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아트 저력 과시한 키아프 프리즈...결정적 한방 없고 운영 미숙은 '숙제'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Jasonyim@kpinews.kr | 2024-09-11 15:08:31
50억 호가 걸작 부재 속 주요 갤러리 출품작 대부분 소화
상하위 간 '부익부빈익빈'은 숙제 수준 높은 운영은 '난제'
'한국 최대'(키아프2024)와 '유럽최대'(프리즈서울2024)가 결합한 아시아 최대 미술장터이자 축제마당 '키아프리즈서울2024'(키아프+프리즈)가 9일 오후 세번 째 축제의 막을 내렸다. 늦더위를 잠시 잊게 한 서울 전역의 '아트 위크'도 이젠 내년을 기약하게 됐다.
애초 미술시장 침체와 대작 부재로 흥행 우려가 나왔지만 지난해와 비슷한 키아프 7만명, 프리즈 8만여 명 수준을 기록하며 '선방'했다는 평이다. 홍콩, 도쿄를 넘어 서울이 명실상부한 '아시아 미술 허브'로 떠오르고 있는 키아프리즈는 특히 올해 '광주비엔날레'와 '부산비엔날레'가 함께 개막하면서 더 빛을 냈다. 다만 매년 이어지는 수준 미달 운영은 숙제로 남았다.
올해 프리즈는 작년보다 참가 갤러리(화랑)가 10개 정도 줄었다. 국내외적으로 미술경기 자체가 좋지않고 작품 운송료와 보험료, 항공료, 체재비, 부스비 등 부대비용이 급상승해 여러 갤러리가 한국행을 고민했다는 후문이다. 환율상승 악재도 겹쳤다.
그래도 주요 글로벌 갤러리들은 오프닝 첫날부터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비록 50억원을 호가하는 '대박'을 치진 못했지만,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한 싱가폴 갤러리스트는 기자에게 "쏠쏠하다(I did pretty well)"라며 웃었다.
올해는 젊은 세대 작품들이 꽤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새로운 발견과 신선한 만남"이라는 행사 주제와 딱 맞아떨어졌다. 세계 화랑계 큰 손들인 스위스 하우저앤워스와 미국 가고시안을 비롯해 페이스, 글래드스톤, 데이비드 즈워너, 리슨, 스푸르스 마거스, 타데우스 로팍 등 주요 글로벌 갤러리들이 내놓은 신진작가들의 작품들이 눈길을 끌었다.
큰 잔치인만큼 소위 이름값 하는 걸작들의 판매도 이어졌다.하우즈앤워스는 호암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 중인 니콜라스 파티의 인물화를 250만달러(약 33억5천만원)에, 독일계 화랑 스푸르스 마거스는 조지 콘도의 '자화상'을 195만달러(약 26억원)에 아시아 개인 컬렉터에게 판매했다. 또 하우즈앤워스는 에이버리 싱어의 'Free Fall(2024)'을 7억7150만원, 헨리 테일러 인물화를 6억380만원, 앙헬 오테로의 회화를 3억8300만원에 각각 판매하는 등 첫날 VIP대상 세일즈에서 주요 유명 출품작을 대부분 솔드아웃했다.
미국 최대 갤러리인 가고시안은 사빈 모리츠, 릭 로웨, 데릭 애덤스, 어스 피셔, 에드 루샤, 무라카미 다카시 등의 작품을 내놔 쏠쏠한 판매고를 기록했다. 특히 가고시안은 지난해 리움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열었던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쇼킹한 금속 작품을 부스 전면에 내세워 포토존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가장 많은 인기를 끈 갤러리는 페이스 갤러리(Pace Gallery)였다. 1960년대 뉴욕에서 설립돼 국제 명성을 얻은 페이스 갤러리는 올해 로버트 인디애나의 조각 'LOVE'(7억3700만원)를 부스 전면에, 로버트 나바의 페인팅(2억400만원)과 '카일라 매닝'의 회화(1억3400만원)를 중앙에 내걸며 승부수를 던졌다.
미국에서 가장 아카데믹한 화랑으로 꼽히는 글래드스톤 갤러리는 한국계 작가 '아니카 이'의 조각과 평면 작품을 내놓았다. 움직이는 키네틱아트인 '래디얼 센세이션'을 첫날 2억6800만원에, 최근 몸값이 급등하는 '살보'의 회화 두점도 각각 5억, 2억원에, 현재 세계 미술계에서 가장 높은 인기를 구가 중인 '우고 론디노네'의 조각과 회화, 수채화 여러 점, 미국의 팝아티스트 키스 해링의 드로잉을 적잖은 가격에 판매했다.
