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내 상여금은 와 못 주는데예!"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2023-04-05 12:06:17
'노동과 우리' 주제 단편·에세이 묶은 '긋닛' 3호
소설 민병훈 천현우 한유주, 에세이 이상헌 참여
생생한 노동현장, 일의 본질, 커뮤니티 돌아보기
"일하다 눈물 나면 찾아갈 '푸른 못' 같은 소설 기대"
특정한 주제를 중심으로 계절별로 에세이와 단편소설을 묶어내는 소설잡지 '긋닛' 3호가 나왔다. 지난달 출간된 이 잡지의 주제는 '노동과 우리'. 이상헌의 에세이와 민병훈 천현우 한유주의 소설이 수록됐다. 정부가 노동시간을 더 늘리는 방향으로 근로시간 개편을 추진하는 것을 둘러싸고 논란이 많은 가운데 문학이 '노동'을 소화한 경우여서 특별히 눈길을 끈다.

▲20대를 공장에서 용접을 하며 보낸 '청년공' 천현우. 지난해 자신의 삶을 기록한 '쇳밥일지'를 펴낸 그가 첫 단편소설을 발표했다. [천현우 제공]

천현우의 단편은 작금의 노동 현장을 생생하게 직면하고 있다. 천현우는 20대 청춘을 용접공으로 노동 현장에서 보내며 지난해 '쇳밥일지'를 펴내 낯이 익은 필자. 그가 이번에 처음으로 발표한 단편 '임자'는 작은 규모의 하청 공장을 무대로 사용자의 입장에서 서사를 전개하면서 모순된 이면을 신랄하게 드러내는 내용이다. 인천남동공단에서 자동차 하청공장을 운영하는 쉰다섯 살 차봉필과 직원의 말.

-그놈의 쉰두 시간! 회사 바쁠 땐 쉰두 시간이 아니라 백 시간도 모자라. 돌관 몰라 돌관?
-요즘 원청 분위기 살벌합니다. 들어보니까 공단 곳곳에 프락치 뿌려놨다고 들었습니다. 밤에 공장 불 켜져 있으면 얄짤없이 거래 끊어버린다고 합니다.
-그거 노조 놈들 짓이지? 하여튼 나라 망치려고 안달난 빨갱이들이 정권 잡으니까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지. 젠장!

알고리즘이 인도한 '민주노총 북한과 내통 공작 드러났다!' 같은 영상을 보면서 잠드는 차봉필은 진심으로 대한민국이 공산화가 되어간다고 생각했다. '김정은의 지령을 받은 간첩들이 대통령을 몰아내더니, 이젠 자유롭게 일할 자유까지 침해한단 말인가, 하지만 나라가 빨갱이들 손에 떨어져 적화통일이 이루어진다 해도 미싱은 돌아가는 법'이라며 차봉필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차봉필은 지독한 현실주의자로 중졸 학력으로 자동차공장 사환부터 시작해 지금 자리까지 일구어낸 '산업역군'이었다.

가뜩이나 일손이 달리는 상황인데 기계공고 현장실습생으로 들어온 조민우가 무단결근을 했다. 성실하고 일머리가 빼어난 친구여서 산업기능요원으로 여기서 일하면서 돈도 벌고 군대도 해결하라고 '감언이설과 애걸복걸 사이를 오가다' 간신히 그를 유치할 수 있었다. 그런 녀석이 빠지니 당장 기일 내에 물량을 납품하는 데 차질이 생길 상황이다. 차봉필이 직접 주소를 들고 조민우의 집까지 찾아 나섰지만 골목에서 맞닥뜨린 녀석은 줄행랑을 친다.

사직서를 들고 회사에 나타난 조민우를 붙들고 사정을 물어보니, 상여금을 자신에게만 주지 않았다는 것이 큰 원인이었다. 규정대로 그는 근속 1년에서 보름이 모자라 제외한 건데, 술자리에서 호기롭게 약속했던 것이 문제였다. 다시 조민우를 달래보지만 그는 상여금을 약속대로 주면 생각해보겠다는 입장. 차봉필은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이 부분은 원칙대로 합시다"며 돌아선다. 이 장면을 지켜보는 대리 임죽림의 생각. '원칙이라면 할 말이 훨씬 많은 쪽은 단연 조민우였다. 당장 현장실습생 시절부터 지금껏 사측에서 위반한 사항이 노동법 사례로 A4용지 한 장을 가득 채우고 남았다.' 원칙을 외치는 차봉필에게 속이 뒤집어진 조민우가 외친다. 


