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작가 역대 최고가 이우환, 그는 왜 덜렁 '점' 하나를 찍었나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Jasonyim@kpinews.kr | 2024-07-24 11:01:19

한국 대가들, 점묘법으로 고도의 철학적 경지 선보여
1970년대 일본 주류 미술 '모노파' 이론적 토대 마련
점 하나로 귀결된 작품 '점묘화와 미니멀리즘' 극치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도로 남이 되는 장난 같은 인생사~" (도로남 가사)

 

유행가를 빌리지 않더라도 점은 대단히 심오한 면을 품고 있다. 수학적으로 점은 면적이 없는 위치를 가리킨다. 이 0차원 점이 나란히 늘어서면 1차원 선이, 이 선이 늘어서면 2차원 면이, 이 면이 위로 늘어서면 3차원이 된다. 물리학에선 응결된 점이 순간 '빅뱅'으로 폭발해 현재의 우주를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언젠가 임계점에 도달한 우주가 다시 한 개의 점으로 수축한다고 하니 점은 시작과 끝, 알파와 오메가인 셈이다.
 

▲ 조르주 쇠라의 크루크브라의 다리

 

점이 이런 심오한 헤게모니를 품은 탓에 미술 세계에서도 점은 중요한 화두였다. 우선 점은 미술기법으로 수단화했다. 점묘화(Pointillism)가 그것이다. 점묘화는 19세기 후반 프랑스 화가 조르주 쇠라(Georges Seurat)가 원형을 제시했다. 누구나 잘 아는 모네도 같은 기법을 사용했다. 이들은 기존의 '브러싱 기법' 대신 캔버스에 점들을 찍어 내는 식으로 색과 대상을 표현했다. 색을 팔레트에서 혼합하지 않은 색점이다. 멀리서 보면 이런 점들은 혼합된 색처럼 보인다. 점묘법이다.

▲ 김환기의 우주 [뉴시스]

 

▲ 김창열, <물방울>, oil on hemp cloth, 70×124cm(50) [서울옥션]

 

우리나라에도 이 기법을 사용하는 작가들은 현재까지 수두룩하다. 다만 한국에서 대가들은 이 기법으로 구체적인 대상을 표현하기보다는 패턴화된 단순한 형태의 반복을 통해 깊은 철학적 사유를 내비쳤다. 몇 해 전 작고한 김창열 선생의 물방울, 국내 역대 최고가를 기록한 '우주'의 작가 고 김환기 선생, 생존작가 역대 최고가를 기록하고 있는 이우환(李禹煥·Lee Ufan, 1936년) 선생이 대표적이다. 한국 대가들은 눈에 보이는 점묘법의 회화적 요소보다는 궁극의 철학적 사유에 방점을 뒀다. 위치를 표시하는 점은 면적이 없으니 사실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불교의 공(空)과 같다. 한국 대가들은 표면적으론 면적이 있는 점을 그렸지만 실상은 존재론의 상투와 싸우며 일군 자기 성찰의 결과를 점으로 소구했을 것이다.

 

▲ 서울옥션 경매에 나온 이우환, 'Dialogue'. oil and mineral pigment on canvas, 226.9×181.8cm(150호) 2008~2014, [서울옥션]

 

그 가운데 이우환 선생의 캔버스에 그린 점 하나는 그야말로 압권이다. 점묘법 다른 대가들처럼 그는 한동안 점의 패턴이나 반복을 통해 작품을 완성했지만 1990년대 들어선 큰 화폭에 점 하나를 덜렁 그려 넣는 기행(?)을 선보였다. 사실 국내외에 이름난 작가지만 큰 화폭에 덜렁 찍어놓은 점 하나는 미술계를 뒤흔들만큼 충격이었다. 현재 적게는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을 호가할 수 있는 대형 작품에 덜렁 점 하나라니, 당시 작품을 본 문외한들뿐만 아니라 전문가의 눈에도 꽤 거슬렸을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이런 그의 작품 세계를 놓고 그저 객기라고 치부하기도 어렵다. 그의 작품들은 국내 역대 거래가 2~10위를 점유하고 있다. '덜렁 점' 하나라고 무시할 수 없는 대목이다.

