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개혁 어떻게] 노인빈곤 정면 돌파하려면 증세 불가피하다

임항 / 2023-03-13 15:31:49
연금개혁? 굳이 따지자면 노인빈곤 완화가 재정안정보다 중요
기본소득 생길 경우 기초연금 독립, 일부는 노인기본소득으로 전환
국민연금 안에 기초연금 대신 스웨덴식 최저연금 보장제 신설
새 복지재원 안생길 경우 최저연금 보장제 전환, 보험료 지원 병행
국민연금 개혁은 대선 공약이었다. 여야 후보 모두 약속했다. 갈 길은 멀다. 공회전하다 이제 겨우 시동이 걸렸을 뿐이다. 게다가 안갯속이다. 윤석열 대통령 임기 안에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국민연금에는 '용돈연금', '세대착취', '기금고갈','제도붕괴' 등의 부정적 이미지가 덧씌워져 있다.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불신이 크다.이런 불신을 해소하고, 저부담·고수익 구조 탓에 미래 세대에게 지워질 부담을 덜어주는 게 연금개혁의 가장 중요한 목표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연금보험료를 올려서 연금기금의 재정안정 방안을 마련해도 지금처럼 심각한 노인빈곤을 완화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인가. 재정안정과 더 확실한 노후보장은 상충하는 목표다.눈을 돌려 더 큰 그림을 봐야 한다. 그러면 모두를 만족시킬 돌파구를 찾을 수도 있다. 국민이 내는 세금과 사회보험료의 역할분담을 재정립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공적연금제도의 구조조정, 연금 사각지대 해소, 노후보장 강화 등 과제를 제시하고 해법을 모색해 본다. 

영국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산업혁명 초기에 발표된 그의 시 '순수의 전조(前兆)'에서 "주인집 문 앞에서 굶주림으로 쓰러진 개는 한 나라의 멸망을 예고한다"고 썼다. 산업화가 무르익은 민주국가 대한민국에서 하물며 개도 아닌 노인들이 하루에 11명씩 자살하고, 이들 중 상당수가 빈곤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국민연금의 재정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보험료율을 올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개혁과제가 노인빈곤 완화다. 불확실할 수밖에 없는 장기인구추계에 따른 후세대 부담 증가보다는 당장 죽어가는 노인들의 문제가 더 시급하지 않은가.

심각한 노인빈곤, 2085년에도 10명 중 3명은 빈곤

이제는 인용하는 것도 좀 민망하지만, 우리나라의 2021년 노인 빈곤율과 노인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독보적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서 빈곤율이란 상대적 빈곤율을 말하는 데 구성원을 소득 순으로 줄을 세워 한가운데 사람의 소득, 즉 중위소득의 50%이하인 사람의 비율로 나타낸다. 

2021년 OECD자료에 따르면 2019년 우리나라의 66세 이상 노인 빈곤율은 43.4%로 OECD 평균인 13.1%보다 3배 이상 높았다. 유희원 국민연금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전문가 초청 연속특강에서 이 자료를 인용하면서 특히 "한국은 전체인구의 빈곤율(16.7%)에 비해 노인 빈곤율이 상당히 높아 노후에 빈곤해질 위험이 가장 큰 국가"라고 말했다. 한국의 노인빈곤율과 전체인구 빈곤율 간 격차는 26.7%포인트로 OECD 평균(1.8%포인트)과 큰 차이를 보였다.

더 큰 문제는 공적이전소득제도가 지금대로 유지된다면 2020년에 태어난 영아가 노인이 되는 2085년에도 노인 10명 중 3명(29.80%)이 빈곤할 것이라는 국민연금연구원의 예측이다. 공적이전소득은 공적연금과 사회복지급여 등의 소득을 말한다. 우리나라 노인이 특히 더 가난한 것은 노인 소득 중 공적이전소득 비중이 2020년 기준 25.51%로 다른 OECD 국가들(60% 안팎)에 비해 현저히 낮기 때문이다.

