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지도 살리지 못하는' 인생에 투사하는 연민의 힘
누구나 겪는 아픔이지만 말하지 못하는 이야기 대변
"나만의 사연 아닌 우리 이야기로 기록되길 바라는 마음" -베란다 창을 열고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남편 정수리가 눈에 들어왔다. 남편은 지팡이에 몸을 기댄 채 다리를 조금씩 끌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창밖으로 팔을 뻗었다. 머리 위로 화분을 조준했다. 손을 놓으면 화분은 그대로 남편 머리로 떨어질 터였다. 남편의 움직임에 따라 화분을 든 손도 조금씩 앞으로 움직였다. 화면을 느리게 재생한 것처럼 남편이 움직이는 속도는 더뎠다.
평생 집 밖으로 나돌던 남편이 돌아왔다. 돌아와서 뇌출혈로 쓰러졌다가 아내의 간호를 받으며 다시 거동을 시작했다. 아내는 매일 느리게 아파트 단지를 산책하는 남편 머리 위로 베란다 선인장 화분을 떨어뜨리는 상상을 한다. 선인장은 죽기도 죽이기도 어려운 식물인데, 메마르고 질긴 게 꼭 남편 같기도 하고 자신 같기도 하다. 죽이지도 살리지도 못하는 마음을 어찌할까. 최지애 첫 소설집 '달콤한 픽션'(걷는사람) 첫머리에 수록된 단편 '선인장화분 죽이기'에 등장하는 늙은 여자의 마음이다. 10여 년 써온 단편들을 선별해 처음 묶어낸 최지애의 말.
"이 어정쩡한 태도가 제가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인 것 같아요. 뭔가 명확하고 싶은데 사실은 그러지 못하는 거죠. 이런 삶의 태도를 우유부단하다고 표현하고 싶지는 않아요. 사는 게 다 이런 게 아닐까 싶어요. 상대에 대한 연민이 아내의 행동을 막아서는 것이겠죠. 타인에 대한 연민이란 동시에 자기애일 수 있어요. 나의 존엄을 유지하기 위한, 내가 나로서 존재하기 위한 정서의 바탕이 상대에 대한 연민이기도 하거든요."
2012년 천강문학상 우수작으로 선정된 이 단편의 원제는 '늙은 여자의 노래'. 페미니즘이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작동하는 이즈음의 시각으로 재단하자면 답답하기 짝이 없는 태도일 테지만, 늙은 어머니 세대를 바라보는 최지애의 시각은 단순하지 않다. 인간에 대한 연민이야말로 자신의 존엄을 구축하는 큰 힘이라는 것, 이를 두고 경직된 시각으로 재단하는 건 섣부른 일이다.
이듬해 심훈문학상을 받으며 본격적인 소설 쓰기에 나선 최지애의 '연민'은 동세대 청년들의 삶에 집중적으로 투사된다. '패밀리 마트'의 스물여덟 살 청년은 '효도하기 위해' 부자가 되고 싶었다. '가난하면 좋은 사람이 될 가능성이 적으니까. 나는 모르는 사람들에겐 친절하고 싶었고 가까운 사람들에겐 다정하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양보와 미덕을 베풀 기회 대신 늘 전투적인 공격과 방어를 요구했다.' 남들처럼 비트코인에 매달려 단타에 올인하지만 치열한 자본의 정글에서 어수룩한 청년의 일확천금은 무망한 노릇이다.
코인이 급락하자 청년은 남들처럼 부동산에도 눈을 돌려 경공매 공부에 집중한다. UDT 출신이라고 뻐기던 아버지는 휠체어 신세고, 그 홀아버지 모시고 사는 청년의 수중에 남은 돈이라곤 2000만 원이 전부. 그는 눈에 불을 켜고 경매를 살피다가 먼 외곽의 아파트 하나 운좋게 낙찰받았는데, 두어 시간 걸려 어렵사리 찾아가보니 아파트는커녕 빌라 정도인데다 힘들게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낡은 집이었다. 게다가 그곳에는 불법체류 신분이어서 제대로 보호도 받지 못하는 가족이 보증금을 되돌려받지 못한 채 잔류하고 있었다. 부도가 난 집주인은 청년에게 '불쌍한' 입주민에게 대신 보증금을 내주라고 말하고, 청년이 도리질하자 인정머리 없다고 적반하장이다.
아들이 아르바이트하는 편의점 이름이 '씨유'로 바뀐 지 언제인데, 아버지는 굳이 '패밀리마트'라고 부른다. 사람들이 '패밀리마트'라고 부를 땐 다들 기대하는 바가 있을 테니 사람들에게 친절하라고 당부하면서. 청년은 다짐한다. '그래 씨유, 못 먹어도 내 인생 언젠가 나이스투씨유다.' 이런 '웃픈' 긍정의 태도는 '달콤한 픽션'의 여성에게도 여일하게 투사된다.