각설하고 선생이 찍은 점 하나는 유행가 가사처럼 절묘하다. 미학적으로 얘기하면 점묘화와 미니멀리즘의 극한을 보여준 셈이다. 둘 다 단순함과 정교함을, 불필요한 요소를 배제하고 본질을, 추상성과 상징성을 극도로 추구한다.

▲ 김창열, <물방울>, oil on hemp cloth, 70×124cm(50) [서울옥션]

 

그렇기에 그가 찍은 점 하나는 한국 현대미술사의 하나의 사건이다. 또 이 점 하나는 한국 현대미술 작가들의 정신적 획일주의를 일거에 타파하거나 마침표를 찍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재미난 것은 이런 기행을 앞으론 누구도 따라할 수 없게 됐다. 누구라도 그의 전매특허라고 알고 있으니 말이다.

점 하나로 세상을 바꾼 이우환 선생은 누구인가. 그는 1960년대 후반부터 국내외 미술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국내보단 오히려 바다 건너 일본 미술계에서 그의 이름이 회자했다. 철학을 전공한 그는 1969년 일본 모노파의 대표적인 작가 '세키네 노부오'를 다룬 평론인 '존재와 무를 넘어서'를 발표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모노파의 '모노(もの)'는 '물(物)'을 말하는데 추종자들은 인간 중심적인 사고에서의 사물을 '대상'이 아닌 그 자체의 존재로서 드러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1970년대까지 일본 미술계의 큰 흐름이 된 모노파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다.

당연히 그의 철학적 배경도 이런 '모노파'에 수렴했을 것이다. 향후 그의 미술 세계도 이런 흐름과 같을 것으로 봐야 한다. 그의 초기 그림인 <점으로부터> 또는 <점에서> 등의 연작이나 1970년대부터 선보인 선을 사용한 연작 등도 속 깊게 들여다보면 모노파가 지향한 '있는 그대로'의 양태를 캔버스에 표현한 버전일 것이다. 복잡한 그림보다는 단순한 형태의 제시어 같은 것으로 세상을 관조했다는 얘기다.

그의 점은 하나 지난한 작업 순서를 거친다. 그래도 점 하나이니 한 번 숨을 잘못 쉬어 삐끗하면 작품 전체를 망칠 수 있었다. 그의 심오한 철학적 배경이 깔린 작품이더라도 문제는 애초 작품이 간단하고 명료하니 세상에서 가장 위조하기 쉬운 대상이란 점이다.

▲ 이우환, Dialogue, 2015,acrylic on canvas, 218 x 291 cm [뉴시스]

 

그가 왜 점 하나로 귀결했는지는 사실 알기 어렵다. 그런 기행이 더는 디딜 수 없는 경지에 오른 대가의 기력인지, 어차피 예술은 '사기'라는 그 누구의 말처럼 그저 그가 아무 생각 없이 덜렁 찍은 점 하나인지.

그럼에도 그의 점은 여러모로 관객의 시야를 넓힌다. 현대 미술작품은 사실 오롯이 작가 혼자만의 전유가 아니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장치나 기법이 사용되니 작품을 해석하는 관객도 작품 완성에 일조하는 일종의 소액주주다. 그런 점에서 그의 작품은 관객의 역할이 대단히 크다.

그의 점 하나를 보고 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먼지 한 톨과 우주가 본질적으로 같다'는 화엄경의 깊이를 맛보든지 자신의 책무를 잘 마무리하는 마침표로 읽든지 그건 저마다 처한 객들의 선택할 몫이다. 학창시절 화가를 꿈꾸던 이들이 늦게라도 자신감을 충전하는 기회로 삼는 것도 나쁘지 않을 터다.

 

몇해가 지나면 이 선생은 구순을 맞는다. 칩거가 꽤 길어지고 있다. 그는 이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 그가 대중 앞에 다시 선다면 한국미술계는 깊은 불황의 늪을 더 빨리 헤쳐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또 개념미술이란 기치로 근본 없이 할거하는 무풍지대에 중요한 나침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KPI뉴스 /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Jasonyim@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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