▲ 우리나라의 2021년 노인 빈곤율과 노인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독보적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기초연금의 문제점: 비대해져도 빈곤해소 기능 약해, 국민연금과 형평성 논란

기초연금은 2007년부터 국민연금과 연계되어 시행된 기초노령연금에 이어 2014년부터 시행됐다. 기초연금은 애당초 국가 전체 복지체계에 대한 큰 그림이 없이 선거철마다 더 큰 규모로 확대됐다. 기초연금 수급자는 2014년 435만 명이었는데, 올해 초에는 약 665만명으로 230만 명(52.9%) 증가했다. 60세 이상 국민연금 수급자(지난해 말 531만 명)보다 더 많다. 같은 기간 예산도 6조9000억 원에서 22조5000억 원으로 3.3배 증가했다. 노인이 급속도로 늘기 때문에 2050년에는 소요예산이 167조5000억 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는 지난해 8월 23일 중앙일보 기고문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우선 노인 인구의 70%가 기초연금을 받다 보니 못 받는 30%는 불만이다. 받아도 국민연금액이 일정 수준(기초연금 기준금액의 1.5배) 이상이어서 연계 감액되는 사람도 불만이고, 저소득 생계급여 수급자도 기초연금을 제대로 받지 못해 불만이다. 공무원연금 등 직역연금 수급자는 대상자에서 아예 제외돼, 이 또한 불만이다."

기초연금은 국민연금과 비교되며 형평성 논란을 낳기도 한다. 매년 물가상승률을 반영하는 기초연금 기준액은 올해 5.1% 올라 단독가구 최대 32만3180원, 부부가구 최대 51만7080원을 받는다. 유희원 연구위원에 따르면 60세 이상 국민연금 수급자의 평균수급액은 58만5000원에 그쳤다. 물론 국민연금 지급액도 그보다 5.1% 올랐겠지만 그래도 양자의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다. 기초연금 40만 원 시대가 열리면 부부 기초연금액은 67만3000원이 되어 국민연금을 넘어선다.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의 형성평 논란과 이해 충돌은 국민연금 가입 유인을 떨어뜨린다. 기초연금을 받기 위해 일할 기회를 포기하는 현상도 생길 수 있다.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의 소득재분배 기능이 중첩되는 것도 문제다.

새로운 재원이 생길 경우의 기초연금 재설계: 기본소득과 경로소득으로 이원화

이 시리즈 2회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먼저 재정에서 50조~60조 원 정도의 새로운 재원을 마련할 경우 기초연금을 어떻게 재설계할 것인지 살펴보자. 새로운 재원으로 보편적 복지인 기본소득을 신설하고, 지금의 기초연금은 국민연금으로부터 독립해서 정부 재정으로 옮겨간다. 이때 기초연금은 65세 이상 전체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어르신 기본소득(가칭)이 된다. 노인대상 기본소득은 다른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기본소득과 연계된다. 기본소득은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점차 흡수 통합해간다.

전 국민 기본소득은 도입 초창기에는 여러 가지 형태로 설계할 수 있다. 우선 소액이라도 국민 모두에게 같은 금액의 기본소득을 주는 방안이 있다. 이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규모의 세금 신설이나 증세가 불가피하다. 일정 금액의 돈을 인생의 전환기나 공부하는 시기에 집중적으로, 또는 40년 이상 소액으로 나눠 받을 수 있게 하는 선택형 기본소득도 가능하다. 농어촌 주민만을, 또는 인구가 너무 적어 소멸위기에 처한 기초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우선 기본소득을 시행해 보는 것도 대안이다. 이에 대해서는 시리즈의 다음 편에서 상술한다.