나의 절친 '미주'는 '결혼이라는 급류에 몸을 맡기고 물살을 가로지르며 파도타기를' 시도한 여성이다. 불안정한 청년세대의 조건을 주체적으로 극복하려는 태도 대신 조건이 갖추어진 상대를 찾아 쉽게 해결하려고 했던 미주는 남자의 배신으로 좌절한다. 친구를 바라보는 나도 헛헛한 건 마찬가지. 둘은 모처럼 다시 만나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보면서 '백분짜리 영화'의 공식을 되새긴다. 현실도 몇 컷의 재빠른 장면 전환으로 사랑과 이별, 시련과 상처가 해결 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누구도 섣불리 인생의 결말을 예상할 수 없다. 서른 중반의 그들은 태풍의 눈으로 접어들 운명이면서도 기세 좋게 외친다. 자고로 모든 결말은 해피엔딩이어야 한다면서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의 낭만은 지속되어야 했다'고 마지막 문장을 맺는다. '한다'가 아니라 '했다'인 이유는, 호언은 하지만 서글프게도 누구보다 그들 자신이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가 중섭의 하루'에 등장하는 두 청년 중섭과 태섭은 나란히 소설과 시로 신춘문예에 당선돼 '섭섭 브라더스'로 불리던 친구였다. 현실은 각각 가난한 대필작가로 사는 소설가요, 강남에서 잘 나가는 학원강사. 아직 문학 순정을 버리지 못한 중섭 앞에서 태섭이 자신의 고급 시계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자, '세계'가 아닌 '시계'에 대해 말하는 태섭의 태도를 중섭은 지적한다. 태섭은 얼굴을 심하게 일그러뜨리며 반격한다. '나는 논술 강사야. 잘나가는 대치동 논술 강사. 지금까지 시 썼으면 이 시계 죽어도 못 사. 그리고 지금이 시가 어울리는 시대이기나 해? 시가, 소설이 가당키나 하느냐고?' 태섭의 질문에 대한 최지애의 응답.
"태섭이 언성을 높이는 것에서 이미 저는 답을 했다고 봐요. 문학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면, 자기의 삶에 만족했다면 그렇게 언성을 높일 이유가 없다고 보는 거죠. 저는 문학이 여전히 가당하다고 생각해요. 끊임없이 어떤 것들을 생각하게 하고 만들어내니까요. 그것이 문학의 힘이죠.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나만 겪는 일이 아닌데도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신하는 이야기들인 거죠. 거기에서 분명히 공감이나 위안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고 봐요. 그것들을 다양하게 계속 보여주는 일이 소설가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말할 수 없는 자들의 말을 소설로 보여주는 최지애의 의지는 '까마귀 소년'에 시적으로 응축돼 있다. '식물인간 엄마가 방치된 집에서 동거해 임신까지 한 십대, 생활고는 성매매로'라는 기사로 단순처리된 은주의 이야기를, 그 아이와 식물인간 엄마 곁에서 사랑을 나누었던 '나'의 이야기를, 그 이면을 '까마귀 소년'이라는 동화를 빌려 대변하는 단편이다. '달용이의 외출'은 세월호 유가족의 남겨진 삶의 그늘을 핍진하게 파고든다. 살가운 가족은 아니었지만, 서로 더 잘 알 수 있는 기회가 영영 박탈된 슬픔,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그나마 그들 사이를 매개했던 반려견 '달용이'를 자처하는 아버지의 슬픔이 절망적이다.
이름만 번드르한 컬처팩토리의 유일한 사원으로 일하는 '나'의 불안정하고 외로운 삶을 대변하는 '팩토리 걸'도 다르지 않다. 계산하지 않는 쿨한 사랑을 외치지만 외로움은 어찌할 수 없는 '나'가 슬픈 것은 '헤어짐이 아니라 혼자 남겨지는 두려움'이었다. '어쩌면 정말 슬픈 건 차가워진 마음이 아니라 절대로 따뜻해지지 않는 마음이었다.' 대부업체에서 일하는 '러브 앤 캐시'의 인물은 '아직도, 여전히 그리고 언제나 사랑은 높은 이자율과 원금 상환 불가능을 무릅쓰고 지속되곤 했다'고 진술한다. 무모해도 지속되는 사랑이 아니었다면, 인류는 진작 멸종했을 것이다. '징징거려도 좋으니 살아가기를, 살아남기를' 바라는 작가의 말.
-첫 책을 세상에 내놓는 이제 막 나는 고르게 안쓰럽고 짠한 게 누군가의 인생이라는 것쯤을 알았다. 그러니 아직 갈 길이 멀 수밖에. 멋진 말과 맞는 말 사이에서 고민하고 고민해, 고민 끝에 써 내려가는 나의 문장이 나만의 사연이 아닌 우리의 이야기로 기록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지금에서야 조금은 그 희망에 가까워지는 소설을 쓰는 인생을 살고 싶어졌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