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 없는 공정위의 한화·대우조선 결합심사 지연

김기성 / 2023-04-07 14:18:08
공정위의 경쟁 제한 우려에 전문가들 "가능성 없다"
방위산업 국제 경쟁력 위해 수직계열화 오히려 필요
대규모 수주전 앞두고 공정위가 휘둘린다는 비난도
지난달 31일 EU의 승인을 마지막으로 해외 7개국 경쟁 당국의 심사를 통과하면서 9부 능선을 넘은 것으로 보이던 한화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이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났다. 다름 아닌 안방 격인 우리나라 공정거래위원회가 문제를 제기했다. 공정위가 내건 명분은 군함에 들어가는 무기와 설비를 만드는 한화 그룹이 대우조선을 인수하면 수직계열화를 이뤄 군함 시장의 공정 경쟁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대우조선해양 로고, 한화그룹 본사 외관 [각사 제공]

전문가 "방위산업은 수직계열화에 따른 경쟁 제한 가능성 없어"

이러한 공정위의 우려에 대해 대다수 방산 전문가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방위산업은 일반 민간산업과 달리 수직계열화에 따른 경쟁 제한이 발생할 가능성이 없다고 지적한다. 방위사업법상 방산업체가 생산하는 무기나 설비는 정부 규격품이어서 다른 방산업체와 거래를 중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함정과 함정에 탑재하는 무기와 설비에 대한 원천 기술은 국가가 소유하고 있다. 따라서 입찰을 위해 필요한 자료는 모든 입찰 참가자에게 제공된다. 만약 부품 업체가 특정 조선소에만 기술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관련법상 방산기밀정보 유출에 해당하는 위법 행위다. 따라서 기업 결합 이후 관리와 감독을 통해 접근해야 할 사안이라고 지적한다.

정작 방위산업에 경쟁을 해치는 요소가 발생하면 1차 피해 당사자는 방위예산을 집행하는 방위사업청이다. 그런데 방위사업청은 이미 지난달 15일 방산업체 매매 승인 의견을 밝혔다. 방위사업청조차 한화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반대하지 않은 상황에서 공정위의 심사 지연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게 업계의 반응이다.

방위산업의 수직계열화는 세계적 추세

방산업체의 수직계열화가 오히려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영국의 BAE Systems를 비롯해 세계적인 대형 방산업체들은 이미 통합과정을 거쳐 수직계열화돼 있다. 이를 바탕으로 세계 무기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산 무기에 대한 해외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K-방산이 거론되고 있지만, 함정부문에서는 뒤처져 있는 게 현실이다. 중저가 연안 경비정 수출에 그치는 데다가 그마저도 우리 업체들끼리 과도한 수주 경쟁을 펼치기 일쑤라고 한다. 그런데 함정부문에서도 수직계열화로 효율성이 높아지면 가격이 낮아지는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국내에서는 방위비 예산이 줄어들 수 있고 해외에서는 수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이다.

미니 이지스함 수주전 앞두고 경쟁사의 발목잡기?

당장 올 상반기에 발주되는 최신형 호위함 수주를 둘러싸고 경쟁사들이 대우조선해양의 참가를 막기 위해 문제를 제기했고 이에 공정위가 휘둘리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방위사업청이 추진하고 있는 함정은 미니 이지스함으로 불리는 '울산급 배치-3'이다. 노후화한 호위함과 초계함을 대체하기 위해 3500톤급 최신형 호위함 6척을 건조하는 사업이다. 1번 함은 2020년 3월 현대중공업이, 2·3·4번 함은 작년 SK오션플랜트가 각각 수주했고 이번에 발주되는 함정은 5·6번 함으로 사업 규모는 최소 8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잠수함, 구축함 등 특수선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춘 데다가 한화그룹의 한화시스템은 2020년 한국형 차기 구축함의 전투체계와 다기능레이더 사업을 수주한 경험이 있다. 더욱이 이번 입찰에서는 방위사업청이 저가 수주 논란을 막기 위해 기술평가 점수를 높임에 따라 대우조선해양이 한화 계열사로서 수주전에 참가한다면 현대중공업과 함께 유력한 후보로 꼽히고 있었다.

한화는 애초 대우조선 인수를 추진하면서 함정을 비롯한 특수선 분야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계획했다. 하지만 공정위의 결합승인이 지연되면서 이러한 투자는 미뤄지게 됐고 함정 수주전에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결국 경쟁사에게 반사적 이익이 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공정위 심사 지연에 따른 잡음도 만만치 않아

공정위의 심사가 늦어지면서 잡음도 이어지고 있다. 공정위는 전문가와 업계의 문제 제기를 의식해 지난 3일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열어 한화 측에 시정방안을 마련해 제시하라고 요청했다면서 심의 경과에 대해 이례적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한화는 공정위로부터 경쟁 제한 우려를 해소할 시정방안에 대해 제안받은 바 없다고 반박해 파문이 일었다. 때아닌 진실공방이 벌어진 것이다.

이런 가운데 산업은행까지 나서서 결합심사가 늦어지는 데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산업부가 한화그룹이 대우조선을 인수하는 데 대해 이미 매매승인을 완료했고 방산은 구조적으로 최종 수요자인 정부가 기술과 가격을 관리한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우리 조선산업은 모처럼 수주 호황을 맞아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다. 주인 없는 대우조선해양이 단기적 수주에 급급해 조선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저해했던 것을 감안하면 하루빨리 주인을 찾아서 조선산업의 생태계를 완비하는 것은 아무리 서둘러도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KPI뉴스 / 김기성 대기자 bigpen@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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