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거리는 고요' '순례'…피폐한 삶 위무하는 글
불멸의 '고요'를 찾아 평생 걸어온 문학이라는 길
"스스로 내다버린 내 안의 '작가'를 기다리는 중" 소설가 박범신이 등단 50주년을 맞아 산문집 2권을 동시에 펴냈다. 1973년 단편 '여름의 잔해'로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나온 이래 왕성한 작품활동을 펼쳐온 그가 문학 바깥으로 나가 자신의 삶과 정체성을 들여다본 글들이 담겼다. 도서출판 '파람북'에서 펴낸 '두근거리는 고요'와 '순례'가 그것.
'두근거리는 고요'에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발표해온 글들이 담겼고, '순례'에는 히말라아야 산군과 티베트 카일라스, 산티아고 길을 걸으며 길어올린 상념들이 진설됐다. 자본주의의 욕망에 피폐해진 삶 속에서 진정한 행복과 절대적인 '고요'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숙고한 사유들이 산문시처럼 흐른다. 북한산 보현봉으로 오르는 길목 외딴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작가로 데뷔한 지 올해로 꼭 50년이다. 소설쓰기는 나에게 늘 홀림과 추락이 상시적으로 터져 나오는 투쟁심 가득 찬 연애와 같았다. 먼 것과 가까운 것, 영원과 찰나, 그리운 것과 부족한 것들이 내 안뜰에서 매일매일, 격렬히 부딪치고 껴안고 또 아우성치며 찢어졌다. 더러 황홀했고 자주 무서웠고 많은 순간은 끔찍했다. 영영 익숙해지지 않았다. 수십 권의 소설을 써왔지만, 돌아보면 단 한 번의 미친 연애로 시종해 온 것 같은 세월이었다.('두근거리는 고요'_작가의 말)
-50년 동안 달려온 소설쓰기가 한바탕 '미친 연애' 같았다고 돌아보았다.
"돌아보면 어떤 근원적인 본능 같은 것을 10대에서부터 계속 안고 살아온 것 같다. 데뷔 50주년인데 문학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이번 산문집들은 의미 있는 책이다. 내가 한 인간으로서 갖고 있었던 번뇌의 집합과 평생 문학으로 싸워오면서 문학 순정주의적 이데올로기를 열렬히 신봉하는 뜨거운 작가로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순례' 교정을 보면서 그거보다는 더 근원적인 그리움을 좇아서 가는 여정의 다양한 길 중 하나가 문학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잣거리에 몸이 박혀 있으면서도 나의 영혼은 어떤 구도의 길을 따라서 평생 살아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원하는 불멸의 '고요'를 얻기 위해 소설로 투쟁하듯 사투를 벌여왔지만, 결국 손에 잡히지 않는 그것 때문에 나 자신과 불화하며 힘들게 지나온 세월이었다."
-'두근거리는 고요'는 어떤 의미인가.
"내가 평생 그리워한 것은 불변하는 어떤 고요, 불멸 같은 것이다. 불멸이라는 것은 영원히 고요한 어떤 것인데, 일종의 영원한 허공이고 변화되지 않는 최고의 가치이다. 나는 그걸 지향하면서 평생 동안 두근거리며 살아왔다. 그 두근거린 것의 기록은 모두 내가 써온 소설에 있는 것 같다. 가슴 두근거리고 설레고 불안했던 것이 문학을 했던 박범신을 잘 반영하고 있고, 고요라는 말은 그냥 근원적인 인간으로서의 내 정체성을 잘 반영하는 낱말로 보인다. 두근거리는 것은 일종의 파동이다. 숨결 소리나 설렘 같은 거. 그 파동이 바람을 만들어낸다."
타고난 역마살 때문인지, 한때는 거의 매년 히말라야로 트레킹을 떠나곤 했다. 카일라스, 킬리만자로, 캅카스산맥 등을 순례하기도 했으며, 아메리카, 시베리아를 횡단한 적도 있었다. 늘 배낭을 서재 한쪽에 놓아두고 지냈다. 배낭을 보면 가슴 속에서 언제나 막 바람이 불었다. "나는 바람이다. 이야기하는 바람이다." 남몰래 중얼거리는 날도 많았다. 대체 나는 평생 무엇을 품고 살았단 말인가.('순례'_서문)
-'이야기하는 바람'은 어떤 바람인가.
