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지느러미 달린 사랑에 목줄을 채우고 싶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2023-08-24 08:40:32
두번째 소설집 '공룡의 이동경로' 펴낸 소설가 김화진
4명 친구의 시각에서 각자 서술하는 마음의 경로 연작
서로 마음은 같지만 사소한 차이로 어긋나는 안타까움
"삶의 구간마다 만났다 헤어지는 이들에게 보내는 위로"
-나의 시간은 대부분 사랑을 하는 데 쓰인다. 너무나 오랫동안 그래왔다. 나에게 사랑은 태도이자 습관. 규칙이자 성격. 원칙이자 자랑. …사랑이 지느러미를 달고 내 주위에서 끊임없이 헤엄치는 것이다. 사랑이 잠깐 내 곁에 머물고 또 떠나가고, 가까워지고 멀어지고, 그러길 반복한다. 사랑을 계속할 수 있는지는 오직 사랑에게 달렸다. 나는 모르는 일이다.

▲등단 2년 만에 두 번째 소설집을 펴낸 김화진. 그는 "친구가 필요해서 소설을 읽고 쓰게 된 건 아닐까 생각한 적이 많다"고 썼다. [김화진 제공]

그놈 사랑이 문제다. 이번 사랑은 얼마나 갈지 나도 모른다. 제 마음대로 지느러미 흔들며 움직이는 그 사랑에 달렸다. 그놈 목에 줄을 달아 통제하고 싶은 마음 굴뚝같지만 여의치 않다. 늘 사랑에 빠져 사랑에 끌려다니는 나를 두고 사람들은 '사랑의 신'이라고 부른다. 이 별명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다정하다'는 의미이고, '헤프다'는 조롱이기도 하다. 나는 굳이 연애를 갈망하지 않는데도 쉼없이 연애를 하고 있었다.

나 '주희'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주희, 솔아, 지원, 현우는 '쓰기 모임'에서 만났다. 이들이 각자의 시점에서 서로 교류하는 마음의 경로가 신예 김화진의 두 번째 소설집 '공룡의 이동경로'(스위밍꿀)에 연작 형식으로 담겼다.

솔아와 지원은 서로 생각하는 마음은 똑같지만 좀 더 서운해하는 쪽은 솔아이고, 지원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그걸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성격이어서 둘은 사소하게 어긋난다. 주희는 그들을 지켜보면서 둘이 서로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역할을 맡지만, 그녀들을 바라보는 주희는 결핍감을 느낀다. 현우는 주희도 모르게 그녀만을 늘 바라보면서 챙겨주는 역할이다. 이들 모두를 지켜보는 공룡 트리케라톱스 문신 '피망'이가 다섯 번째 화자로 등장해 이 연작 소설집을 완성하는 형식이다.

"등단 전부터 썼던 이야기들이에요. 그때까지는 내가 나한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쓰는 게 최고의 목적이었어요. 소설 속 인물로 친구들까지 만들어서 한시절 되게 좋아했던 친구들이랑 어쩌다가 헤어져도 괜찮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오래 오래 이어지면 좋겠지만, 사실 친구 관계만이 아니라 모든 관계를 인생에서 통틀어도 유난히 친했던 사람들이 구간마다 있잖아요? 그 관계가 오래 지속돼야 진짜 친구, 이런 게 아니라 그냥 그 구간에 있던 진짜 친구들을 이렇게 소설에 박제하는 것만으로도 좋다, 그런 이야기를 한 셈이죠."

202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나주에 대하여'가 당선작으로 뽑혀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한 김화진은 등단작부터 '친구'와 나누는 섬세한 마음의 경로를 탐색해왔다. 이번 소설은 보다 입체적으로 친구 넷의 '사랑'의 이동경로를 들여다보는 형식이다. 출판사에서 문학 편집자로 일하고 있는 김화진은 좋아하는 일을 소설을 쓰면서 더 잘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가 소설을 쓰는 일이란 현실에서 상처받기 쉬운 마음을 단련하는 일과 다르지 않은 듯하다. '사랑을 계속할 수 있는지는 오직 사랑에게 달렸다'면서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진술하는 '사랑의 신' 주희는 사랑에게 지나친 자율성을 부여하는 건 아닐까.

-다시 한번 말하지만 사랑하는 능력은 내 것이 아니다. 내 주위를 맴돌 뿐이다. 그러나 그동안 인정하지 않았던 것은, 사랑에게만 지느러미가 달려 있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나에게도 헤엄을 칠 수 있는 팔과 다리가 있다. 나는 자연스러운 물길을 따라 흘러가는 척하면서 실은 사정없이 발버둥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랑 쪽으로 가려고. 더 가까이, 더 자주.


