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꿈 이루지 못한 부친의 '비애' 위무한 아들
허구에 기대지 않고 솔직하게 털어놓은 삶과 문학
"문학보다 중요한 건 주변을 살피며 살아내는 일" 소설가 백가흠이 신춘문예로 등단하던 날, 국어교사로 근무하는 아버지에게 학교로 전화를 걸어 소식을 알렸다. 금방 다시 걸었는데 아버지는 이미 학교에는 없었고, 집에 걸었더니 엄마가 전화를 받아 '야, 느네 아버지, 학교 조퇴하고 와서, 방에서 운다'고 전했다. 정작 문학에 목을 매고 살아온 사람은 아버지였다. 젊은 시절부터 품어온 꿈을 아들이 대신 이루었으니 자신이 해낸 일처럼 북받쳤을 것이다. 200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문단에 나온 이래 활발한 작품활동을 펼쳐온 백가흠이 첫 산문집 표제를 '느네 아버지 방에서 운다'(교유서가)로 정한 사연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생이 정리되는 느낌이에요. 이전 같으면 상처가 될 수 있는 일들이 이젠 조금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이번 책을 아버지가 엄청 좋아하세요. 저는 조금 민망했거든요. 원래 제목은 '아버지와 함께 탄 기차'였는데 이번 산문집에는 어머니 이야기도 같이 들어가서 이 제목이 좋겠다 싶었지요. 아버지가 '나도 마음껏 선물할 수 있는 책을 내줘서 고맙다'고 하시더군요. 아들 책을 당신 책처럼 '저자 아비가'라고 직접 사인해서 지인들에게 보내신답니다."
줄기차게 쏟아지는 폭우를 뚫고 대구에서 올라온 백가흠(계명대 문예창작과 교수)은 "소설은 남의 얘기를 남에게 전해주는 느낌이 컸는데 산문집은 진짜 제 얘기를 쓰는 것이라 썩 내키지 않고 조금 우울했다"면서 "책이 나온 뒤 부모님에게 바로 얘기도 안했는데 형제들까지 의외로 아주 좋아했다"고 전했다.
좀처럼 자신이나 주변 이야기를 소설에 투영하지 않던 백가흠이 이번 산문집 1부는 아예 가족 이야기에 할애했다. 문학청년이었던 아버지는 전주의 한 고등학교 국어선생이었는데 식솔을 먹여 살리기 위해 정년퇴임까지 40여 년 교편을 잡았다. 백가흠은 '우리는 잘 살아남았는데 아버지는 별로 남은 게 없어보였다'고 썼다. 그는 아버지가 쌓아놓은 책들, 아버지의 그 '비애'를 읽으면서 성장했지만 정작 문학의 길을 가려던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책들이 아주 싫었다. 책들과 경쟁해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 일인가. 하지만 우리 삼형제도 엄마도 어떻게든 책들과 경쟁해서 살아남아야만 했다. 엄마는 책들과 정면으로 대치하여 적으로 살아남는 현실적인 방법을 택했고, 우리는 아버지의 책들을 슬슬 눈치 보며, 읽으며 적절하게 살아남는 법을 터득해야만 했다. 그 책들은 아버지의 비애를 먹고 크는 것들이어서, 굉장히 불손하고 불온한 인생이었다.
이과생이었고 전기공학과를 지망했지만 떨어졌다. 아버지가 이때 개입해 아들에게 '문예창작과'라는 것도 있으니 지원해보라고 권유했다. 그렇게 아버지의 뜻에 따라 문학의 길로 들어섰고, 급기야 등단까지 하게 됐으니 소설가 백가흠은 아버지의 '성공작'이라고 해도 무방할 터이다. 대체 문학이란 것이 무엇이기에, 대를 이어서라도 충족시키고 싶은 꿈일까.
"문학의 길이라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성적이거나 논리적으로 해명이 되지 않고 숙명이라는 말밖에는 떠오르지 않아요. 슬프고 비극적인 감성들을 자꾸 떨쳐내고 싶어하면서도 그것에 매력을 느끼는 속성이 있는 것 같아요. 학생들에게 지금 해야 될 때 하라고 말하곤 하죠. 의도치 않더라도 결국 문학의 숙명이 덮치는 때가 오는데, 너무 늦으면 그 비애감이 더 커지니 그걸 다스리려면 용기를 내서 지금 하라고."
