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퇴직·직역연금과의 관계 재정비 등 구조개혁 불가피
퇴직연금 통합, 노동자·금융업계·미가입사업장 반발 예상
"소득대체율 50%는 돼야 공적연금 기능…노인빈곤율도↓"
국민연금 개혁은 대선 공약이었다. 여야 후보 모두 약속했다. 갈 길은 멀다. 공회전하다 이제 겨우 시동이 걸렸을 뿐이다. 게다가 안갯속이다. 윤석열 대통령 임기 안에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국민연금에는 '용돈연금', '세대착취', '기금고갈','제도붕괴' 등의 부정적 이미지가 덧씌워져 있다.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불신이 크다. 이런 불신을 해소하고, 저부담·고수익 구조 탓에 미래 세대에게 지워질 부담을 덜어주는 게 연금개혁의 가장 중요한 목표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연금보험료를 올려서 연금기금의 재정안정 방안을 마련해도 지금처럼 심각한 노인빈곤을 완화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인가. 재정안정과 더 확실한 노후보장은 상충하는 목표다. 눈을 돌려 더 큰 그림을 봐야 한다. 그러면 모두를 만족시킬 돌파구를 찾을 수도 있다. 국민이 내는 세금과 사회보험료의 역할분담을 재정립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공적연금제도의 구조조정, 연금 사각지대 해소, 노후보장 강화 등 과제를 제시하고 해법을 모색해 본다.

국회 국민연금특별위원회(연금특위)의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답보상태에 빠졌다. 현재 진행되는 연금개혁 과정에서 지금까지 가장 확실한 공감대는 낸 돈보다 대략 배가량 더 많이 받아가는 수지구조를 고쳐야 한다는 당위성 정도다. 지금보다 보험료를 얼마나 더 내야 할지, 연금 수령액도 올릴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뒤로 미뤄졌다.
연금특위 산하 민간자문위원회는 지난달 8일 연금개혁특위 양당 간사로부터 보험료율보다 연금 구조개혁이 먼저라는 입장을 전달받았고, 이에 공감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연금구조개혁은 연금의 제도의 틀 자체를 변경하는 것을 말한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국민연금과 퇴직연금 간의 관계 재조합, 공무원, 군인 등 특수직역연금과 국민연금의 통합 등이 이에 해당된다.
재정안정이 우선이냐, 소득보장이 우선이냐
연금개혁에 대한 입장은 크게 보장성 강화론과 재정안정론으로 나뉜다. 전자는 급여수준 향상을, 후자는 재정적 지속가능성을 우선시하는 입장이다. 두 입장은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올릴 것인지 여부를 놓고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지금의 완고한 정치적 진영화와 어느 정도 닮아 있다.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추계위)는 지난 1월27일 현행 제도가 유지될 경우 국민연금기금의 고갈 예상 시점을 5년 전의 2057년에서 2055년으로 2년 앞당겼다. 지난해 0.7명대로 떨어진 출산율이 가장 큰 변수였다. 이에 따라 70년 후에도 최소한 1년 치 연금을 지급할 정도로 국민연금재정을 맞추려면 2025년부터 당장 보험료율을 현재 9%에서 17.86%로 올려야 한다고 추계위는 밝혔다. 5년 전에는 그 보험료율이 16.02%였다. 재정안정론자들은 따라서 소득대체율을 올리려면 보험료율은 20%를 훌쩍 웃도는 수준으로 올려야 할 것이라며 이는 비현실적이라고 주장한다.
재정안정론자들은 소득대체율을 올리더라도 그 혜택은 주로 중상층 가입자에게 돌아갈 뿐 대부분 노령연금을 못 받는 빈곤층 노인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또한 국민연금에 국가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면 소득대체율을 높이기보다 저소득층과 지역가입자들을 대상으로 보험료 인상분의 일부를 지원하는 게 노인빈곤 완화에 더 큰 도움이 된다고 본다.
반면 보장성 강화론자들은 국민연금기금을 그렇게 쌓아두고 운영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대부분 나라들은 연금기금에 약간의 완충자금만 둔 채 가입자들이 낸 보험료로 연금을 바로 지급하고 있다. 예를 들어 독일은 3개월분의 연금만 보유하고 있지만, 연금 지급이 밀린 적이 한 번도 없다.