"나는 불멸의 고요에 머물 수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나는 끝없이 어떤 파동에 의해서 움직이고 밀려나가는 역동적인 기질이다. 어떤 정신이나 정파, 학문 장르에 머물러 있지 못한다. 나는 그걸 콤플렉스처럼 느끼는데, 어쩌면 나의 중심을 평생 껴안지 못했다는 느낌이 든다. 내가 원하는 나의 중심은 늘 그리워해 온 그런 '고요'인데, 바람처럼 머물지 못하고 그 주변을 맴돌았다. 이런 것들을 학문적인 문장으로 말하기가 어려웠고, 이야기라는 방법으로 풀어 왔다. 그동안 써 온 수십 권의 소설이 지금 생각하면 동어반복을 한 것은 아닐까 싶지만, 근본적으로는 고요한 불멸의 세계에 닿고 싶은 그런 파동에 대한 비명 같은 것이다. 어떻게 소리를 질러야 할지 모르니까 이야기라고 하는 구조에 기대어 써온 것이다."
박범신은 1990년대 초반까지는 '불의 나라' '풀잎처럼 눕다' 같은 대중 독자들로부터 특히 각광을 받은 장편소설로 인기를 누렸다. 그는 1993년 일간지에 소설을 연재하다 돌연 절필을 선언하고 잠적했을 때의 심정을 이렇게 회고한다.
문학은 과연 어느 제단에 바쳐져야 하는 것인가. 나는 작가로서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독자가 생각하는 작가로서의 나와 내가 생각하는 작가로서의 나는 또 얼마나 멀리 유리되어 있는가. 언필칭 '절필'했을 때 나의 고통은 문학과 삶과 대한 이런 식의 근원적 문제들과 강력히 맞닿아 있었다. 나는 분열되었고 분노에 사로잡혀 있었으며 자학의 깊은 수렁에서 빠져나올 길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돌이켜보건대 그 '침묵의 3년'이야말로 역설적으로 글쓰기에 대해 가장 강렬한 열망에 사로잡혀 있던 시기였다.
그는 당시 3년 만에 '흰 소가 끄는 수레'를 발표하며 다시 돌아온 뒤로는 이른바 '갈망의 3부작'으로 일컫는 '촐라체' '고산자' '은교'를 비롯해 자본주의 세계 구조를 비판한 3부작 '비즈니스'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소금' 등을 통해 그가 지향하는 예술가 소설의 길을 걸어왔다. 줄기차게 걸어온 소설 쓰기에 그는 근년 들어 '비이성적 환멸'을 느끼는 중이라고 고백한다. 자발적 신명이 사라진 폐허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산문집에 그 무력증의 계기가 된 '사건'의 배경에 대해 에세이 형식으로 처음 털어놓았다. 그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나면서 썼다.
창조적 불꽃으로 애오라지 타오르고 싶었으나 소소한 온정과 연민을 버리지 못해 결과적으로 자신을 기만하며 산 죄는 얼마이고 '문학순정주의'를 부르짖어왔으면서도 창조적 권력으로까지 그것을 밀어 올리려는 작가적 헌신이 부족한 죄는 얼마이겠는가. 오해하지 말라. 남들을 탓하거나 세상을 원망하고 싶지는 않다. 모든 걸 호도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이 모든 나의 말들은 그런 관점에서 떠날 길을 앞두고 중얼거리는 한 인간의 방백으로 읽는 게 좋다. 모든 문제는 지금 이 순간 오롯이 나 자신의 내적 문제로 되돌아와 있으니까.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면 그의 묘지를 남몰래 내 가슴 속에 조성한다'는 구절, 인상적이다.
"아직도 나는 여전히 묘지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갈수록 늘어나는 건 묘지뿐이다."
최근 아주 오랜만에 단편의 초입 몇 장을 썼노라고 조심스럽게 밝힌 박범신은 이 소설의 무대로 설정한 북한산 초입 카페에서 보현봉과 문수봉 사이 허공을 올려다보며 "막연하지만 내가 스스로 내다 버린 '작가'가 나에게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가 '순례' 마지막에 적어 넣은 기도 같은 서원.
만약 내가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고 해도 사랑하는 이여, 나의 죽음을 결코 차갑게 여기지 마소서. 내가 태어날 때와 내가 죽을 때를 구별하지 마소서. 혹 슬플지라도 '환하고 따뜻한 슬픔'으로 나를 느끼소서. 내 평생 따뜻한 물로 흐르며 살기를 간구했으니, 갓 낳은 달걀을 두 손으로 쥐었을 때처럼, 탄생처럼, 죽음으로 떠나는 나의 영혼도 부디 따뜻한 파동으로 느끼소서.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