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억 '푼돈'에 발목잡힌, 조 단위 자산가 이동채 에코프로 회장

김기성 / 2023-05-15 15:36:30
미공개정보 이용 11억 취득 혐의로 2심서 법정구속
본인 소유 주식가치 2조, 특수관계인 합치면 3조5천
회사는 '전 대표이사'라며 선긋기…'눈가리고 아웅'격
"있는 X(사람)이 더 한다"라는 말이 있다.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이 더 인색하다는 뜻을 가진 표현이다. 어찌 보면 돈이 주는 효용성을 최대한 누리고 있어서 적은 돈의 중요성을 잘 알고, 그래서 적은 돈이라도 인색할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래도 큰돈을 가진 사람이 적은 돈을 탐내다가 구렁텅이에 빠지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에코프로의 이동채 회장의 얘기다. 

이동채 회장은 지난 11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항소심에서 징역 2년에 벌금 22억 원, 추징금 11억 원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10월 1심에서 받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35억 원보다 형량이 높아진 것은 물론 도주 우려가 높다는 이유로 법정구속까지 당했다.

▲ 이동채 에코프로비엠 회장 [UPI뉴스 자료사진]

항소심, "이 회장 도주 우려 있다"며 법정구속

이 회장은 지난 2020년부터 2021년 사이에 2차전지의 양극재 제조회사인 에코프로비엠이 SK이노베이션과 대규모 공급 계약을 맺을 때 이를 이용해 시세 차익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공급 계약 사실이 알려지기 전에 차명계좌 등을 이용해 에코프로비엠 주식을 샀다가 되팔아 11억 원의 차익을 챙겼다는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보다 무거운 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한 데 대해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부당이득을 챙긴 것은 시세조종 행위이고 일반투자자의 신뢰를 손상하는 중요범죄라고 판시했다. 또 법정 구속한 데 대해서는 실형이 선고된 이상 도주의 우려가 높다고 설명했다. 특히 기업의 총수이자 최종 책임자로서 책임이 무거운데 비해 1심 판결이 가벼운 것은 현저히 부당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판결문을 살펴보면 자산 총액이 5조 원이 넘는 기업 집단의 총수에 대한 것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워 보인다. 회사 이름을 가리고 읽어보면 주가조작으로 이익을 챙긴 어느 잡범 얘기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조 단위 자산가 이 회장이 11억 원 탐냈을까?

사실 어느모로 보나 이 회장이 11억 원 정도의 차익을 얻기 위해 미공개정보를 이용했다는 것은 언뜻 이해하기 어렵다. 이 회장의 에코프로 지분은 18.84%이다. 가족들의 지분을 포함한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합치면 27%에 육박한다. 에코프로의 시가총액은 현재 13조 원이 넘는다. 단순 계산으로 본인의 주식 가치가 2조 원을 넘고 특수 관계인의 것을 합치면 3조5000억 원에 육박한다.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시세 차익을 챙겼을 때의 주가가 10만 원 언저리라고 하더라도 당시에 본인 소유 지분의 가치가 수천억 원에 달했고 매년 수십억 원을 배당으로 챙길 수 있었다. 더구나 양극재의 대규모 공급 계약은 앞으로 회사의 가치를 몇 배나 더 올려줄 수 있다는 것을 이 회장 본인이 가장 잘 알았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 가질 수 있는 합리적 의심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챙긴 수익이 11억 원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많을 수도 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 회장이 11억 원 정도의 '푼 돈'에 도덕성을 저버릴 정도의 인물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 회장, 10여 년 적자 버티고 에코프로 키워

이동채 회장은 입지전적 인물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1959년 포항에서 태어나 대구상고를 졸업하고 한국주택은행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은행원 시절 영남대 경영학과를 야간으로 다녔다. 그러나 은행에서 대졸 학력을 인정받으려면 퇴사 후 재입사해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은행을 퇴사했다. 그리고는 삼성전자에 입사했지만 오래 다니지 않고 그만둔 뒤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따서 6년간 회계법인에 근무하기도 했다. 삼성전자 입사나 공인회계사 자격증 취득은 당시에도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만큼 지적 능력은 뛰어났던 사람이다.

창업의 꿈을 가지고 있던 이 회장은 1996년 모피사업에 손을 댔으나 실패했다. 그리고 1998년 두 번째로 에코프로를 창업했다. 처음에는 직원 한 명과 반도체 제조 공정에 필요한 소재를 생산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2004년 정부 주도로 추진된 2차 전지 개발 컨소시움에 참여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제일모직과 연이 닿아 양극재 원료가 되는 전구체 사업에 뛰어들게 된 것이다.

그런데 2006년 제일모직이 양극재 사업을 접으면서 전구체뿐 아니라 양극재 기술과 영업권을 에코프로에 넘기게 된다. 물론 당시에는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이후 에코프로는 10년이 넘도록 적자가 이어지는 어려움을 겪으면서 버텨온 끝에 양극재와 관련해 독보적인 기술력을 확보하며 2차 전지의 대장주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에코프로, 이 회장 선 긋기보다는 솔직한 사죄가 우선

에코프로의 주가는 이 회장의 법정구속 이외에도 여러 악재가 겹쳤다. 증권사들이 이례적으로 매도 리포트를 쏟아냈고 기대했던 MSCI 지수 편입도 불발됐다. 이에 따라 주가는 이제 주당 50만 원도 위협받는 수준이다. 최고가였던 지난 4월 11일 82만 원과 비교하면 40%에 육박하는 하락률이다. 물론 10만 원 초반 때였던 올해 초를 생각하면 아직도 거품이 많이 끼었다는 비관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에코프로에 투자한 개미 투자가들 입장에서는 불안이 증폭되고 있다.

그러자 에코프로는 이동채 회장에 대해 선 긋기에 나섰다. 이 회장이 구속되던 날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 회장이 대표이사에서 사임한 작년 3월 이후 에코프로는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이 회장의 공식직함은 '상임고문'이고 '전 대표이사'라고 밝혔다.

회사 이미지가 악화하는 것을 막고 주가 하락을 방어해보겠다는 의도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어차피 이 회장이 압도적 지분을 가진 창업주이고 형기를 마치면 다시 경영에 복귀할 것은 너무나도 뻔한 사실이다.

이 회장이 지분을 전부 매각하고 경영에서 손을 뗄 생각이 아니라면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그러지 않고 미봉책으로 상황에서 벗어나려 한다면 푼 돈에 발목 잡힌 기업 총수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KPI뉴스 / 김기성 대기자 bigpen@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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