발버둥을 쳐보지만 사랑의 지느러미 근력이 더 세다는 주희의 말. 슬픔을 느낄 때 사랑은 더 애틋해진다니 이 '사랑의 신'에게 사랑은 불가항력이다. 만화를 그리는 주희는 지원 언니에게 그녀의 슬픔을 털어놓았고, 그 슬픔으로 인해 지원과 더까워진 마음인데 지원에게는 어린시절부터 친했던 친구가 스스로 생을 떠나는 아픔이 곁에 있었다. 그 사실을 털어놓지 않은 채 잠적하는 바람에 솔아는 상처를 받아 애면글면했고, 타투이스트 지원이 솔아 팔에 새겨준 작은 공룡 문신 '피망'마저 어느 사이 사라져버려 겹으로 상실감에 휩싸였다. 주희가 전해준 지원의 사연에 솔아는 왜 자신에게 직접 지원이 말하지 못했는지 여전히 섭섭한 것이었는데, 서로 좋아하는 바탕은 같은데 작은 차이로 어긋나는 마음의 엇갈림은 늘 안타까울 따름이다. 지원이 솔아의 팔뚝에 새겨준 피망이는 어디로 갔을까.

-어느 밤에는 작은 트리케라톱스가 떠나간 팔목 어딘가를 끝 모르고 쓰다듬게 되는 것이다. 이젠 어디에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된 채로. 자꾸 매만져서 마치 내 살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면서. 피부 아래에 핏줄과 동동 뛰는 맥박 같은 걸 어쩔 수 없이 느껴가며 여기쯤이었지, 아니야 여기에 있었지, 약지 손톱만했지, 아니 좀 더 작았나? 새끼손톱 크기? 하며 옛 친구를 생각하는 것이다.

작은 공룡 트라케라톱스, 피망이가 지원의 분신이라면 사라진 그녀의 마음은 어디쯤에 있는 것일까. 지원은 솔아에게 혼자 속삭인다. 나는 사라진 게 아니라고. 다만, 아직 모서리에 있을 따름이라고.

"사실 인간관계에서 영원한 내 편은 없잖아요. 이런저런 고독과 좌절을 겪는 주희 곁에 현우가 있지만 그들의 관계도 1, 2년 지나면 모르는 것일 테죠.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인간이어서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피망은 인간이 아니니까, 한 사람을 위해 태어난 그림이니까, 누군가 한없이 나를 헤아려주는 어떤 존재에 대한 판타지를 부여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 역할을 인간에게 부여하는 거는 그 사람한테 좀 못할 짓인 것 같고..."

사랑을 믿지 못하면서도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을 어찌할까.

▲김화진은 "가끔 삶을 사는 방식이 더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가 덜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가 기우뚱거리는 것이 전부인 것 같을 때가 있다"면서 "어쩐지 소설은 그럴 때 쓰는 것 같다"고 썼다. [김화진 제공]

"항상 사랑에 대해선 두 가지가 고민이에요. 폭발성과 지속성, 이중에서 뭐가 더 내가 추구하고 좋아하는 사랑일까, 그런 생각을 하거든요. 물론 지속성이 있는 사랑을 하고 싶죠, 자기 멋대로 움직이는 지느러미를 지닌 사랑에 목줄이라도 채워서 길들이고 싶어요."

김화진에게 사랑은 늘 변하고 움직이는,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무정형의 그 무엇인 셈이다. 그는 그 사랑에 목줄이라도 채우고 싶다는 것인데, 순순히 목을 내놓을까.

"솔아처럼 살아왔던 것 같아요. 어느 시기에는 내가 어떤 친구를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다가갈 줄도 잘 모르고, 맞춰준다는 게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그냥 눈치만 봤다가 나중 돼서야, 여러 친구들을 떠나보내고 나서야, 그때 그게 잘못이었나보다 생각하는 거죠. 그 시간이 영원하지 않다고 해서 자책할 만한 일은 아니다, 관계의 변화를 맞는 사람들에게도 그냥 그럴 수도 있다고 다독이는 그런 소설로 다가갔으면 좋겠어요."

김화진이 새긴 작은 공룡 '피망'은, 헤어져도, 사라져도, 나의 어딘가에 남아 그림자를 드리우는 존재의 상징으로 다가온다. 그는 '피망이 시점일 때 가장 슬프고 자유로웠다'면서 '나는 언제나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의 관찰자를 원했다'고 말미에 썼다. 소설에서처럼 팔뚝에 공룡을 새겼다는 김화진은 '혼자서 이 마음 저 마음 옮겨다니다보면, 그 궤적이 소설에 남으면 제법 뿌듯하고 이렇게 사는 것도 괜찮지, 하게 된다'고 맺었다. 사라진 피망의 춤.

-선캐처가 흔들릴 때마다 빈 벽에는 크리스털 장식을 통과한 동그란 빛이 점점으로 흩어졌다. 그 모습은 작은 요정들이 뛰어다니는 것 같기도 하고 춤을 추는 것 같기도 했다. 흔들리며 벽에 찍히는 색깔은 노랑과 파랑, 초록이었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 문화부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