또한 현재의 노동세대가 두 세대 후의 자녀를 위해 기여율 인상을 감내한다고 하면 그들의 가처분소득이 줄어 우리 경제의 내수가 더 위축된다. 게다가 국민연금은 지금 세계 제3위 규모의 거대한 공적 기금이다. 따라서 국가경제에 비해 너무 큰 규모의 국민연금 기금은 해외자산에 대한 투자를 늘릴 수밖에 없는데 국내 소비를 줄여 쌓은 돈이 해외로 빠져나가 경제운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찬섭 동아대교수는 지난 9일자 오마이뉴스에 다음과 같이 썼다. "경제가 축소 운용되면 미래세대에 더욱 위축된 경제를 남겨주게 된다. 물론 기금을 더 많이 쌓으면 해외로부터 수익이 들어올 것이다. 그러나 미래에 (2080년 연금지출로) GDP 대비 9.4% 정도만 부담하면 될 것을 거대한 기금을 쌓아서 그 수익으로 해결하자고 하는 것이 미래세대에 정말 이로운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장기적 인구동태 추계는 점성술에 불과
올해 초 나온 추계위의 제5차 예측은 합계출산율이 지난해 0.73명에서 2046년 이후 1.21명으로 안정화된다는 가정을 바탕으로 이뤄졌다. 추계위는 시산을 위해 2021년 통계청이 발표한 '장래인구추계(2020~2070년)'의 중위 가정을 적용했다. 보기에 따라서는 너무 낙관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비관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대체로 30년~40년 이후의 인구동태 추계는 점성술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신빙성이 낮기 때문이다. 1990년대까지도 우리나라 정부는 지금 같은 초저출산을 예측하지 못한 채 산아제한 정책기조를 유지했음을 상기해 보라.
모든 동식물은 생존과 번식이라는 두 목표를 지향한다. 동물들이 서식지의 환경과 먹이 사정뿐만 아니라 동종의 개체수도 감안해서 번식 주기와 번식 개체수를 조절한다는 사례는 많이 알려져 있다. 즉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인구가 밀집한 곳일수록 출산율이 낮다는 것은 통계적으로 입증된다. 서울의 평균소득이 높고 일자리가 많은데도 출산율은 전국 평균보다 크게 낮다.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에서 한국전쟁 이후 다산을 촉진한 요인이 무엇인지 아무도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 잿더미 속에서 거의 모든 국민이 가난했고, 미래에 대한 전망이나 희망도 최악이었던 시기에 출산율이 그토록 높았던 것은 인간 자신도 모르는 생물학적 기제, 유전자의 명령에 따른 행동이 아니었을까.
앞으로 50년 이전이나 이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알 수 없다. 기후위기로 인한 재앙이나 전쟁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그 후에는 출산율이 급격히 높아질 수도 있다. 코로나 19처럼, 혹은 그보다 훨씬 더 노인들에게 치명적인 전염병이 돌지도 모른다. 인구구성비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구조개혁의 역할: 퇴직연금에 기대 걸만 하지만 노동계와 금융산업의 반발 우려
모든 변수를 다 감안해도 적정수준의 보험료율 인상은 시급하다. 다만 기금고갈을 시점을 억지로 늦추기 위해 보험료율을 대폭 높이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더 큰 그림을 보는 게 중요하다는 전제 아래 기본소득 등 다른 새로운 복지제도 재원이 마련된다면 보험료율을 높이지 않거나 미세조정만 하는 게 바람직스럽다. 국민들은 오르는 사회보험료만 내는 게 아니라 오르는 세금도 내야 한다. 모든 노인이 국민연금이나 최저보장연금을 받고, 기본소득도 받게 되면 소득대체율을 높일 필요도 없다. 그러나 재정 개혁은 현재 정부와 국회의 의제에 올라와 있지 않다.
공적연금 제도 안에서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연금 구조개혁이 긴요하다. 특히 퇴직연금의 도움과 특수직역연금과의 통합이 요구된다. 이런 과제에서 성과가 동반되지 않으면 국민연금 보험료율의 대폭 인상, 13~15%로 인상이 불가피할 것이다.
