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사업을 위한 '아트림' 설립, '동분서주'하며 편견과 맞서
너덜너덜해진 통장에도 "별과 희망 되는 아이들에 큰 행복" "아이가 친구들과 소통에 어려움을 겪었어요. '발달장애'라는 말에 하늘이 무너져 내렸죠. 하지만 아이는 어느 날부터인가 그림으로 외부와 소통하기 시작했어요. 문득 이 예쁜 그림이 쓰레기로 버려지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발달장애 화가 권한솔 군의 어머니이자 한국발달장애인연합회장 겸 '아트림' 대표 김경희 씨의 회고다.
발달장애는 특정 질환이나 장애를 말하진 않는다. 사회관계, 의사소통, 인지 발달의 지연과 이상에 대한 범용적인 용어로 쓰이는데, '장애'라는 단어에 편견 대상이 되기도 한다. 권한솔 군도 이른바 대표적인 발달장애로 꼽히는 '자폐스팩트럼', 드라마 속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같은 존재다.
김 대표는 아이의 더 큰 소통을 위해 아이의 '공모전'에 나섰다가 발달장애와 관련한 운명 같은 첫발을 뗐다. 그는 그 후 여러 해 한국발달장애인연합회와 '아트림'을 이끌며 고단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김 대표는 "몰라서 용감했고 그래서 여기까지 왔다"며 "벽에 부딪힐 때마다 '왜 나여야 하지'라는 회한도 있었지만, 희망을 찾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모든 게 감사로 바뀌었다"고 했다.
김 대표가 발달장애 공모전에서 마주친 이들은 또 다른 한솔이였고 또 다른 자신이었다. "그들은 섬처럼 외부와 단절된 채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수많은 이들을 보자 불현듯 무언가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싹텄다"고, 김 대표는 말했다. 그렇게 그는 무거운 봇짐을 스스로 등에 걸머쥐고 말았다.
그는 2015년에 발달장애 작가들을 지원하기 위해 '아트림'의 문을 열었다. 이후 그는 발달장애 작가들을 위한 다양한 전시와 사업화를 시도하고 있다. 현재 '아트림'에는 80여 발달장애 작가가 직간접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실 단체를 만들고 꾸려가는 건 쉽지 않다. 전국을 돌며 관계자들과 소통하고 설득하는 지난한 시간들을 보내야 했다. 차츰 그럴듯한 단체로 모습을 갖추자 여러 관련 기관과 손을 잡으며 하나둘 작은 꿈들을 펼칠 수 있었다.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보다 편견이었죠. 재정문제도 급했죠. 편견은 오랜 시간에 걸쳐 넘어야 할 사회가 만든 큰 산이었고 재정문제는 현실로 타개해야 할 거대한 장벽이었죠."
그는 숨이 벅차오를 때마다 아이들을 돌아봤다고 했다. "아이들의 예술성은 폭발하면 무한해요. 다만 이 아이들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와 똑같이 존중받길 원하죠. 물론 스스로 자기존중도 가르치고 있어요. 언제가 이 아이들도 사회의 일원으로 자립할 수 있을 거예요."
어차피 닥치는 '편견', 차라리 맞서는 게 낫다고 김 대표는 생각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지하철역 전시회였다. 하루 수만 명이 오가는 길목에 김 대표와 관계자들은 눈물을 훔치며 아이들의 그림을 걸었다고 했다. '발달장애 화가'라는 꼬리표에 동정이나 편견으로 작품을 보는 이가 많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오롯이 작품만을 보고 평가하는 이들이 늘기 시작했다. 그의 생각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그렇게 편견의 산은 조금씩 쓸려 내려갔다.
재정문제는 시급하고 현실적인 압박이었다. 사방으로 뛰었다.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마냥 기다릴 순 없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미술작품 '대여서비스'. 지금은 보편화됐지만, '미술품 렌털 서비스'는 당시엔 이름도 생소한 그들만의 도전이자 희망이었다.
