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지난달 28일 열린 법사위 논의 과정에서 법원이 여러 이유로 반대하여 제동이 걸리고 다음 회의 일정도 정해지지 않은 채 보류되고 있다.
현행 형법은 전시형법(戰時刑法)의 성격을 갖는 1940년의 일본의 개정형법 가안(假案)을 모델로 입법하여 적국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적국이란 국제법상 선전포고를 하고 대한민국과 전쟁상태에 있거나 사실상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국가를 말한다.
이에 따라 형법의 간첩죄는 전쟁상태가 아닌 평시에는 –판례에 의해 준적국으로 취급하는 북한을 제외하고– 사실상 사문화(死文化)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세계의 거의 모든 국가들이 적국과 외국, 동맹국과 비동맹국을 구분하지 않고 자국의 국가기밀을 탐지·수집·누설하는 행위를 간첩으로 처벌하는 법체계를 갖추고 있다. 우리 형법의 간첩죄 개정이 시급한 이유이다.
법원이 반대하는 주된 이유는 "군사기밀의 유출은 '군사기밀보호법'에 의해, 산업 기술의 유출은 '산업 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에 의해 각각 처벌할 수 있음에도 외국인 등에 대한 간첩죄를 형법에 신설하여 무거운 처벌 규정을 두는 것은 법체계에 혼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간첩죄의 보호법익과 구성요건이 '군사기밀보호법', '산업 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의 그것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법원에서 이런 이유로 반대를 한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군사기밀보호법'은 법률에 따라 분류, 지정된 군사기밀 그 자체를 보호법익으로 하고, '산업 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은 동 법률에 따라 보호·관리되는 산업 기술 그 자체를 보호법익으로 한다.
위 법률들이 정한 보호와 관리에 관한 규정을 위반하여 부정한 방법으로 군사기밀이나 산업 기술을 유출하면 처벌 대상이 되는 것이고, 간첩죄와 달리 '이적의 의사' 또는 '국가의 외적 안전을 해할 의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군사기밀보호법'이나 '산업 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의 법정형이 간첩죄보다 낮은 것은 '이적의 의사' 또는 '국가의 외적 안전에 위해의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간첩죄를 무겁게 처벌하는 것은 단순히 국가기밀을 탐지·수집·누설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적의 의사' 또는 '국가의 외적 안전에 위해의 의사'로 그러한 행위를 했기 때문이다.
법원은 또 형법의 간첩죄와 '군사기밀보호법' 및 '산업 기술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 일반법과 특별법의 관계에 있음을 전제로 반대 의견을 전개하고 있으나, 이들 법률들은 보호법익과 구성요건을 각각 달리하므로 일반법과 특별법의 관계에 있지 않다.
'군사기밀보호법'과 '산업 기술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의 일반법이라면 가칭(假稱) '국가기밀보호법'이 되어야 하는데, 몇 차례 입법 추진이 있었으나 아직 성과가 없다. 국가기밀보호의 법체계 구축이라는 점에서 이 부분도 입법의 해태(懈怠)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1993년 후지 TV 서울지국장이 대한민국 해군 장교 A로부터 군사기밀을 빼내 일본대사관 국방무관에게 전달한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2016년에는 국군 기무사령부 소속 해군 장교 B가 중국 연수 중 중국 정보기관에 포섭되어 해군 구축함 관련 군사기밀을 유출한 사건이 있었다.
내·외국인을 불문하고 간첩죄로 처벌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형법의 간첩죄가 적국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부득이 '군사기밀보호법'을 적용하였다. 간첩죄로 처벌해야 할 것을 법의 불비(不備)로 부득이 '군사기밀보호법'을 적용한 것인데, '군사기밀보호법'으로 처벌할 수 있으니 간첩죄 개정에 신중하여야 한다는 법원의 논리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다.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우리 대한민국이 아직도 1940년 일본 전시형법을 그대로 유지, 답습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형법 개정안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한다.
김호정 변호사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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