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군인들에게 집단강간 살해된 팔레스타인 소녀
장교의 내면·여성 화자 생각 객관적으로 세밀하게 교직
"폭력에 무디어지는 순간, 피해자는 물론 가해자 될 수도" -소녀가 도망가면서 울부짖고 있었다. 그러다 모래 위로 쓰러지고, 이어 오른쪽 관자놀이에서 총성이 들렸다. 그리고 다시 침묵이 드리웠다. 그녀의 머리에서 모래 위로 피가 쏟아졌다. 오후의 햇살이 모래 색깔과 한가지인 그녀의 벗은 엉덩이에 모이는 동안 모래는 쉬지 않고 그녀의 피를 빨아들였다. 운전병은 소녀가 죽지 않은 것 같다고, 그냥 놔두고 갈 수는 없다고, 확인 사살을 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잠시 후 여섯 발의 총성이 허공에 울려 퍼졌고,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1949년 8월 13일 아침이었다.
팔레스타인 소녀 하나가 아랍인 추방 작전 중 생포됐다가 병사들에게 집단 강간당한 뒤 살해돼 매장된 이 사건은 이른바 '알 나크바' 1년 후 일어났다. '나크바'란 아랍어 '대재앙'이라는 뜻으로,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하면서 70만 명 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추방한 사태를 일컫는다. 소녀의 죽음은 나크바 이래 벌어진 수많은 폭력들에 비하면 '사소한' 것일지 모르나, 팔레스타인 중견 작가 아다니아 쉬블리(1974~ )에겐 여전히 현재진행형 폭력의 본질을 드러내는 모티브로 작동했다.
국내에 처음 소개된 그의 장편 '사소한 일'(전승희 옮김·강)은 '나크바' 이후 반세기가 흘렀지만 여전히 폭력적인 상황이 지속되며 이제는 일상으로 굳어진 환경에서 윤리적인 태도란 어떤 것인지 돌아보는 공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소설에서는 내내 개 짖는 소리가 들리고, 소녀의 머리에 부었던 휘발유 냄새가 사라지지 않는다.
1부는 네게브 사막 남서쪽을 샅샅이 뒤져서 잔존 아랍인들을 모조리 제거하라는 명령을 받은 소대장의 내면을 따라간다. 그들은 사막 순찰 중 샘물 곁에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는 한 무리 아랍인들과 눈이 마주치자 총기를 난사했다. 낙타들도 총알받이가 됐다. 지속되던 개 짖는 소리가 멈추고 일순 정적이 감돈 가운데 딱정벌레처럼 웅크리고 있던 소녀의 숨죽인 흐느낌 소리가 들렸다. 소녀의 울부짖는 소리는 더 커졌고, 개도 덩달아 짖기 시작했다.
장교는 소녀를 장악한 뒤 부대로 데려가 더러운 옷을 찢어 벗겨내고 멀찌감치 떨어져 강력한 물세례를 퍼부어 씻겨낸다. 위생병에게 휘발유 통을 가져오게 해서 소녀의 머리가 완전히 젖을 때까지 부은 뒤 참을성 있게 두피를 문질러 소독한다. 소녀에게서 악취와 더러움을 제거한 뒤 오두막에 가두고 보초를 세웠지만, 소녀는 어느 순간 갑자기 울면서 밖으로 뛰쳐나오며 알 수 없는 소리를 냈고, 그 소리는 개가 쉬지 않고 컹컹대는 소리와 뒤섞였다.
-우리는 망명하는 수많은 우리 민족을 수용할 만큼 넓은 땅을 모르는 척 놔둘 수 없다. 우리 민족이 귀향하지 못하도록 방관할 수 없다. 지금은 잠입자들과 한 줌의 베두인들, 낙타들 빼고는 아무것도 없어 황무지처럼 보이는 이 땅이 실은 우리 선조들이 수천 년 전에 지나갔던 곳이다. 만일 아랍인들이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민족주의적 감정에 따라 행동하면서 우리가 이곳에 정착하는 것을 거부한다면, 만일 그들이 우리에게 계속 저항하며 이 지역을 황무지로 내버려두려고 한다면, 우리는 군인답게 행동할 것이다.
군인답게 행동할 것이라고 장교는 대원들에게 천명한다. 장교는 소녀를 병사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막사 안으로 불러들여 같은 공간에서 밤을 보낸다. 장교는 낮에 '물것'에 물려 허벅지에 상처가 났고 오한이 엄습해 따스한 체온을 느끼러 소녀의 침대로 갔고, 소녀 위에서 아침을 맞는다. 휘발유 냄새와 그치지 않는 악취가 거슬려 장교는 소녀를 다시 다른 오두막으로 내보낸 뒤 아침 산책을 나갔다가 돌아오는데, 장교의 엄명에도 불구하고 소녀의 오두막에는 많은 병사들이 들락거린 뒤였다. 소녀를 내보냈어도 악취는 사라지지 않았는데, 기실 그 진원지는 자신의 허벅지에 큼지막하게 생긴 종기였다.