백가흠은 "초기에는 서사를 컨트롤한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고 오히려 서사가 어딘가에 모여져 있고, 길을 막 헤매다가 어떤 문을 열고 딱 들어갔는데 거기에서 본 이야기들을 이쪽으로 옮겨놓는 것 같은 느낌밖에 들지 않았다"면서 "작가로서 독자들에게 무엇을 크게 전달하기보다는 카메라 같은 역할을 수행했는데 40대 중반부터 쓰고 싶은 것을 쓰면서 마음이 편안해지고, 어느 정도 서사에 참여하는 과정을 걸어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마흔아홉의 내가 서른아홉의 나에게' 전하는 글에서 수업 중 소설을 발표한 학생에게 '신이 존재한다면 어디에 있을까' 물었다고 썼다. 작가와 화자의 관계를 설명하는 맥락이었는데 의아해 하는 학생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 하나님이 이 세상을 만들었다면, 하나님은 이 세상 밖에 있겠지. 밖에서 들여다보고 있는 걸 거야. 그러니 어디에나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 거겠지. 작가도 마찬가지야. 작가는 소설 밖에 있고, 어디에나 있는 신과 같아. 소설적 상황에는 관여하지 않고 그저 보고 있는 존재일 뿐이야.
백가흠 소설론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대목이다. 그는 이번 산문집 서문에서도 신의 존재를 거론하며 '무엇보다 이 세계 밖에서 여기를 지켜보고 있을 너그러움에 감사를 드린다'면서 '더불어 내 우주 밖에서 나를 들여다보고 있는 독자들에게도 축복을!'이라고 맺었다. 그는 "신이 있다면 인간이 가늠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의 개념 안이 아니라 바깥에 존재하지 않고서는 의문이 해결되지 않는다"면서 "마찬가지로 내 소설이라는 우주를 바깥에서 지켜보는 독자들 또한 저에게는 또 다른 신"이라고 했다.
대체로 백가흠의 소설은 어둡고 그로테스크한 인물들을 천착하는 흐름이었다. 그는 자신의 단편 '조 대리의 트렁크'에 등장하는 조 대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조 대리를 비롯해서 창조된 인물의 인생에 대해 골똘해지곤 하는데, 주인공이 처한 불행과 고통과 숙명을 정말로 내가 모른 척하고 나만 잘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각해지곤 한다'면서 '그들의 삶이 소설을 읽는 사람에게 어떠한 형태로든 위안을 준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고 썼다. 그는 '소설의 인물과 내가 운명으로 묶일 수밖에 없는 가장 확실한 이유이자, 우리가 공존해야만 하는 이유를 나는 믿는다'면서 '우리의 숙명인 것을 어쩌겠는가'라고 덧붙인다.
백가흠은 미륵사지 석탑 해체 과정에서 백제 무왕의 부인이 선화공주일 가능성이 희박해진 금판을 발견한 것을 두고, '서동요' 설화가 거짓일 가능성을 기껍게 받아들였다. 그는 '노발리스가 말했던 진실과 거짓의 중간지대를 찾는 일이 서동요 이후 1천5백 년이 지난 지금도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라고 썼다. 한 사람의 일방적인 사랑의 쟁취를 위해 소문을 내어 피해자를 만들어낸 것일 수도 있으니까 '서동요'는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굉장히 나쁜 문학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는 진실과 거짓의 중간지대가 필요한 것 같아요. 아무리 소설이라는 허구로 포장돼도 친한 사람들을 변형해서 쓰거나 고유한 에피소드를 가져오면 안된다고 학생들에게 말하곤 하죠.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정도로 소설이 대단한 건 아니라는 거죠. 그 중간지대는 독자들도, 소설 속 인물들도 모두 모여 위안을 받는 공간이었으면 좋겠어요. 그게 소설이었으면 좋겠어요."
백가흠의 이러한 문학관은 기실 뜨거운 '문청'이었던 부친과는 대조적으로 현실적인 삶의 태도를 보여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가르침일 수 있다. 전주 신흥고등학교 학생이었던 문학평론가 남진우가 문단에 나온 백가흠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어머니 안부를 물었다고 했다. 그 자리에서 남진우는 국어교사였던 백가흠의 부친이 그를 포함한 제자들을 집으로 불러 문학에 대한 열변을 토할 때 부엌에서 힘들게 설거지를 하던 모친 때문에 민망해서 일찍 나왔다는 에피소드를 곁들였다.
백가흠은 '문학은 그렇게 큰일이 아니고 그렇게 대단한 일도 아니다'면서 '일상과 정상의 범주 안에 깃든 보편성은 문학에 있어 가장 큰 덕목이라는 어머니 말씀, 틀린 말 하나도 없다'고 썼다. 다시 폭우 속으로 나서던 백가흠의 말.
"예전에 대학 은사는 문학은 목숨을 걸어도 좋은 대상이라고 했지만 저는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아요. 어머니가 했던 말씀이 딱 좋아요. 해보니까 목숨과 바꿀 수 있을 정도로 위대하고 영원한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사는 게 더 중요하고, 먹는 게 더 중요하고, 사람 사이의 관계가 더 중요하고, 내가 쓰는 글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걸 더 고려해야 하는, 이런 것들이 더 중요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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