"언젠가 아이들도 혼자 서야 해요. 영원히 보호자와 함께할 순 없죠. 작가들의 삶의 방편을 마련하기 위해 여러 방식을 시도하고 있어요." 240점이 장애인 공단을 통해 여러 곳에 대여할 수 있었다. 한 줌 희망이 싹튼 것이다. "지금은 대부분 지자체 산하 장애인복지관에서 미술 관련 수업이 생겨났어요. 열심히 뛰어다닌 성과라는 생각에 뿌듯했죠."
현재 '아트림'은 발달장애 작가 10명에게 매월 100만 원의 작가비를 급여처럼 지급하고 있다. 재정이 나아져서 그런 건 아니다. 발달장애 작가도 어엿이 작가로 대접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스스로 대접하지 못하면서 외부의 공정한 대접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너덜너덜해진 통장을 보면 한숨이 나오지만 그렇다고 멈출 순 없죠." 인터뷰 중 그는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현재 그와 상임이사들은 무급으로 활동하고 있다.
전시 가운데 2020년 예술의전당에서 첫선을 보인 'ACEP 2020 발달장애 아티스트 한국특별전', 이후 이어진 '드림어빌리티(Dreamability)전, '가까워지기(Getting Close)'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사실 처음엔 걱정이 많았어요. 혹시 전시장이 소란스럽지 않을까 하는. 하지만 그건 기우였죠. 아이들은 현장을 찾은 관객과 스스로 소통도 하고 어울렸어요. 특히 편견 없이 이들이 작품을 보는 관객이 느는 건 참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전시를 기획한 전수미 비채아트뮤지엄 관장은 "이제 이들이 보내는 소통, 우리와 다르지만, 사회가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때"라며 "이들의 특별한 전시가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선 안 되는 이유"라고 말했다.
최근 그는 아이들의 해외전시까지 힘을 쏟고 있다. 한-오 발달장애 미술가 교류전 '우리는 하나의 꿈으로 간다(Woori a Dream:We,Go)'가 지난 5월29~6월1일 오스트리아 비엔나 에코 코레스폰덴스 화랑에서 열렸다. 사회 관련 소재로 열린 이 전시에는 양국 총 44명이 참여했다. 이 가운데 한국 작가는 총 39명(강태원, 공윤성, 권세진, 권한솔, 김다혜, 김성민, 김소원, 김수광, 김예슬, 김재원, 김채성, 김태민, 김태환, 김한별, 문정빈, 박성연, 박혜림, 박혜신, 심안수, 양진혁, 여민서, 오원찬, 이동윤, 이세원, 이은수, 이진원, 이태윤, 장혜원, 정서연, 정성원, 정영은, 조성민, 조영배, 진리, 최봄이, 최원우, 최하영, 홍영훈, 가나다 순)이 출품했다. 이 가운데 10명은 직접 비엔나 전시장까지 찾아 관객과 소통하는 열정을 보였다.
"이번 전시는 아이들이 크게 성장할 기회였어요. 아이마다 '너무 좋아요, 다음에 또 해주세요'라고 하니 덩달아 신이 났죠. 12시간 긴 비행에도 아이들은 꿋꿋이 견뎌냈어요. 여러 아이가 서로 어울려 먹고 자고 이야기하는 등 무리 없이 공동생활도 이어갔으니 참 놀랍고 대견했죠."
권한솔 군은 최근 일반 작가 단체에서도 활동한다. 그만큼 경력도 쌓았고 인정받은 셈이다. 언젠가는 "꼬리표를 떼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단호한 어조로 답했다.
"꼬리표는 중요하지 않아요. 한솔이가 앞에 나섰으니, 그것도 아이의 운명이고 의무라고 생각해요. 한솔이를 보고 숨어있는 또 다른 한솔이와 부모가 용기를 낼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죠. 그래서 한솔이의 꼬리표는 후배들을 위한 길잡이인 셈이죠."
김경희 대표는 발달장애 아티스트들의 아트림(Art林)을 꿈꾼다. 발달장애 아티스트들의 예술의 전당 특별전은 오는 9월에 열린다.
KPI뉴스 /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jasonyim@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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