소녀를 진지의 식당에서 일하게 한 뒤 돌려보낼 생각이었지만, 그는 군인답지 못했다. 아다니아의 표현처럼 "악이 넘쳐서가 아니라 선이 모자란 것"일지 모른다. 장교의 내면은 섬세하게 설득력 있는 문장으로 전개돼, 그의 갈등과 선택에 얼핏 동화될 가능성조차 배제할 수 없는 흐름이다. 팔레스타인의 특별한 환경에서 벌어진 죄악에 국한되지 않고, 누구나 쉽게 폭력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작가는 또렷하게 음각하고 있는 셈이다.
역자가 "팔레스타인인이 겪는 고난의 바탕에 차이를 억압의 구실로 활용하는 기제가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런 기제에 저항하지 않고 방관한다면,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고, 아니 이미 얼마간 가해자라고 작가는 본다"고 해설에 명기한 배경이다.
2부는 그 사건 이후 25년이 흐른 같은 날 태어난 팔레스타인 지식인 여성이 화자다. 당장 옆 건물에서 저항하던 남자들 세 명이 폭사하는 일이 일어나는 일상이다. 소녀 하나가 반세기 전 강간 살해당했다는 뉴스 정도는 특별할 것이 없는 일이었다. '아니, 그런 상황에서는 일어나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사실, 그런 일은 워낙 자주 일어나서 전에는 그런 일에 대해 들어도 아무런 감흥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그 소녀에 대해 책임감을 느낄 이유는 전혀 없으며, 그녀는 아무 인물도 아니고 아무도 그 목소리에 귀를 안 기울일 별 볼 일 없는 사람으로 영원히 남겨질 것이다.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지금 세상의 비참함을 다루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과거로 돌아가서 더 많은 비참함을 들춰낼 필요는 없다. 그냥 그 사건 전체를 잊는 게 좋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둠이 집의 구석구석까지 스며들자마자 개 짖는 소리가 되돌아와 나를 괴롭히고, 동이 틀 때까지 내게서 잠을 빼앗는다.
우연히 그 기사를 읽게 된 여자는, 그 사건이 일어난 날 아침으로부터 정확히 사반세기 후 같은 날 아침에 자신이 태어났다는 사실이 '사소하게' 자꾸 걸린다. '현재가 과거만큼 끔찍하거나 더 심하다면, 과거를 잊는 건 때때로 불가피한 일'이라고 치부하려고 했지만 '개 짖는 소리에 이어 강풍의 흐느낌 소리가 들려오고, 그 때문에 깨어난 어느 날 새벽' 결단을 내린다. 그녀는 결국 '점령의 함성과 지속적인 살해가 지배적인 곳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들과 비교했을 때 정말로 딱히 특별할 게' 없었음에도 그 사건이 일어난 이스라엘 점령지역인 사막을 향해 가짜 신분증으로 검문소들을 통과하며 위태롭게 간다. 그녀가 사막에서 마주친 군인들은 반세기 전 소녀가 만났던 병사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녀는 '잔디 한 포기를 뿌리째 뽑은 뒤 사람들이 그걸 완전히 제거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정확히 똑같은 종의 잔디가 사반세기 후에 같은 자리에서 자란다면 우리는 그 잔디에 대해서도 비슷한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끝나지 않는, 현재진행형의 '폭력'은 경중을 떠나서 어느 하나도 잊혀지거나 일상이 될 수 없다는 작가의 생각이 상징적으로 반영된 대목이다.
아다니아 쉬블리가 12년에 걸쳐 집필해 2017년 발표한 이 장편은 2020년 영역본으로 출간돼 같은 해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작 명단에, 2021년 '부커상' 국제 부문 후보작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영국 이스트런던대학교에서 '시각적 테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유럽과 팔레스타인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2005년 광주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위원회 초청으로 처음 한국 땅을 밟은 이래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하며 한국 작가들과도 활발하게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쉬블리와 함께 한국 작가들과 연을 맺어온, 시집 '우리는 새벽까지 말이 서성이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강)를 펴낸 팔레스타인 시인 자카리아 무함마드는 지난 2일 지병으로 타계했다.
하버드대학교에서 비교문학 박사학위를 받고 보스턴칼리지에서 강의하고 있는 역자 전승희 교수는 "나날이 폭력이 일상화되고 증폭되고 있는 오늘날의 현실에서 작가도 지적하다시피 누구라도 그런 현실에 무디어지지 않을 수 없지만, 그렇게 무디어지며 문제의 핵심을 놓치는 나태의 순간 우리는 손쉽게 그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가해자의 편에 가담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으로 다가왔다"면서 "우리 모두 도살장에 끌려가는 동료의 고통을 느끼는 염소만큼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자신의 고통을 자각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그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 새삼 최선을 다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고 썼다. 아다니아 쉬블리의 항변.
-염소도 다른 염소가 도살장에 끌려갈 때 그것을 알아차리는데, 사람이 (동료 인간에 대해) 그걸 못한다는 말인가?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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