-원칙요? 그럼 사장님 딸은 뭔데예?
-뭐, 뭐? 내 딸은 왜 걸고 넘어져?
-딸은 일도 안 시키고 월급 타가게 함시로, 내 상여금은 와 못 주는데예!

차봉필 사장의 맏딸 차혜원. 이른바 좋은 대학을 나오고도 백수 신세여서 어차피 놀 거면 이름을 올려놓고 월급이나 타가라고 한 덕에 유령사원이 된 지 1년 2개월. 차혜원은 회사 문턱 한 번 안 밟고 월급을 꼬박꼬박 타가다가 이번에 상여금까지 받았다. 급소를 찔린 차봉필, '어디 어린놈이 주제도 모르고 남의 가정사를 건드리느냐'며 '저 후레자식' 보내고 당장 신입사원 알아보라며 고래고래 소리친다.

대학 입학을 둘러싸고 자신의 아들과 조민우를 대하는 사장의 이중성은 더 강한 여운을 남긴다. 조민우에게는 그토록 일을 시키려고 더운 날 땀을 흘리며 그의 집까지 찾아나서지만,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자기 아들은 기를 쓰고 대학에 가야 한다며 기숙학원에 월 400만원씩 들여가며 강제로 몰아넣는 차봉필이다. 아들이 끝내 학원에서 뛰쳐나와 아빠 회사에 들어가 일 배우면 안되냐고 묻자 차봉필은 대경실색, 소리친다. '야 이 새끼야. 그걸 말이라고 씨부려!' 그를 말리는 아내에게도 소리친다. '그럼 자식새끼 우리처럼 쇠 깎고 붙이는 일 시켜? …웃기지 말라 그래. 앉아서 공부하는 거만큼 편한 게 어딨어! 대학 안가겠다고? 평생 백수로 살고 싶어?' 누나는 대학 나오고도 백수 아니냐고 아들이 대들자 이번에는 딸이 나와서 왜 자신에 시비냐며 남동생과 싸운다. 차봉필이 회사로 도망치듯 나오면서 던지는 말. '이놈의 개 같은 집구석!'

스무 살 때부터 창원의 공단을 이곳저곳 돌아다녔다는 천현우는 "대기업 하청을 전전하다 문득 깨달은 점이 있었으니, 사장님들의 캐릭터가 어째 비슷비슷했다"면서 "말은 호방하게 하지만 행동이 어째 소시민스러웠는데 알고 보면 사장님들은 전부 정규직 노동자 출신이더라"고 후기에 썼다. 그들은 "경제 성장률 최전성기에 삼십 년씩 대기업에서 일하다보니 어엿한 중산층이 됐지만, 사는 방식은 여전히 그 시절에 머물러 있다"면서 "나도 차봉필 같은 상황이었다면 차봉필처럼 살겠구나"라고 짐짓 연민을 보인다. 천현우의 단편은 사용자와 노동자 어느 한 편을 이분법적으로 편들기보다는 생생한 현장을 보여주면서 독자에게 판단을 맡기는 미덕이 크다.

▲반복되는 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그들이 하지 않은 일들'과 새로 조성된 외곽 시가지 풍경을 담은 '커뮤니티'를 각각 발표한 소설가 민병훈(왼쪽)과 한유주. [민병훈·한유주 제공]

민병훈의 '그들이 하지 않은 일들'은 공항에서 새를 쫓는 일에 복무하는 인물을 내세워 일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단편이다. 활주로에 이착륙하는 비행기들이 새와 충돌하는 참사를 막기 위해 공포탄이 든 총을 들고 일을 하는 화자는 중얼거린다.

-활주로를 떠난 여객기가 흰 점처럼 보이면, 근무시간이 끝이 났다. 오늘도 말해야 한다. 그만두겠다고.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 무슨 일을 하시나요. 새를 쫓습니다. 아니, 그보다 아무런 성취도, 보람도 느낄 수 없었다. 그런걸 느껴야 돼? 그렇다고 급여를 포기한다고?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자꾸 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인간보다 효율적으로 새를 몰아내는 로봇 매 '팔콘'이 등장하면서 무의미한 반복처럼 다가오던 그의 일이 줄어든다. 정작 이런 상황에 직면하자 팀장과 그의 동료들은 늘어난 여가를 주체하지 못해 안절부절못한다. 은퇴한 후 노후 걱정은 없는데도 대추농장을 꾸려 일을 자청하는 아버지는 '지난날에는 느끼지 못한 무언가를 감각하고' 있었다. '팔콘'에 익숙해진 새들이 로봇을 비웃듯 다시 자유롭게 날아다니자 본디 업무량을 되찾은 팀원들을 보고 팀장이 하는 말. '일을 해야 잡생각이 없지.' 화자 역시 막내에게 '일을 하지 않을 때에도 일에 대해 생각했다'고 말한다. 독자 역시 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단편이다.