줄어든 해외갤러리의 빈자리는 한국 갤러리들이 매웠다. 조선화랑과 BB&M은 새로 갤러리즈 섹터에 진입했고, 갤러리신라는 마스터스 섹터에 합류해 주목을 받았다. 박경미 대표가 이끄는 PKM갤러리는 외국 작가 비중을 줄이는 대신 한국 추상의 거장 유영국을 내세웠다. 그의 대표작인 'Work'는 20억원에 판매됐다. 지난해 최병소의 작품으로 프리즈 마스터스 섹터에 참가했던 우손갤러리는 올해는 대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여성 화가 이명미(74)의 작품으로 솔로부스를 꾸려 관객을 맞았다.
노화랑, 조현화랑, 국제갤러리, 리안갤러리, 학고재, 아트스페이스3, 갤러리 빛, 리서울갤러리, 그림손 등은 주연급 역할을 했다. 특히 갤러리그림손은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하는, 한국의 가장 주목받는 차세대 작가 가운데 한명인 채성필 선생이 직접 전시장에 나서 관객과 호흡해 주목받았다. 리서울갤러리는 지난해와 같이 10원 동전을 이용한 김승우 작가의 조각 '자이언트'를 전시했고 노화랑은 친숙한 윤병락 작가의 사과 시리즈를 내놓으며 관객의 발길을 잡았다.
새로운 아티스트 발굴 플랫폼으로 지난해 첫선을 보인 '키아프 하이라이트'는 볼만했다는 평이다. '뉴 디스커버리스(New Discoveries) & 프레시 엔카운더스(Fresh Encounters)'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행사엔 김은진(금산갤러리), 강철규(아라리오 갤러리), 최지원(디스위스켄드룸)이 최종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그림 그리는 배우 박기웅은 감각적인 표현과 철학적인 깊이가 묻어나는 독창적인 작품으로 주목받았고 옵스큐라 갤러리가 선정한 김호득 작가와 갤러리위가 선정한 고스와 최명애 작가 등이 관객의 관심을 받았다.
키아프는 사실 판매 규모 면에서 프리즈를 뛰어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하지만, 올해 키아프는 주요 갤러리들의 독창적인 전시 기획력과 콘텐츠는 물론, 프리즈를 능가하는 풍성한 프로그램을 곁들이며 한국형 아트페어, 즉 'K-아트페어'의 가능성을 확실히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이전 전시엔 지난해와 같은 작은 부스에 여러 작품을 아래위로 다닥다닥 붙여 시장통을 방불케했던 '저급함'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페어 기간 열린 특별전시 '키아프 온사이트(보이지 않는 전환점)'에선 현대 사회와 예술의 미래적 대안을 다각도로 조망해 눈길을 끄는데 성공했다. 미디어아트, 설치, 퍼포먼스, AI 웨어러블 기술, VR 등 다양한 장르로 구성돼 관람객들은 작품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올해로 4회째를 맞은 인천국제공항 특별전은 한국방문 시작부터 특별한 예술경험을 제공했다. 길목에 손님을 맞는 괜찮은 기획으로 K-아트를 국제적으로 알리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새로운 아티스트 발굴이라는 취지로 열린 '키아프 하이라이트 어워즈'도 프리즈에선 볼 수 없는 이벤트였다. 아트페어가 미술품을 판매하는 장터에 그치지 않고 작가들의 창작 열기를 높여 미술생태계를 확장하는 기능까지 겸비한 셈이다. 어워즈에선 강철규(아라리오갤러리), 김은진(금산갤러리), 최지원(디스위켄드룸)이 수상자로 선정돼 각각 창작지원금 1000만 원씩 받았다.
5~7일(토)까지 코엑스 2층 스튜디오 159에서 진행된 토크프로그램은 글로벌 미술계의 다양한 인사를 초빙해 역동하는 미술시장, 변화하는 아트페어, 미래의 울림: 기술전환시대의 예술을 재정의하기 등을 맛볼 수 있었다. 총 9개 주제로 열린 이번 프로그램은 글로벌 미술시장과 현대미술의 흐름에 대한 심도 있는 이야기 장이었다.
갤러리 간의 체급 차이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상하위 갤러리간의 매출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며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하고 있는 것도 '풀어야할 숙제'로 꼽혔다.
가장 문제는 '수준 높은 운영'의 부재다. 특히 첫날부터 논란이 된 '가방검사'는 오히려 행사기간 내내 강화됐다. '보안검사'라는 명분으로 미숙련 스태프들이 고압적 태도로 관객과 출입기자들을 '잠정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해외의 경우 보안검사를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관객을 존중하고 배려한다. 이런 수준 높은 운영요원들의 태도에 관객은 불쾌감을 느끼지 않는다.
"한국미술계가 진정한 아시아의 허브가 되려면 우선 수준 높은 운영체계를 확보하는 것 중요하다. 아트페어는 일반 국제행사와는 결이 다르다." 이번 전시회를 경험한 한 갤러리스트의 충고다.
KPI뉴스 /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Jasonyim@kpinews.kr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