현재 민간자문위원회에서도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의 통합, 또는 퇴직연금의 부분적 공적연금화 방안들이 논의되고 있다. 퇴직연금(급여의 8.33% 적립) 전체나 절반을 또 다른 공적연금화하거나 국민연금Ⅱ로 운용하는 방안이다. 이러면 국민연금 보험료율이 저절로 올라가는 셈이다. 중도 인출을 금지하는 장치를 마련하면 소득대체율도 크게 올라간다.
한국사회에서 퇴직금은 근로자들이 내 집 마련 등 생애 전환기에 필요한 목돈을 마련하기 위한 후불제 임금으로 그 성격이 굳어졌다. 이를 연금화하는 것에 대한 노동자들의 반발이 거셀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지난 20여 년간 한 직장의 평균근속연수가 짧아지면서 일시불 수령을 금지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금융업계도 10년 후 860조원 규모로 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퇴직연금 시장을 쉽게 포기하려 하지 않을 것이 뻔하다.
지난해 말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퇴직연금통계에 따르면 퇴직연금 가입사업장은 전체 대상의 27.1%에 불과하다. 퇴직연금을 공적연금화해도 혜택은 소득상위계층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공무원, 교원, 군인 등 특수직역연금제도를 국민연금과 통합하는 과제도 절실하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보다 개혁이 더 시급한 것은 직역연금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국민연금 재정 문제는 2055년 이후인 '미래형'인 반면 공무원연금 등 직역연금 기금은 이미 수십 년째 적자라는 점에서 더 심각하다는 평가다.
연금 구조개혁 성과 못내면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모두 올려야
재정에서 대안적 복지제도와 노인연금을 만들지 못하고, 연금 구조개혁도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대체로 구조개혁은 보험료나 소득대체율을 조정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다수 전문가들은 그래도 연금보험료는 당장 올려야 하지만, 소득대체율은 높이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연금보험료는 물론 소득대체율도 올려야 한다고 본다.
소득대체율을 높이면 국민연금의 신뢰도가 높아져 보험료 체납자도 줄어들 것이다. 급증하는 노인들의 소비수준이 높아지면 경기활성화에도 도움을 준다. 또한 장차 특수직역연금제도와의 통합을 원활하게 만들어줄 것을 기대할 수 있다. 현재 20년 이상 가입자 기준 국민연금 100만 원 대, 공무원연금 200만 원대, 30년 이상 교원과 군인 300만 원 대인 연금 간 지급액 격차가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남찬섭 교수는 지난 10일 서울 마포구 소재 신라스테이에서 열린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간담회에서 "소득대체율이 50%는 돼야 공적 연금으로서의 기능을 다하고 노인빈곤율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재정안정론자들은 국민연금기금이 고갈되고 나서 보험료 수입만으로 지출을 충당할 경우 필요한 보험료율인 부과방식비용률도 올해의 6%에서 2078년엔 35%까지 증가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러면 후세대의 부담이 너무 크니까 1년치 지급분 이상의 적립금에서 나오는 이자소득을 활용하면 부담을 덜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근로자가 내는 보험료는 그 절반인데다 그 먼 미래에 국민소득 수준에는 17.5%가 과도하지 않을 수도 있다. 정부는 그 70년 동안 경제성장을 포기할 것인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획기적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것인가. 또한 정부의 그런 노력이 실패하더라도 인구구성비는 예측과는 사뭇 다르게 변해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국민 대다수가 미래세대의 부담을 걱정한다면 독일, 스웨덴, 일본 등이 시행하고 있는 '자동 안정화 장치'를 우리도 도입하면 된다. 자동 안정화 장치는 기대여명 상승, 출산율과 경제성장률 하락처럼 부정적인 요인이 발생하면 자동으로 연금을 삭감하는 장치다.
2007년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9%에서 12.9%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60%에서 50%로 낮추는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의 국민연금법 개정을 추진했다. 그러나 그해 4월 이 법안은 국회에서 부결됐다. 결국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현 국무총리)와 김형오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만나 보험료율은 9%를 유지하되, 소득대체율을 기존의 60%에서 점진적으로 40%로 낮추는 방안에 합의한 것이 지금까지 16년째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복지혜택은 적을수록 좋다는 오래된 '작은 국가론'이 이처럼 아무런 국민적 합의 없이 국론으로 호도되는 현실은 타파해야 한다. 노인 대상 추가적 복지제도 대안이 도입되지 않는 한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 인상은 필요하다.
KPI뉴스 / 임항 사회전문기자 yh@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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