한유주의 '커뮤니티'는 새로 조성된 외곽 단지의 풍경을 화자의 의지를 개입시키지 않고 스냅사진을 펼치듯 전개하는 단편이다. 여자에게 엉뚱하게도 종말론을 선전하는 책자가 배달돼 오고, 여자는 프라이버시가 걱정돼 경찰서에 책자를 들고 신고하러 가는 여정에 눈에 보이는 풍경을 그대로 드러내는 방식이다. 택배기사, 유모차, 학습지회사 영업사원, 무인 아이스크림 판매점의 아이들이 차례로 흘러간다. 반려견에 사람 이름 '지훈이'를 붙인 상원. 그는 지훈이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간다. 지훈이를 만난 뒤로 상원은 여행을 간 적이 없는데, 병원에서 만난 대부분의 보호자들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커뮤니티를 무심하게 관찰하는 시선으로 낯설게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게 만드는 단편이다. 한유주는 "몇 달 전 신도시로 이사한 친구네 집에 갔다가 네모반듯하게 구획된 겉보기에는 평화롭고 안정적인 지역에서 수십 년 살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생각하다 쓰게 된 글"이라며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보내는 한낮의 일부는 이런 풍경이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후기에 붙였다.

▲이상헌 국제노동기구 고용정책국장. 그는 "너나없이 일하다가 눈물 날 일 있으면 찾아갈 수 있는 '푸른 못'이 우리시대의 소설이었으면 좋겠다"고 에세이 '푸른 못, 마르지 않는 눈물'에 썼다. [이상헌 제공] 

통상 문예지의 경우 그 호의 주제를 정하고 특집 형식으로 딱딱하게 다루지만 '긋닛'은 관련 에세이를 내세우는 것으로 주제를 안내한다. 이번호 에세이는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이 한국 최초의 노동소설인 강경애의 '인간문제'(1934)를 붙들고 오늘의 현실을 이야기하는 '푸른 못, 마르지 않는 눈물'이다.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의 눈물이 모이고 모여 만들어진 푸른 못을 찾아가면 괴로운 일을 겪을 때마다 무슨 연유인지 위로를 얻고 힘을 얻었다는 전설을 모티브로, '선비'라는 여성 노동자의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담은 소설이다.

이상헌은 "인천 방적공장에서 선비가 밤새 떨리는 마음으로 몰래 돌린 전단에 적혀 있던 '불온한' 내용이 이제는 헌법에 버젓이 적혀 있다"면서 "하지만, 크게 적혀 쉽게 보이는 것들은 때론 기만적"이라고 기술한다. 21세기에도 비정규직과 정규직으로 일터는 분열돼 있고, 청년에게 기회는 주지 않으면서 더욱 노력하라는 '수천 년 묵은 꼰대질'은 계속된다는 것이다. 일터에서 죽는 이들이 여전한 것은 가장 가슴 아픈 일이다. 이밖에도 여러 노동 현실을 적시한 이상헌이 마무리하는 대목에서 작금의 '소설'에 바라는 대목은 작단의 '직무유기'를 아프게 돌아보게 한다.

-온갖 빛으로 반짝이는 21세기 디지털 시대에도 노동의 눈물은 마르지 않을 것이다. 눈물을 모아서 힘으로 키우고 그 힘으로 눈물을 닦아주는 고단하고 때로는 기운 넘치는 과정은 끝 모르게 계속될 테다. 그래서 바라건대 '푸른 못' 하나 있어라. 너나없이 일하다가 눈물 날 일 있으면 찾아갈 수 있는 곳. 그 못에 내 눈물 하나 보태고 더 깊이 들여보다 그 밑에 수만 년 쌓인 푸른 눈물의 힘으로 돌아오면 좋으리라. 나는 우리 시대의 소설이 그런 '푸른 못'이었으면 좋겠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 문화부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