기초연금이 독립하면 국민연금은 지금의 소득재분배기능을 제거하고 다른 대부분 나라처럼 소득비례 연금으로 가야 한다. 그러면 중산층 이상으로부터도 '용돈연금'이라는 불만을 잠재우고, 보험료납입 기준이 되는 소득의 상한선을 높여서 재정안정성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지난 3월2일자 경향신문 칼럼에서 "재정 안정화를 위해 보험료율을 계속 높여가면 하후상박 국민연금 급여구조에서 상위소득자의 수익비가 1보다 낮아지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면서 "상위소득자의 급여를 늘리는 구조개혁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노인빈곤 퇴치하기 위해 스웨덴식 최저연금 보장제도 도입해야

너무 넓은 '연금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 스웨덴식의 최저연금 보장제도를 도입하는 게 필수적이다. 김상호 광주과학기술원 교수의 올해 1월 월간조선 기고문에 따르면 스웨덴은 1998년부터 연금개혁에 착수해서 최저보장연금제를 도입했다. 3년 이상 스웨덴에 거주하고 65세에 도달한 모든 노인에게 정액으로 지급하던 기초연금을 폐지하고, 연금 조사를 통해 취약 노인을 선별해 지급하는 제도로 전환했다. 최저보장연금은 16세부터 64세까지 40년 이상 스웨덴에 거주하고 공적연금이 최저보장 수준에 미달하면 그 차액(보충급여 원칙)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최저연금 보장제도에서 최저연금 수준은 다른 노인대상 기본소득이 있을 경우 높게 책정할 필요가 없다. 최저보장연금이 높은 수준이면 국민연금 보험료 납부 유인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이에 필요한 재원은 기존 기초연금의 일부를 최저연금 보장용으로 책정하고, 나머지를 보편적 노인기본소득에 충당하면 될 것이다.

▲자료=보건복지부

우리나라의 경우 연금 납부대상자인 18~59세 인구(3093만 명) 중 37%인 1136만 명이 연금 보험료를 정상적으로 내지 못하고 있다(도표 참조.) 소득이 없는 배우자 등 연금 제외 적용자가 742만 명에 달하며, 어려운 경제 여건 등으로 장기 체납하거나 납부예외자로 인정받은 사람도 394만 명이나 된다. 특히 가입률이 낮고, 가입기간이 짧은 661만 명의 지역가입자(자영업자, 임시·일용직, 특수형태 근로자 등) 중 59.6%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새로운 재원이 없을 경우: 기초연금을 최저보장연금으로 줄이고, 지역가입자 연금보험료 절반 지원

문제는 새로운 재원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당장 가장 시급한 노인빈곤을 획기적으로 완화할 방안이 안 보인다는 것이다. 기왕에 있는 예산을 더 효율적으로 쓰려면 우선 기초연금을 최저연금 보장제도로 전환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최저연금 수준을 결정할 때 지급대상을 큰 폭으로 축소해야 한다는 점이다. OECD의 기초연금 지급대상 노인은 평균 22%에 불과하다. 예컨대 상대적 빈곤율을 감안해 약 40%노인에게만, 혹은 더 절박한 20%의 노인에게만 혜택을 주는 쪽으로 설계를 하면 예산을 절감하면서도 지금보다 더 많은 금액을 줄 수 있다. 그러면 남는 예산으로 연금 사각지대의 가입자에게 보험료 일부를 지원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더 바람직한 것은 차라리 기초연금을 없애고, 그 돈으로 지역가입자 전체와 영세사업장 근로자 및 소득이 없는 배우자에게 보험료 절반을 지원하는 게 장기적으로는 더 좋은 방안으로 보인다. 이를 지지하는 전문가들도 많지만, 한 번 주기 시작한 복지급여를 다른 대안 없이 끊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렇게 놓고 보면 노인빈곤 문제에 정면으로 대응하자면 어차피 증세는 불가피하다. 노인문제뿐만 아니다. 지금의 사회복지지출로는 새로운 시대적 복지수요에 대응하기는커녕 취약계층의 기본적인 생존권을 보장하기에도 불충분하다. 국민연금 공론화위원회가 가동되면 세제개혁과 증세 요구도 테이블에 반드시 올려야 한다.

KPI뉴스 / 임항 사회전문기자 yh@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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