바람 부니 별이 빛난다'는 주목할 만하다. 국보·보물 등 대표작 99점이 디지털 콘텐츠로 재탄생했다. 간송미술관 컬렉션과 김환기의 추상화, 서세옥의 수묵 추상 등이 미디어아트로 재해석됐다.

전시는 8개의 대형 전시실과 체험존에서 진행되고 있다. 공간의 총면적은 1462㎡(411평)이다. 각 공간엔 빛, 소리, 냄새, 질감까지 구현하는 기술이 총동원됐다. '미인도' 전시장엔 조향사가 만든 여인의 신비로움을 표현한 향기마저 경험할 수 있다. 김기라, 김수진, 진달래·박우혁 등 쟁쟁한 미디어 작가도 작업에 참여했다. 작품 가운데는 '훈민정음 해례본', 혜원의 '미인도', 겸재 정선 '금강내산(金剛內山)' 등 대표작이 포함됐다. 이 전시를 구태여 '키네틱아트 전시회'라고 따로 정의할 것은 없다. 모션그래픽, 라이다 센서 등의 다양한 기술을 도입했으니 '종합디지털 예술전시'로 봐야 한다. 용어는 차치하고 공간은 미래 미술계의 화두를 한껏 짊어지고 있다.

미술사는 전통미술을 타파하며 모더니즘이 나왔다고 기술한다. 모더니즘이 더는 시대를 대표하지 못하자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로 돌입했다고도 썼다. 시대가 중첩하는 이 과정마다 초기 새로운 시도나 움직임은 언제나 포착됐다. 이를 '아방가르드(Avant-garde)'다고 부른다. 키네틱 아트는 1세기 이전에 시작한 구시대 유물처럼 보인다. 역사에 묻힐 수도 있었다. 하지만 21세기 이 장르는 새로운 미술 세계에 활력을 불러일으키며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다. 키네틱 아트는 '아방가르드'적인 시대적 소명을 꿰차고 있는지도 모른다.

반환점을 도는 키아프와 프리즈에도 시대를 여는 키네틱 작품들을 만날 수 있을까.

 

KPI뉴스 /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Jasonyim@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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